영성 편지
못자리 소묘
이형선
2017. 5. 22. 09:37
볍씨야.
볍씨야.
아직 어린
네 씨가
한 알의 세계를
고집하며
자리를 잡지만,
못자리가
네 자리는
아니란다.
온상도
네가 살 곳은
아니란다.
종자의 길이
다 그런 것처럼,
씨앗으로 죽어
씨알로 살려면
안주(安住)에의
작은 기대조차
포기하고,
볍씨, 너는
잘 썩어지기까지
캄캄한 세월을
홀로 견뎌야만 해.
정한 때를
잘 견디면,
밤도
거듭나서
새벽이 되고,
죽음도
거듭나서
생명이 되고,
볍씨도
거듭나서
볏모가 되는 것.
볏모야.
볏모야.
못자리도
생물인가.
네 덕에
개벽하는구나.
어느 새
와 있는
푸른 나라.
푸른 군사들.
보무도 당당하다.
행진하고 있어라.
들 끝까지
이르리라,
이앙의 때를
기다리며,
땅 끝까지
이루리라,
양식의 나라를
꿈꾸며,
큰 생명
큰 사명
키우고 있어라.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자기의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전하리라.-(요한복음12:2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