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막엔 연일 불볕더위만 계속되고 있었다.
오아시스에서 사는 사막여우는
배도 고프고 해서 가까운 수풀로 나갔다.
그러나 입맛에 맞는 먹잇감이 도무지 없다 싶었다.
그래서 우물물만 조금 마셨다.
더위에 데워진 때문인지 물맛이
시궁창물맛 같아서 속이 영 뒤틀린다 싶었다.
같은 여우라도 온대지방에 사는 여우들은
큰 더위나 추위에 시달리지 않고 잘 먹고 잘 산다고 들었던 사막여우는 ‘내 신세는 참 박복하다’ 싶었다. 그럴 것이 요즘은 가뭄이 계속되어서인지 맛있는 먹잇감인 흰개미나 쥐들을 찾기도 어렵고 잡기도 어려워서 먹고 살기가 영 어렵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우울해진 사막여우는 그래서 하늘을 향해 원망하며 신세 한탄이라도 하듯 컹컹 짖어댔다.
그때였다.
사막 저쯤에서 낙타 한 마리가 무거운 짐을 등에 진 채 오아시스로 들어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낙타는 곧장 우물 쪽으로 다가왔다. 제네 주인의 짐을 지고 홀로 사막을 자주 오가는 낙타인지라 안면 정도는 있었지만 공연히 심통이 나있던 사막여우는 그냥 모른 척했다.
우물에 이른 낙타는 이 가뭄에도 여전히 거기 물이 있는 것을 발견한 순간, 하늘을 향해 우우 소리치며 고개를 서너 번 조아렸다. 그리고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물을 마시고나서도 낙타는 감지덕지하며 하늘을 향해 이렇게 감탄사를 연발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꿀맛이네요!”
순간 사막여우는 그런 낙타의 말에 공연히 속이 뒤틀렸다.
그래서 불쑥 이렇게 내뱉었다.
“그 덩치에 싱겁긴!
야, 넌 꿀맛과 시궁창물맛도 구별 못하냐?”
낙타는 사막여우를 바라보며 그냥 빙그레 웃기만 했다.
그리고 우물가에서 잠시 쉬었다 가고자 무릎을 꿇고 몸을 엎드렸다. 낙타는 쉬어도 늘 그렇게 엎드린 채 쉬곤 했다. 낙타가 아무런 대꾸도 안 하자 사막여우는 속이 더 뒤틀렸다. 무릎을 꿇고 다소곳이 엎드린 채 하늘을 향해 경배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되새김질하며 묵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여하간 그런 낙타의 평안한 모습에 되레 심통이 난 사막여우는 낙타의 곁으로 다가가서 발로 옆구리를 툭 차며 이렇게 시비를 걸었다.
“왜 말이 없지?
정말 꿀 먹은 벙어리라도 된 거니?
아니면 내 말이 말 같잖아서 그런 거냐?”
낙타가 비로소 혼잣말 하듯 입을 열었다.
“오아시스에서 늘 사는 자는 오아시스의 삶을 감사할 줄 모르는 법이지.
먹지도 마시지도 못한 채 이레 동안 내내 사막 한가운데를 걸어왔던
내가 느끼는 이 꿀맛을 네가 알 리도 없고.”
“일주일 내내 고생한 것이 자랑은 아니잖아?
네 주제나 팔자가 그래서 그런 걸 뭐!”
“너 누구와 싸우기라도 했냐?
자칼에서 뺨 맞고 나한테 화풀이라도 하는 것 같다?”
그러자 머쓱해진 사막여우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리고 푸념하듯 이렇게 속내를 털어놨다.
“누구와 싸운 건 아니고….
요즘은 사막에서 살기가 너무 고달프다 싶긴 해.
사막을 떠나 그냥 온대지방 어디로 갈까도 싶고.”
“세상 그 어디에도 문제가 없는 곳은 없단다.
네가 사막에서 살지 못하면 넌 온대지방 그 어디에 가서도 살지 못할 거야.
우리가 먼저 고민할 것은 사막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사막의 모든 문제를
잘 소화시킴으로써 그것을 되레 이길 수 있는 속의 세계이자 마음의 세계란다.”
“속의 세계? 마음의 세계? 그게 무슨 말이람?
동물의 세계란 말은 들어봤다만…?”
“그건 네 속, 네 마음에 있는 세계야.
네 마음의 눈이나 귀가 열려야만 보이고 들리는 비밀한 세계인 거지.
속의 세계가 열려서 꿀맛이나 생수맛의 비밀을 아는 자는
자원해서 사막의 길을 가기도 하고, 자원해서 사막의 삶을 살기도 한단다.”
사막여우는 그런 낙타의 말이 다시 못마땅해졌다.
