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넬슨 만델라의 '거룩한 승리'의 비결

이형선 2013. 12. 9. 11:01

 

‘남아공 민주화의 아버지’이자

‘흑인들의 자유’의 대명사인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이

95세를 일기로, 지난 5일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더군요.

 

 

일찍부터 민족의식이나 정의심이 강해,

학생운동을 하다가 퇴학을 당한 적도 있었던

그는 34세에 흑인 최초의 변호사 및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지도자가 됩니다.

그래서 참정권조차 없는 비참한 흑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본격적인 인권운동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백인들만의 정권에 ‘시민불복종 캠페인’이나

‘불매 운동’ 같은 평화적 방법의 비폭력 투쟁을 합니다.

그러나 1960년 3월에 있었던 대규모 흑인민중집회에서,

경찰이 무차별 발포함으로써 사망자 67명,

부상자 400명이라는 참혹한 유혈사태가 발생합니다.

그 사건이 분수령이 되어,

만델라는 평화적 비폭력투쟁을 포기하고,

공공연하게 무장 투쟁을 선언합니다.

정권의 진압 폭력을 악으로 규정하고,

악에 대해 악으로 저항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율법적인 응징이 됩니다.

성경의 말씀으로 직접 풀자면 이렇게 됩니다.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니라.-(신명기19:21)

 

 

그러나 그런 구약성경의 율법으로는,

모세의 율법으로는, 모세가 그런 것처럼

복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사회정의와 질서를 위해 율법 내지 실정법은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그것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만델라 역시 그랬습니다.

때론 테러처럼 때론 전쟁처럼 무장 투쟁을 하던 만델라가

체포되어 들어간 곳은 ‘감옥’이었습니다.

 

 

1964년, 그는 재판의 자리에서

그의 꿈과 소신을 이렇게 밝힙니다.

 “나는 백인만을 위한 통치뿐만 아니라 흑인만을 위한 통치도 반대합니다.

  나는 모든 국민이 민주적이고 평화로운 기회를 동등하게 부여받고

  화합을 이루는 사회를 꿈꿉니다. 이것은 내가 꿈꾸는 사회이자

  달성하고 싶은 목표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 목표를 위해 기꺼이 죽을 준비도 되어있습니다.”

 

그런 2개월 후, 만델라는 법원에서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27년 동안이나 감옥살이를 하다가,

국제적인 여론에 힘입어 73세의 나이로 출감합니다.

노령이었지만 그러나 출옥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다시 흑인들의 인권과 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길고 어려운 투쟁을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남아공 백인정부의 잔혹하고 비인간적인 정치적 탄압이나

폭력은 여전하게 계속되었지만,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 볼 것은,

그러나 만델라의 투쟁 방법은 전적으로 바뀌었다는데 있습니다.

회개(悔改)했다는 것입니다.

오직 용서와 화합의 길을 간 것입니다. 비폭력 평화의 길을 간 것입니다.

그것이 ‘감옥살이 27년’이라는 긴 고난의 삶을 통해 그가 얻은

위대한 구원의 진리에 대한 확신이자 진정한 해법이었습니다.

무장폭력투쟁이라는 한계 그리고 인간 자기의 한계를 절감하고,

위대한 회개를 한 것입니다. 방향 전환을 한 것입니다.

‘내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지혜와 여유를 회복한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말씀으로 직접 풀자면 이렇게 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예수 그리스도)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태복음5:43-44)

 

 

그가 ‘감옥생활 27년’이라는 고난을 통해 얻은 회개와 진리에의 확신은 이론이나 말잔치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어떤 어려움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구체적인 실천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노년의 노련한 여유와 관용과 포용의 큰 가슴으로 모든 ‘원수’ 내지 정적들을 껴안고 꾸준히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인 모색을 하던 그는 정적들에게조차 큰 신뢰감을 줍니다. 그의 용서나 포용은 결코 정치적 술수나 꼼수만은 아니라는 인간적 신뢰감마저 주기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는 마침내 선거권과 피선거권을 포함한

참정권 일체를 쟁취한 남아공 국민들의 최초의

민주적 총선거를 통해,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됩니다.

그의 당선의 선포는 곧 아프리카 흑인들의

인권의 구원이자 그 선포이기에 하늘의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정권을 잡은 후에, 성공한 후에,

되레 그의 꿈과 진실과 인격은 돋보였습니다.

불안했던 정적들이나 백인들의 신뢰감은 더욱 커졌습니다.

전 대통령인 백인을 부통령으로 임명하고, 같은 흑인 정적이자 최대부족의 수장을 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사심 없는 헌신적 삶을 통해 화합의 모범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흑백혼합정부를 구성해서 모든 사람들이, ‘사자와 어린 양이 함께 뛰놀고, 독사굴에 어린아이가 손을 넣고 장난을 치는’ 그런 공존의 삶의 비전을 제시해주고자 진력했습니다. 물론 저 그 모든 비전은 성경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는 스스로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이었으까요.

 

 

그런 그는 초선의 임기를 마치고 재선도 충분히 가능했지만 그러나 재선에 도전하지 않고 그대로 고향으로 물러납니다. 더 이상 사적인 권력에의 욕심이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자기를 비운 것입니다.

그 후 낮은 자리에서 빈곤이나 에이즈 퇴치운동에 힘쓰다가 9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향으로 돌아간 것입니다.

그의 고난이나 고통은 그렇게 이 땅 위의 후세대를 위해 ‘큰 열매’라는 결실과 족적을 남겨놓고 갔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이나 고통을 겪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고난이 자기의 고난으로 끝나버리면 무익합니다.

‘헛고생’일뿐입니다. 맹장염 수술 같은 고난이나 고통이 그렇듯이 말입니다.

그러나 똑같이 아랫배가 아파도, 산모의 고난이나 고통은 다릅니다.

해산의 고통은 마침내 다른 생명을 살리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선한 싸움’이란 ‘해산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그렇듯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고난이나 고통도, 더 높고 더 순수하고

더 진실한 차원에서 누군가의 영혼과 육신을 구하는 삶이 될 수 있으면 참 좋겠습니다.

 

 

끝으로, 넬슨 만델라가 남긴 명언 중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 자신이 어떻게 변해 있는지를 알려면

  변하지 않은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

  (There is nothing like returning to a place

  that remains unchanged to find the ways

  in which you yourself have altered.)-

 

 

직역은 좀 난해하다 싶습니다만 비약을 시키자면,

“처음 마음,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라”는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만델라 그분이 ‘27년의 감옥살이’라는 고난을 통해서

돌아간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와 공존의 자리 말입니다.

그러니까 자기 구원을 위해서도,

이웃이나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돌아가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렇습니다.

총이나 칼이나 협박의 힘보다,

사랑과 용서와 배려와 포용의 힘이 더 큽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구원의 역사는

‘인간의 때’가 아닌 ‘하나님의 때’에

후자에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또한 성경 말씀으로 직접 풀어본,

만델라의 ‘거룩한 승리’의 비결입니다.

 

 

 

                                                    (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