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박 노인의 세 아들

이형선 2015. 3. 23. 11:41

 

 

낙향해서, 인생의 노년기를

자연을 벗 삼아 시골마을에서 조용히 살고 있는

박 노인은 아내와의 사이에 아들만 셋을 두었다.

물론 다 친아들이었다.

박 노인의 아내는 몇 해 전에 먼저 하늘나라로 갔다.

평소에도 성미가 꼬장꼬장했던

박 노인의 아내는 임종 무렵에 세 아들을 함께

불러다놓고, 이런 유언을 남기고 갔다.

 

“아들들아 들어라.

 이제는 다 커서 내 품을 떠난 아들들아 들어라.

 이제는 다 컸다고 내 품을 떠나버린 아들들아 들어라.

 하늘 없이 태어난 영혼이 어디 있으며,

 태산 없이 태어난 육신이 어디 있겠느냐.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가 하늘이라면,

 세상 아버지의 은혜는 태산일 것이다.

 나 먼저 간다.

 하나님 아버지와 땅의 아버지를 잘 섬기도록 해라.

 나도, 너희 아버지도, 너희도 다,

 주어진 한계를 살다갈 뿐인 한 조각 구름 같은

 인생이라는 것을 늘 명심하면서 말이다.

 그것이 늘 겸손해야 할 이유의 터전이자

 복 있는 사람의 터전이 아니겠느냐.

 진실로 하늘의 복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 앞에서 스스로 어른이 된 자가 아니고,

 돌이켜 스스로 어린아이가 된 자이니라.

 진정한 천국의 자유인이자 지혜의 사람은

 스스로 주인이 된 자가 아니고,

 돌이켜 스스로 종이 된 자이니라.”

 

그래서일까.

그 후, 세 아들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번갈아가며 찾아와서 박 노인을 나름대로 정성껏 보살피다가 가곤했다. 마을사람들은 매주 잊지 않고 찾아오는 세 아들 모두가 효자라고 자자하게 칭찬하며, 그런 아들들을 둔 박 노인을 부러워하곤 했다.

그럴 것이 머리가 남달리 비상했던 첫째아들은 장학금을 받아가며 외국유학까지 마치고, 귀국해서 모 명문대학 교수로 있었다. 빈손으로 시작한 둘째아들은 모 중견 벤처기업체의 회장이었다. 그렇게 경쟁사회에서 성공한 두 아들과는 달리, 사진작가인 셋째아들은 환경생태운동까지 한답시고 예나 지금이나 자연을 벗 삼아 산하를 떠돌아다니곤 했다.

 

명문대학교수인 첫째아들이

큰 선물꾸러미를 들고 박 노인을 찾아온 어느 날.

마을이장이 마을회관의 정자나무 아래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향토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문에 현답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양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하시더군요. 효도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첫째아들은 의외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박 노인은 내 아버지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성적이나 논리적으로 입증되지 못한 분은 아버지라고 믿을 수도 없고, 부를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과학이 없는 종교는 맹목적’이거나 맹신일 수 있는 것처럼 과학이 없는 부자 관계도 맹목적이거나 맹신의 관계일 수 있다 싶어, 그 관계의 논리적 존재 입증을 위해 박 노인에게 얼마 전에 DNA 검사를 좀 하자고 하니까, 크게 고까워하시면서 돌아앉아버리시더라고요.

DNA 검사를 싫어하고, DNA 검사조차 할 수 없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전통이나 인습에 따라 그냥 아버지라고 부른다면 그런 사람은 스스로 21세기의 지성인이기를 포기한 사람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그래도 박 노인께 효도를 하는 것은, 그것이 사람으로서의 보편적 휴머니즘이자 사회적 선(善)이고 아울러 우주적인 이데아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이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군고구마만을 먹고 있을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벤처기업 회장인 둘째아들이

큰 액수의 돈을 들고 박 노인을 찾아온 어느 날.

마을이장이 마을회관의 정자나무 아래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향토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문에 현답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양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하시더군요. 효도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둘째아들 역시 의외로 이렇게 말했다.

“사실 박 노인은 내 친아버지가 아닙니다. 양부이자 법적 아버지일 뿐입니다.

 그럴 것이 내가 아버지를 찾으며 'Why me? Why me?'라고, 애타게 부르짖으며 억척스럽게 울어대던 어린 시절 어느 날, 지금은 돌아가신 할머니가 크게 역정을 내시며 ‘넌 다리 밑에 버려진 놈인데 우리가 널 데려다 키운 거야!’라고 분명히 말씀했거든요.

