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밑동을 자르지 않아도
나이테가 보인다.
아직도 간혹 제 분수를 모르는 코는
안경이 사는 건 자기 덕이라고 힘주지만,
세월에 풍화된 주름살은 깊어가고
흰 머리칼도 늘어간다.
이미 새치는 아니다.
서명 날인이라도 해서
내가 책임져야 할 내 얼굴이지만,
여전히 좌우(左右)가 뒤틀려 있는
거울 속의 자화상(自畵像)을
나는 이 나이가 되도록
여전히 바로 잡지 못한다.
태초적인 이 모순을
오호라, 우리는 바로 잡지 못한다.
나를 닦아도 거울을 닦아도
바람 잡는 수고일 뿐.
먼저 된 자일까?
나중 된 자일까?
구원은 햇살처럼
오직 하늘에서 내리고.
은혜는 단비처럼
오직 하늘에서 내리고.
뒤틀림을 뒤틀림으로,
패역(悖逆)을 패역으로,
인생의 한계를 한계로,
보는 눈이 열리면서부터
마음도 열린다.
열려진 마음에
하늘을 담을수록
나는 점점 작아진다.
차라리 티끌처럼.
열려진 마음에
말씀을 담을수록
나는 점점 낮아진다.
차라리 종(奴婢)처럼.
비워지는 그 만큼
낮아지는 그 만큼
더욱 채워지는 하늘.
이윽고 나라가 된다.
하늘나라가 이미 와 있다.
내 인생도 세상도
비로소 좌우가 바로 잡혀 있다.
이미 육안(肉眼)은 아니다.
영안(靈眼)이다.
열려라 열려라.
거울 속에 갇힌 인생이여.
자기 속에 갇힌 세상이여.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4:17)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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