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인생 카페,〈골고다〉에서

이형선 2015. 2. 2. 10:24

 

 

제가 어려서 유치할 땐,

늘 젖과 꿀만 좋아했지요.

늘 값싼 은혜를 구하며,

제 입에 달면 삼키고

제 입에 쓴 것은,

벌 벌이다 두려워하며

마구 뱉어냈지요.

그래서 늘 겉늙고 지레 늙은,

각종 성인병을 앓았답니다.

그래서 늘 욕심의 포로이자

세상의 포로가 되곤 했답니다.

 

철이 든 지금은,

제 입에 쓴 것도

감사하며 잘 삼킨답니다.

거친 것일수록

꼭꼭 오래 씹어서

더 잘 먹는답니다.

쓰고 거친 것이

건강에는 되레

더 좋더라고요.

쓰고 거친 것의

제자가 되자,

비로소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되더라고요.

 

쓴 체험보다

더 좋은 학문도

더 좋은 스승도

없다고 했지요?

인생대학보다

더 좋은 대학도

없다고 했지요?

쓴 잔 그것이

하늘의 복이라는 것을

이제는 저도 안답니다.

쓴 잔 그것이

고상한 은혜라는 것을

이제는 저도 안답니다.

 

여기는 인생 카페,

〈골고다〉.

나는야 서번트.

“아버지께서 주신 잔”,

쓴 잔 좀 드세요.

거친 것 좀 드세요.

인생은 당의정,

코팅은 값싼 가면입니다.

가면을 벗어야만

진실이 보이지요.

죽음의 진실도 보이고

허무의 진실도 보이지요.

죽을 수밖에 없을 때

죽는 것은,

개죽음처럼

허무한 죽음일 뿐입니다.

살았을 때 죽는 것이

산 죽음이지요.

자원해서 죽는 것이

산 죽음이지요.

 

산 죽음이 없으면

산 부활도 없답니다.

오늘도 “자기를 부인하고”

잘 죽으세요.

오래 참으며 잘 죽으세요.

쓴 잔의 비밀을 믿고,

쓴 잔의 능력을 믿고,

잘 죽으세요.

당장에는 쓰지만

이후에는 아주 달답니다.

입에는 쓰지만

속에는 아주 달답니다.

오래오래 달답니다.

 

거기 손님,

한 잔이요?

아, 그쪽도 한 잔이요?

감사합니다.

섬길 수 있어 감사합니다.

나눌 수 있어 감사합니다.

부활의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대리석 깔린

브로드웨이가 아니랍니다.

‘골고다’는 차라리 초라한,

좁은 길이자 좁은 문이랍니다.

보시다시피 있는 건

달랑 십자가뿐이니까요.

그래도 따르는 자들은 있답니다.

들을 귀들은 있답니다.

주님의 말씀이 들리지요?

“적은 무리여

 두려워하지 말라.”

 

자, 이제 함께 듭시다!

쓴 잔의 축배가 되겠군요.

고난의 축배인들 어떻고,

죽음의 축배인들 어떻습니까.

역설(逆說)의 비밀을

아는 자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아는 자들에게는,

죽음조차도 축복인 것을.

죽음이 불행이 아니라,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불행인 것을.

자, 이제 쭉 듭시다!

속사람의 자유를 위하여!

죽어도 사는,

부활의 나라를 위하여!

영원한 진실로 영원한,

우리의 하늘나라를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