자기 주제에 무슨 대단한 비밀이라도 아는 것처럼 말하는 것이 비위에 은근히 거슬렸다. 그럴 것이, ‘비밀’ 운운하는데 그런 비밀을 아는 지혜라면 그것을 가진 자는 간사하리만큼 영리하다고 자타가 공인하는 나 여우가 아니겠는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곰처럼 미련하고 무식한 낙타 주제에 감히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비아냥거리듯 이렇게 말을 던졌다.
“우물물맛이면 우물물맛이지 생수맛은 또 뭐람?
마음의 세계 운운하는데 넌 지금 되레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야!
위선적인 마음일 수 있다는 말이지! 그 거구를 이끌고 낮엔 여름처럼 뜨겁고
밤엔 겨울처럼 추운 이 삭막한 사막을 오가며 살다보면,
동물인 너 역시 때론 목이 마르고 배도 고프고 고달프기도 해서
신세한탄 하고 싶을 때가 있을 것 아니냐? 지금 이 우물물맛은 시궁창물맛이야!
그게 정말이다! 내 말이 맞지?”
“물론 그것도 정말이겠지. 그러나 그건 너의 정말이자 겉의 정말이란다.
너의 정말과 나의 정말은 다를 수가 있어. 겉의 진실과 속의 진실이 다른 것처럼 말이야.”
“겉의 진실? 속의 진실? 얘, 점점 이상한 말만 하네!”
순간 사막여우는 낙타를 향해 자기 머리를
어지럽게 흔들어 보였다. 그리고 엉뚱하게 이렇게 물었다.
“너 지금 내 큰 귀가 두 개로 보이니? 세 개로 보이니?”
“두 개.”
“그렇다면 더위를 먹어서 정신이 나가거나 돈 건 아닌데…?”
“네 귀는 정말 크구나. 귀가 크니까 소리를 잘 들을 수 있겠다.”
사막여우는 낙타가 비로소 자기를 알아본다 싶어 어깨를 으쓱하며 자랑을 덧붙였다.
“물론이지! 너나 자칼이나 늑대나 그 어떤 녀석들보다도 내 귀는 몇 배나 더 밝단다.
이건 정말이자 진실이야! 우리는 보다 큰 귀로 보다 크고 밝은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해!
너처럼 어벙한 세계에 갇혀 있으면 안 된다고!”
“그래. 그건 정말이자 진실일 거야. 하지만 네가 그 큰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은 겉의 소리란다.
겉의 소리가 있는 만큼 또한 속의 소리도 있는 거야.”
사막여우는 낙타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우직한 낙타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고개를 두어 번 갸우뚱거리던 사막여우는 다그치듯 물었다.
“너 지금 이 물맛이 정말 꿀맛이나 생수맛으로 느껴지니?”
“정말이고 말고. 내 속의 말이자 소리인 걸.”
“그래? 그럼 그 속의 말이나 소리를 어떻게 들을 수 있는 거지?
귀를 자기 배꼽이나 가슴에 댈 수는 없는 일이잖아?
의사처럼 청진기를 대고 들어야하는 거니?”
낙타는 그런 사막여우의 물음에 답하기가 적이
어렵다 싶었는지 잠시 눈을 감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눈을 뜨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너에게 아주 유식한 것을 가르쳐줄 형편은 못 된단다.
그러나 내가 맛보고 체험한 세계를 알려줄 수는 있을 거야.
아니, 그건 좋은 소식이기에 열심히 전해주는 것이 서로의 삶에 복된 일이 될 거야.”
사막여우가 낙타의 턱 밑으로 바짝 더 다가앉았다.
잠시 사이를 둔 낙타가 다시 말을 이었다.
“속의 소리를 들으려면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단다.”
사막여우가 어렵다는 표정을 지은 채 반문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를 비우고 낮출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아하, 알겠다. 계속하렴.”
“네가 말한 그대로 나도 먹고 살아야 하는 동물인지라, 이 황량하고 삭막한 사막을
오가며 살다보면 때론 목이 타고 배도 고프고 춥기도 하단다.
그럴 땐 신세한탄이 절로 나오기도 하지. 그러나 그럴 때면
나는 애써 그런 나를 부인하며 내 중심을 조절하곤 한단다.”
사막여우가 다시 반문했다.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중심을 조절한다?
그게 과연 가능하니? 어떻게…?”
“그게 무슨 말인가 하면, 난 뜨거운 낮엔 내 체온을 통째로 부인하며
사십 도 이상으로까지 높여버리고, 추운 밤엔 역시 내 중심을 부인하며
삼십오 도 이하까지로 낮춰버린단다.
그것이 바로 내 절제의 비밀이자 생존의 비밀이야.
그것은 곧 필요 이상의 내 욕심이나 허영을 부인하고,
필요 이하의 내 낙심이나 불안이나 감정도 부인하고,
주어진 환경에 긍정적으로 적응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그렇게 살다보니까 사막의 모든 문제들이 절로 소화가 되더라고.
