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대통령 탄핵 선고문'을 읽고 나서

이형선 2017. 3. 13. 10:38



탈무드에 이런 내용의 우화가 있습니다.

왕이 세상에서 보기 드문 괴상한 중병에 걸렸습니다.

어의는 사자의 젖을 마셔야만 나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사자의 젖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모두가 고심하던 차, 지혜 있는 한 사내가 사자동굴에 가서

새끼사자를 한 마리씩 어미사자에게 주며 사자와 사귑니다.

그렇게 열흘쯤 지내며 사육사처럼 어미사자와 친해진

사내는 마침내 사자의 젖을 조금 짜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사내는 궁궐로 돌아오는 도중에 꿈을 꿉니다. 그 꿈은 자기 몸의 각 부분이 서로 그 공()을 다투는 꿈이었습니다. ‘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사자동굴까지 갈 수 없었다고 주장합니다. ‘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사자동굴이 거기 있다는 걸 알 수조차 없었다고, ‘심장은 자기가 아니었다면 담대하게 사자에게 접근하지 못했다고 각각 주장합니다.

그때 실세(?)의 논쟁을 잠자코 듣고 있던 가 나섭니다.

너희들이 그래봤자 내가 아니면 너희들의 주장은 아무 쓸모없을 거야.”

그러자 내로라하는 실세들이 이구동성으로 핀잔을 주며 윽박지릅니다.

뼈도 없고 쓸모도 없는 조금만 것이 까불긴! 넌 빠져!”

저들의 기세에 눌린 는 하는 수 없이 입을 다물고 맙니다.

이윽고 왕궁에 당도한 사내가 왕 앞에 나갑니다. 왕이 묻습니다.

이것이 무슨 젖이냐?” 혀가 대답합니다. “이것은 개의 젖이옵니다.”

순간 스스로 잘났다고 다투던 실세들은 죄다 얼어붙은 듯 경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들은 비로소 의 중요성을 실감하고 서둘러 에게 사과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그제야 가 왕에게 이렇게 진실을 말합니다.

제가 말씀을 잘못 드렸습니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자의 젖이옵니다.”

 



과연 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자기 온몸은 물론이고 공동체를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으니까요. 나아가 그것이 왕의 혀라면 그 영향력은 극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나라와 백성을 지혜롭게 살릴 수도 있고, 통째로 혼란에 빠트릴 수도 있으니까요.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 옳다(Yes) 할 건 옳다 하고 아니라(No) 할 건 아니라고”(마태복음5:37) 진솔하게 말하는, 책임감 있는 를 가진 지도자 내지 대통령을 가진 나라의 국민들은 복이 있는 국민들이다 싶은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럴 것이 박근혜 대통령을 파면시킨 결정적 탄핵사유는 탄핵소추 각 항목에 관한 선고문 내용 그대로, ‘공무원 임면권을 남용하여 직업공무원제도의 본질을 침해하였다는 점도 아니었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였다는 점도 아니었고, 2014416일 발생하며 304명이 희생한 세월호 사건에 관한 생명권 보호의무와 직책성실의무 위반의 점도 아니었으니까요.

인용된 파면 사유는 오직 피청구인의 최서원(*최순실)에 대한 국정개입 허용과 권한남용에 관한 것때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불법을 행할 수도 있고, 비리에 연루될 수도 있습니다. 공인 중의 공인인 대통령이 공()과 사()를 분별하지 못하고 최순실 게이트를 일으켜 나라와 국민들을 온통 혼란의 와중에 빠트렸으면 모든 것이 내 탓이라며, 자기책임과 과오를 먼저 통감할 수 있어야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에 의해 ‘40일 후에 멸망이 선포되자 겸손하게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朝服)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요나2:6) 회개한 큰 성읍 니느웨 왕처럼 하나님과 국민들 앞에서 그렇게 회개하는 진솔한 모습이나 모범을 보였더라면 모르긴 몰라도 헌정사상 초유의 파면은 면할 수 있었으리라 사료됩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되레 공공연하게 나는 죄가 없다고 선포하며 특유의 그 독선적 고집불통으로 일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모두가 죄인이라는 성령의 비밀이자 인간 정체성의 비밀을 제대로 몰랐기 때문일까요? ‘뻔뻔한 최순실이나 뻔뻔한 대통령의 그런 모습이 영세교 교주 최태민에게서 받은 주술적 영향이자 미신적 신념 내지 교만이라면 그것은 분명히 미혹의 상태입니다. 성경적 올바른 영성의 이해도, 참 지혜도 아닙니다.

