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휴대전화 별곡(別曲)

이형선 2015. 3. 9. 10:29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

사람다운 사람과

서로 소통해야 할,

내 휴대전화가 죽어있었다.

영원한 생명이 되어

영원한 생명과

서로 소통하고 싶은,

내 휴대전화가 죽어있었다.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가 열심히 외쳤다.

“열려라, 열려라.”

내가 애원하듯 부르짖었다.

그러나 당최 먹히질 않았다.

겉은 뻔질뻔질 살아있는데,

속이 이미 비어 있었다.

속이 이미 죽어 있었다.

 

내가 살릴 수 있는 일은

이미 아니었다.

오직 ‘약, 약’이 필요했다.

첨단의학에서 처방한 신약을 먹였다.

건강과 장수에 아주 좋다는,

양질의 단백질과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성분이 담뿍 함유된 명약이었다.

그래도 휴대전화는 살아나지 않았다.

전통한의학에서 처방한 한약을 먹였다.

정력과 기력에 아주 좋다는,

인삼 녹용 등이 담뿍 들어간 보약이었다.

그래도 휴대전화는 살아나지 않았다.

최신형 갤럭시나 애플이 먹는다는

초고속 충전의 명약을 먹였다.

그래도 내 휴대전화는 살아나지 않았다.

죄다 좋다는 ‘시대의 명약’이었지만,

타고난 체질이 달라서

입에서부터 영 맞지를 않았다.

지향하는 푯대가 달라서

입에서부터 아예 맞지를 않았다.

 

그렇게 세상 첨단의 거리에서

되레 단절과 혼돈과 기갈을 앓으며

방황하던 나는,

탕자(蕩子)처럼 하는 수 없이

‘본래의 집’이자 ‘속사람의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와야만 했다.

그리고 ‘본래의 집’ 서랍 속에 묻혀있던

배터리를 꺼내, 휴대전화에게 먹였다.

내 몸의 의복처럼 입에서부터 꼭 맞았다.

내 몫의 은사처럼 입에서부터 잘 맞았다.

휴대전화가 금세 다시 살아났다.

기뻤다. 정말 기뻤다.

시체와 생명 사이, 그 순간이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 시간도 그 공간도, 그 무대까지도

바로 내 선택 앞에 있었다.

아하, 인공지능조차도

제 몫의 ‘속사람’을 먹어야만

비로소 산 자가 될 수 있구나!

아하, 인공기능조차도

먼저 ‘속사람’을 먹어야만

비로소 산 자가 될 수 있구나!

 

그래서 나는 곧 방향을 돌렸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께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통화가 되지를 않았다.

다시 다이얼을 눌렀다.

‘속사람’의 통화는 직통이 아니던가.

여전히 뭔가가 막혀 있었다.

휴대전화에 또 다른 이상이 있나?

나는 할인마트에 전화를 걸었다.

그곳과의 통화는 잘 되었다.

그래서 배달된 떡도 고기도 잘 먹었다.

나는 다시 하나님께 전화를 걸었다.

여전히 통화가 되지를 않았다.

‘속사람’의 통화는 직통이 아니던가.

여전히 뭔가가 꽉 막혀 있었다.

배는 부른데 속이 영 답답했다.

체한 것일까? 약이 필요했다.

돈을 주고 ‘소화제’를 사서 먹었다.

그래도 갈수록 공허하고 불안했다.

오직 평안이 필요했다.

세상과 나를 이기는 평안이 절대 필요했다. 

나는 다시 거리로 나가서 미아처럼 외쳐댔다.  

돈, 돈을 줄테니까 ‘평안’을 팔라고 외쳐댔다.

그러나 그런 약은 상가 어디에도 없다고 했다.

그런 약이 있으면 되레 사고 싶다고만 했다.

 

 

나는 탕자(蕩子)처럼 하는 수 없이

‘본래의 집’이자 ‘속사람의 집’으로

터벅터벅 다시 돌아와야만 했다.

'본래의 집' 서랍 속에

내가 먹을 수 있는 배터리는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평안이 더욱 필요했다.

나는 다시 ‘하나님의 나라’로 전화를 걸었다.

안내하는 천사라도 있을 텐데?

여전히 통화가 되지를 않았다.

내 불안은 이미 불만이 되어있었다.

‘짠맛 잃은 소금’처럼,

영적 통화가 전혀 되지 않는 내 휴대전화.

나는 휴대전화를 “반편이! 먹통!”이라고

꾸짖으며, 냅다 집어던져버리고 말았다.

그때였다.

침대 위에 처박힌 휴대전화가

비상등처럼 와락 벨을 울려댔다.

억울하다는 듯 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야! 인간아!

 ‘반편이, 먹통’은 바로 너야 너!

 네 배터리가 죽어 있느니

 통화가 될 게 뭐람!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엔

 깊은 구렁이 있어,

 통화도 소통도 불가능한 거야!

 단절은 내 탓이 아니고

 네 탓이란 말이야!

 너도 약 좀 잘 챙겨 먹어라!

 충전이란 ‘속사람’이 깨어있다는 거야!

 항상 준비하고 항상 깨어있다는 거야!

 세상의 거리에서 행세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겉사람’ 일색이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 그 화려한 바벨탑 일색이지.

 거기서 때론 들러리처럼 때론 미아처럼

 때론 탕자처럼 방황하지 말고,

 너도 네 몫의 배터리 잘 챙겨 먹으라고!

 ‘돌판’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판’이야!

 ‘겉사람’보다 중요한 것은 ‘속사람’이라고!

 네 배짱에 안 맞으면 쉽게 버려버리는

 그 마음 그 심보로 뭘 하겠다는 거야?

 

 날 쉽게 던져버린 것까지도 좋다!

 나 휴대전화가 네 우상이 되어선 안 되니까!

 그러나 네 생명이나 내 생명이나

 현대의 명약이나 보약 잘 먹는다고,

 최신형 첨단 갤럭시나 애플 먹는다고,

 되살아날 수 있는 생명은 아니다.

 떡이나 기름진 고기 많이 먹는다고

 거듭날 수 있는 생명도 아니다.

 말씀이 말씀 되게 하라!

 말씀이 생명 되게 하라!

 말씀이 평안 되게 하라!

 꽁보리밥에 시레기국 먹고 살아도,

 명약 중의 명약인 ‘신구약’ 하나님의 말씀

 잘 먹으며 자족하는 것이

 평안의 비결이자 생명의 비결이니라.

 소 돼지를 잡아먹고 서로 다투는 것보다

 채소를 먹고 살아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소통의 비결이자 행복의 비결이니라.

 그 나이 됐으면 철이 좀 들어야지!

 네 생명이나 인공지능인 내 생명이나

 먼저 ‘속사람’을 잘 먹여야 잘 사는 거야!

 너도 네 몫의 배터리 잘 챙겨 먹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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