범사에 감사하며 넉넉히 살 수 있더라 이 말이지.
‘시장이 반찬’이라는 듯이, 타는 목마름이 또한 꿀맛이나 생수맛으로
인도하는 반찬이 되고 은혜가 되더라고. 그게 내 삶의 진솔한 고백이라.”
그렇게 낙타의 비밀을 알게 된 사막여우는 그제야
마음에 울림이 있어 낙타의 얼굴을 다시금 쳐다보았다.
“너 이제 보니 대단하구나! 네 얼굴 다시 봐야겠다!”
낙타가 담담하게 미소만 짓다가 한 마디 보탰다.
“난 그래봐야 내 주인을 섬기는 낙타일 뿐이야.
낙타 이상의, 대단한 그 무엇이 되고 싶지도 않고.”
사막여우는 전에는 참 어벙하고 어리석게 생겼다 싶은 낙타의 얼굴이 왠지 수도승이나 순례자의 얼굴처럼 거룩하게 보인다 싶었다. 그런 낙타에게 사막여우가 이렇게 물었다.
“나 같은 여우도 너처럼 치열하게 자기를 부인하며 체온까지도 조절할 수 있을까?”
낙타가 또박또박 힘주어 대답했다.
“그것은 오직 네가 구하고 찾아야 할 네 몫이란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는 자는 오직 자기 밖에 없으니까.”
“하긴 그래. 네가 내 속에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하늘이 우리에게 주신 모습이나 은사는 다 다르지만,
동물 이상의 세계를 보려는 자는 누구나 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어야만 한단다.”
“그러니까 내가 느낀 시궁창물맛은 동물의 세계가 되고,
네가 느낀 꿀맛이나 생수맛은 동물 이상의 세계가 되겠구나?”
“그런 셈이지. 사람들은 사막여우 네가 교활하리만큼 지혜가 많다고 말하더구나.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나 남다른 네 지혜가 되레 너를 고집에 빠지게 하는 덫이
될 수도 있단다. 네가 네 지혜로 너를 고집하면 고집할수록,
네 마음에 네 이상의 세계나 하늘의 세계가 네 속에 들어오지는 못할 거야.
하늘에서 생명의 단비가 아무리 많이 쏟아져도
빈 그릇이 아니면 그것을 전혀 담을 수 없는 것처럼 말이야.
그것은 네가 거듭난 삶을 살 수 없다는 의미이자 다만 일개 동물의 삶에
갇혀 있다는 의미이기에, 한 마디로 네가 불행하다는 말이 되는 거야.”
이윽고 낙타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리고 무거운 짐을 다시 등에 짊어지며 말했다.
“우리 주인이 기다리고 계실 거야.
난 그만 가봐야겠다.”
“그래? 잠깐만 기다리렴!”
발 빠른 사막여우가 잽싸게 수풀 쪽으로 달려갔다.
잠시 후, 사막여우가 등에 풀 한 봇짐을 진 채로
다시 서둘러 달려왔다.
“자, 싱싱한 풀이다. 가다가 배고프면 요기라도 하렴.”
낙타는 그런 사막여우의 성의가 고마운 듯
그의 손을 꼭 잡으며 이렇게 말했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나 들리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은 아니야.
정말 보고 정말 들어야할 것은 우리의 속에 있는 거란다.
너도 그것을 보는 눈과 들을 귀는 가진,
하늘의 복이 있는 여우가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낙타는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사막여우도 배웅이라도 하듯 나란히 걸었다. 한동안 둘이는 그렇게 나란히 걷기만 했다. 이윽고 사막여우가 발걸음을 멈추며 입을 열었다.
“오늘 좋은 날이었다. 너를 만날 수 있어서.
우리 언제 다시 만날 수 있으면 좋겠구나.”
“하늘이 허락하시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비는 늘 하늘에서 내리는 거니까.”
“늦은 비라도 언젠가는 분명히 내리겠지?”
“물론이지. 그것이 하늘의 언약이니까.
기다리는 자에게 내리는 단비는 언약이란다.
사막이 낙원이 될 수 있다는 것도 하늘의 언약이고.”
“그렇다면 오늘은 사막에서 너와 만났다만,
다음엔 낙원에서 너와 만나고 싶구나.”
“우리 꼭 그러자꾸나.
우리가 이 사막을 변화시킬 수는 없을 거야. 그것은 하늘의 소관이니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는 있을 거야.
참 행복은 사막이 변화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너도 언젠가 나처럼 다른 이들에게 또한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낙타, 네 무릎에 복이 있더라는 것도 함께 고백하고 싶구나.”
“고맙다.
잘 있어!”
“잘 가!”
그렇게 사막여우와 낙타는 헤어졌다.
사막 저쯤에서 기둥 같은 모래바람이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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