 


언론이나 여론에 의해 제기되고 확인된 비리조차도 지라시에 나오는 그런 얘기들운운하며 되레 호도하고 매도하고 은폐했던 대통령. 권력을 위임한 국민들 앞에서 비리를 무마하기 위해 거짓말을 예사로 일삼았던 대통령의 그 가 되레 자기를 파멸로 인도하는 자충수(自充手)가 되고 끝내는 치명적인 악수(惡手)가 되고만 것입니다. 그럴 것이 탄핵선고문도 그것이 결정적 문제점이자 파면사유임을 이렇게 분명하게 적시하고 있으니까요.



-최서원의 국정개입사실을 철저히 숨겼고, 그에 관한 의혹이 제기될 때마다 이를 부인하며 오히려 의혹 제기를 비난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국회 등 헌법기관에 의한 견제나 언론에 의한 감시 장치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었습니다. () 피청구인의 헌법과 법률 위배행위는 재임기간 전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이루어졌고, 국회와 언론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자를 단속해 왔습니다.-

 


이미 퇴임하신 분에게 죄송한 말이지만, ‘선거의 여왕이니 친박(親朴)패권세력이니 하는 등의 허무한 아우라 혹은 신기루를 믿고 거기 사로잡혀 화를 자초한 경우가 아닐 수 없다 싶어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저 최순실도 저 대통령도 약속이라도 한 듯 개의 젖사자의 젖이라고 한사코 거짓말하며 버티다가 자기들은 물론이고 나라와 국민들조차 온통 혼란과 대립과 반목의 와중에 빠트린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자의 젖개의 젖이라고 거짓 증언하는 도 나쁘지만, ‘개의 젖사자의 젖이라고 오도 및 거짓 증언하는 는 더더욱 나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탄핵선고문은 대통령이 국민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한 증언 내지 말에 대한 무책임성을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피청구인은 대국민 담화에서 진상 규명에 최대한 협조하겠다고 하였으나 정작 검찰과 특별검사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고,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도 거부하였습니다.’

대통령의 그런 말과 행동의 불일치, 대의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공공연하게 무시해버리는 최고지도자의 모범(?). 그것이 과연 치명적인 악수였습니다.

탄핵판결문도 그 점을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위헌·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이고 그래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이기에 헌재는 재판관 전원일치로 피청구인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선고에 이른 것입니다.

 


-(*예수)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every careless word)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12:36~37)

 


정녕 그렇습니다.

네 말에 대한 심판은 저 대통령에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 모두에게도 있습니다. 크고 작은 탄핵심판은 가정이나 직장 등 인간관계가 있는 공동체나 사회 곳곳에서 현재형으로 늘 있습니다. 그리고 미래적이자 종말론적인 심판 곧 하나님의 법정에서의 사후(死後) 심판이 우리 각자에게 다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역시 선악간의 심판에 임할 준비를 하면서 겸손하게 살아야할 것입니다. 그것이 하늘의 복이 있는 지혜입니다.

 


보수 진영도 진보 진영도, 절대정의(正義)는 아닙니다. 양쪽에 불의(不義) 역시 다 있습니다. ‘촛불 세력태극기 세력, 절대선()은 아닙니다. 양쪽에 악() 역시 다 있습니다. 그것이 절대선이자 절대정의이신 하나님 앞에서, 피차 타락한 죄인(罪人)인 인간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자기만 의인인 채 고집하면 바리새인(누가복음18:11)' 같은 독선이 되고 교만이 됩니다. 그래서 불행한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상 역사의 법정앞에서, 저를 포함한 우리 개개인들이 저 대통령 파면이라는 탄핵사건을 타산지석 내지 반면교사로 삼아 먼저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아겸허하게 회개해야 할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그런 자들에게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이 주시는 용서와 구원의 메시지, 화합과 공존의 메시지가 들려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런 메시지를 들을 수 있어야만 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국민 우리 모두가 그동안 국가적으로 크게 앓아온 혼란과 갈등과 대립과 반목이 부정적 소모성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해산의 고통처럼 생명적이자 미래지향적인 보람과 희망이 되고 대의적 가치가 되어 산 역사의 산 교훈으로 승화될 수 있을 터이니까요. 그래서 보다 나은 선진국, 보다 나은 천국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터이니까요.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