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의 허무함

이형선 2012. 6. 14. 09:48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린도전서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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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시대에서 예언하는 능력이나 병 고치는 능력이 있으면

   그는 신령한 선지자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으면 그는 신령한 영웅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구름떼처럼 모여들 것이고,

   시쳇말로 목회에도 대형으로 성공하고, 종교 지도자로 급부상할 수 있습니다.

   목회에 성공하면 헌금도 많이 들어옵니다. 사회에서 성공하면 돈도 많이 법니다.

   그래서 기독교회나 기독교인들은 실인즉 알게 모르게 구제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감히 단언합니다.

   그 모든 것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다”고.

   그 모든 성공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고.

 

 

   그럼 대중가요부터 시작해서 세상은 온통 ‘사랑’ 타령인데,

   저 ‘사랑’의 정체나 진면목은 무엇일까요?

   저 거룩한 ‘사랑’ 곧 ‘아가페’는 결코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녀 간의 성적인 그런 사랑 곧 ‘에로스’도 아닙니다.

   혈육 간 곧 가족 간의 그런 사랑 곧 ‘스톨게’도 아닙니다.

   친구 간의 우정어린 사랑인 그런 ‘필리오’도 아닙니다.

   집단이기적인 그런 사랑(?)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니느라.”(요한일서4:16)

 

 

   그렇습니다. 사랑이 하나님이 아닙니다.

   철학에서 말하는 진리, 전체, 우주, 선 등 그 자체가 하나님도 아닙니다.

   인격처럼 ‘살아 계신’ 창조주 아버지 하나님의 품성 자체가 곧 ‘사랑이시라’ 것입니다.

   아울러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곧 ‘사랑’이십니다.

 

   따라서 아무리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지도자로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 교회에 성공한 인간 목회자의 영광은 있어도 ‘하나님이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것의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아무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허무하다는 것입니다.

   평신도 역시 명문대학을 나와서 엘리트 코스를 거쳐 세상에서 아무리 ‘주류’나 ‘귀족’으로 성공했어도,

   성공한 인간 자기의 영광은 있어도 ‘하나님 없으면, 그리스도가 없으면’

   그것의 결국은 "아무 것도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뜻있는 분들은 오늘의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를 위하여 알게 모르게 슬퍼하며 기도합니다.

   우리가 ‘무례한 그리스도인들’이 된 것을 알게 모르게 슬퍼하며 회개합니다.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그리스도가 없는’ 교회나 선교나 구제나 헌신은 모두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축복받았다고 자만하는 위치에서 베푸는 차라리 ‘교만한’ 선교나 구제는

   그것들이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일수록 가진 자들의 과시적인 지배 영역 확장이나 시혜나 동정이나

   적선 정도로 왜곡되고 폄하되어 되레 사회적 반감 내지 비판만 불러오는 부메랑이 되기 십상입니다.

   이미 항간에서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는 ‘개독교(기독교)’니 ‘먹사(목사)’니 하는 등의 야유도

   그런 증후군에서 비롯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뜩이나 사회에서 교회는 물론이고, 정치권이나 경제권 등의 실력자로 있는

   소위 ‘성공한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비윤리적인 각종 비리나 부패나 타락의 사슬로 인해,

   기독교인들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보다 되레 “이기적인 세상 욕심이 더 많다”고 지탄 받는

   오늘과 같은 세태일수록 진실로 “선한 일에 조심하려는” 성경의 지혜가 더더욱 필요합니다.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뿐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8:21)

 

 

   다른 한편으로, 우리가 세상의 모든 욕심을 버리고 거룩한 성인 성녀나 수행자가 되었다 쳐도

   과연 ‘사랑이 없으면’ 곧 ‘그리스도가 없으면’ 영적 교만에 빠져서 죄인들이나 이웃들과

   어울리지도 못하는 별종이 될 뿐 역시 아무 것도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대단한 신학자나 성경학 박사가 되었다 쳐도 ‘사랑이 없으면’ 곧 ‘그리스도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는 지적 교만에 빠지기 마련이고 그래서 역시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선 우리에게 ‘새 계명’으로 “나를 믿고 세상에서 축복받은 부자가 되라”,

   “나를 믿고 세상에서 성공한 귀족이 되라”, 심지어 “나를 믿고 세상에서 대형 목회에 성공하라”거나

   “나를 믿고 거룩한 성인 성녀가 되라”고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너 나 없이 우리는 모두 진심으로 겸손하게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나 사도들처럼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저 낮은 곳을 향하여’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푯대가 거꾸로 된

   오늘의 신앙 풍토를 진정으로 회개해야할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철학 논리와 똑같은 그런 ‘성공복음’이 아닌

   섬기는 사랑의 복음으로, 가치관을 바꿔야할 것입니다.

   ‘저 높은 곳’의 푯대를 ‘세상’이 아닌 ‘천국’으로, 방향을 바꿔야할 것입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영원히’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을 위시한 차라리 더럽고 지저분한 각색 병자들, 세리나 창녀 같은 죄인들,

   고아나 과부나 장애인 등 외롭고 고통 받는 불우한 그래서 소외된 천민들 ‘저 낮은 곳에서’

   온 몸으로 공생애를 살다가 역시 ‘저 낮은 곳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분의 삶을 한 마디로 집약시킨 ‘새 계명’을 오늘도 우리에게 이렇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한복음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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