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큰 병원일까.
큰 병원이 세상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여전히, 여전히,
페니실린으로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병실은 비어 있다.
인생의 폐렴을 앓으며
‘마지막 잎새’처럼
죽음을 준비하던,
죤시도 오 헨리도
이미 퇴원을 했다.
무명의 노(老)화백이
구도자처럼 담장에 그린
최후의 사랑,
그것을 먹고 치유된 후.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가을도 깊어진 이 나이가 되도록
‘마지막 잎새’ 한 잎
그리지 못한 채,
죤시의 사춘기 병실에서
동거하고 있을 뿐,
실락원의 유치한 환자로 남아 있다.
병원은 이미 만원인데도.
나도 그만 퇴원하고 싶다.
나(自己)나 세상으로부터
이제 그만 퇴원하고 싶다.
참 자유는 하늘에서 오는 것.
겨울이 오기 전에
하늘나라의 별것이 되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잎새’,
하나 그리고 싶다.
산 잎새 하나 그리고 싶다.
내 아픈 과거의 날들이
내 긴 병원에서의 날들이
헛된 삶이 아닐 수 있도록,
폭우가 쏟아져도
벼락이 쳐도
영영 떨어지지 않을
한 폭의 길을 그리고 싶다.
한 폭의 구원을 그리고 싶다.
은혜의 빚을
아직 갚지 못한 때문일까.
그래서 기회처럼 되레 주어지는
산 십자가의 역설.
은혜 위에 은혜가 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고.
오호라 자괴라,
난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
기뻐하며 진실로 기뻐하며
퇴원할 수 있을까?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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