그런 할머니의 가설이나 개론에 크게 영향을 받은 나는 그 후 아버지나 부모의 정체성을 늘 의심하곤 했지요. 아니, ‘신(神)은 죽었다’거나 ‘신은 없다’는 가설이나 개론처럼 아버지의 존재성 자체를 부정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내가 박 노인에게 효도를 하는 것은 불우한 낯선 노인에게 동정이나 적선도 할 판인데, 양부에게 효도하는 것이 인간의 도리이고, 성공한 자의 사회적 체면이자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마을이장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과일만 먹고 있을 뿐,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사진작가인 셋째아들이

달랑 사진 한 장을 들고 박 노인을 찾아온 어느 날.

마을이장이 마을회관의 정자나무 아래로 그를 불렀다. 그리고 향토음식을 함께 나누며, 우문에 현답이라도 들어보고 싶은 양 이렇게 넌지시 물었다.

“효자라는 소문이 자자하시더군요. 효도하는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그러자 셋째아들은 손사래를 치며 되레 송구스럽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내 아버지를 내 아버지로 모시는데 효도라니요? 당치 않습니다!

 겨우 일주일에 한 번 찾아뵐 뿐인 것을….

 모시고 늘 함께 살아야하는데, 그렇게 섬기지 못하는 자식인지라 실인즉 불효자식이지요.

제가 오늘 아버지께 보여드린 이 사진 좀 보십시오. 지난주에 지리산 숲속에서 촬영을 한 것인데, 날짐승인 까마귀가 늙은 제 어미에게 날마다 먹이를 물어다주더라고요. 사람도 하기 어려운 치사랑을 할 줄 알더라고요. 그때 조물주 하나님이 은혜에 빚진 자로만 살고 있는 저를, 까마귀를 시켜 크게 꾸짖으시는 것 같다 싶어 제 마음이 여간 부끄러워지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말한 셋째아들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마을이장은 다음 말을 잠자코 기다리고만 있었다.

이장의 진지한 표정에서 무언가 공감하는 기색을 느낀 때문인지,

셋째아들은 이렇게 속마음까지 털어놓았다.

 

“자연의 생태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살펴볼수록 이성(理性)의 세계 이상인,

 신령한 그 무엇을 절로 느끼게 되더라고요. 오묘한 그런 영성(靈性), 그런 신성(神性)이 그 지어진 만물에 분명히 나타나있다는 것을 절감하게 되더라고요. 자연 속에는 과연 ‘하나님을 알만한 것’이 이미 계시되어 있어요.

인간을 포함한 모든 동물들의 모성애나 부성애 같은 내리사랑이나 까마귀의 이런 치사랑이, 다만 단세포 아메바에서 시작해서 다세포 아메바를 거쳐 자연발생적인 세포분열에 의해 생겨난 것일 뿐일까요? 다만 그렇게 진화된 산물일 뿐일까요?

저는 그 자체가 결코 시작이자 끝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알파와 오메가’는 따로 계신다고 믿습니다. 세포분열이나 진화의 세계 그 이상의 차원의 세계인, 이른바 ‘하나님의 나라’에 자연 내지 우주의 조물주 곧 창조주 하나님이 살아계신다고 믿습니다. 그럴 것이 하찮은 세상의 물건이나 사진 한 장, 그림 한 장, 집 한 채도 제작자 없이 만들어진 작품은 없으니까요. 그런 ‘알파의 문제’ 자체도 달리 보면, 세상의 정당한 이치이자 논리이자 과학 아닙니까.

따라서 우리 인생이 자연이나 짐승보다 우월한 작품이자 이른바 ‘만물의 영장(靈長)’이 될 수 있는 것은,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은혜’라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과 세상의 아버지로 이어지는 그 큰 내리사랑의 의미와 그 큰 빚의 의미를 알게 되는 그때부터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라고 사료됩니다.

진실로 하늘의 복이 있는 사람은, ‘아버지 앞에서 스스로 어른 된 자가 아니고, 돌이켜 스스로 어린아이가 된 자’라는 말씀의 의미를 저도 이제는 좀 알 것 같습니다.”

 

그때였다.

농부인 마을이장이 먹고 있던 과일을 던져버리고

투박한 두 손으로 셋째아들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마음 깊은 곳까지도 살피신다는 하나님 아버지나 저 박 노인 어른께서,

 어떤 아들을 더 사랑하시고 더 기뻐하실지 저도 이제는 분명히 알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