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사설(辭說), '마지막 잎새'

이형선 2013. 11. 7. 13:56

 

세상이 큰 병원일까.

큰 병원이 세상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여전히, 여전히,

페니실린으로

치유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단 하나의

병실은 비어 있다.

인생의 폐렴을 앓으며

‘마지막 잎새’처럼

죽음을 준비하던,

죤시도 오 헨리도

이미 퇴원을 했다.

무명의 노(老)화백이

구도자처럼 담장에 그린

최후의 사랑,

그것을 먹고 치유된 후.

 

 

그러나 나는 아직도 남아 있다.

가을도 깊어진 이 나이가 되도록

‘마지막 잎새’ 한 잎

그리지 못한 채,

죤시의 사춘기 병실에서

동거하고 있을 뿐,

실락원의 유치한 환자로 남아 있다.

병원은 이미 만원인데도.

 

 

나도 그만 퇴원하고 싶다.

나(自己)나 세상으로부터

이제 그만 퇴원하고 싶다.

참 자유는 하늘에서 오는 것.

겨울이 오기 전에

하늘나라의 별것이 되어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마지막 잎새’,

하나 그리고 싶다.

산 잎새 하나 그리고 싶다.

 

 

내 아픈 과거의 날들이

내 긴 병원에서의 날들이

헛된 삶이 아닐 수 있도록,

폭우가 쏟아져도

벼락이 쳐도

영영 떨어지지 않을

한 폭의 길을 그리고 싶다.

한 폭의 구원을 그리고 싶다.

 

 

은혜의 빚을

아직 갚지 못한 때문일까.

그래서 기회처럼 되레 주어지는

산 십자가의 역설.

은혜 위에 은혜가 되고.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하고.

오호라 자괴라,

난 언제쯤 퇴원할 수 있을까?

기뻐하며 진실로 기뻐하며

퇴원할 수 있을까?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