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Helen Adams Keller).
그녀가 그 절망적인 삼중고의 장애를 이기고
되레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빛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위인이 되자, 영국 빅토리아 여왕은
그녀에게 최고의 훈장을 수여합니다.
그 자리에서 여왕은 헬렌 켈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그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습니까?”
헬렌 켈러는 남다른 자기의 피눈물어린
노력이나 능력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주저 없는 대답은 오늘을 있게 한
‘사랑의 빚’에 대한 감사이자 강조였습니다.
“제 스승인 앤 설리번 선생님이 없었다면
그러한 일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
앤 선생님은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작은 사람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생각하는 분이셨습니다.”
앤 설리번(Anne Sullivan Macy)의 아버지는
알코올 중독자였습니다. 결핵을 앓던 어머니는 그녀가 8살 때 죽었습니다.
이후 그녀는 역시 결핵을 앓던 남동생과 함께 모든 친척으로부터도 버림을 받는 고아 신세가 됩니다. 안질환으로 시력 장애가 있었던 앤 설리번은 빈민구호소에서 함께 살던 남동생마저 죽자 그 충격이 겹쳐서 아예 시력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그러자 자살을 기도하기도 하는 등 괴성을 지르며 정신이상증세까지 보입니다.
‘거의 송장 같은 모습’인 정신이상자가 되어 정신병원에 수용된 앤을 보고
의사들은 다 가망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어댑니다. 그러나 그 병원의 한 노(老) 간호사만은 앤도 하나님의 자녀이니까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간구하면 회복될 수 있으리라고, 희망과 긍정의 말을 하면서 앤을 위해 정성껏 기도하며 보살피자 마침내 앤은 기적처럼 정상적인 ‘새 사람’이 됩니다. 노 간호사의 '말'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 삶을 두고 맹세하노라.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수기14:28)
‘고난의 대명사’인 성경 속의 인물 ‘욥’처럼
불행한 지경으로 떨어졌던 앤은 그렇게 또한 ‘하나님의 구원’을 온몸으로 체험한 이후, 퍼킨스 맹인학교에 입학을 하게 됩니다.
배움을 통해 희망과 가능성을 발견한 앤 설리번은 열심히 공부해서 최우등생으로 학교를 졸업하게 됩니다. 나아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우리나라의 격언처럼, 독지가의 도움을 받아 개안수술에도 성공해서 잃었던 시력까지도 극적으로 회복하게 됩니다.
앤 설리번의 삶이 그래서 ‘그 후 잘 먹고 잘 살았더라’,
그 정도에서 끝나버렸다면 그것은 그렇고 그런 또 하나의 '인간승리'나 '성공 스토리'는 될 수 있겠지만, 더 이상의 가치나 의미는 없을 것입니다.
불운한 고난이나 고통이나 신체장애 자체는 물론 축복도 아니고, 자랑도 아니고, 미덕도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이나 고통이나 장애 그 자체마저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고귀한 축복이자 미덕입니다. 그런 마음이 있었던 앤은 그래서 자기의 불행한 과거의 삶을 거울삼아 누군가 자기처럼 불행한 이웃을 사랑하며 살리는 삶을 살리라 결심합니다.
자기에게 긍휼을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에 ‘일만 달란트 빚진 자’(마태복음18:24)의 자세로, 자기처럼 버려진 ‘이웃’을 또한 살리고자 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길을 가고자 결심한 것입니다.
그렇게 준비된 앤 설리번은 22살 때,
당시 8살이던 헬렌 켈러를 처음으로 만납니다. 사람들은 삼중 장애아이기에 가망이 없다고 다들 고개를 흔들어댔습니다. 그러나 앤은 지난날 정신병원에서의 저 노(老) 간호사가 자기에게 그랬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믿고 기도하고 노력하면 할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가지고, 헬렌 켈러를 오래 참으며 가르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마침내 지구촌이 공인하는 ‘20세기의 기적’을 만들어냅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의 아픔을 아는 ‘긍휼’이 또한 이웃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긍휼’을 기도 응답처럼 받아낸 것입니다. 오래 참음으로 ‘우리의 기적’을 받아낸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7)
끝으로, 헬렌 켈러는 그녀의 자서전
<내가 살아온 이야기> 중에서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일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이 있다면
바로 그 날, 내가 앤 설리번 선생님을 만난 날이다.
무엇으로도 측량할 길 없으리만치 대조적인 우리
두 사람이 서로 그렇게 연결되다니,
생각할수록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그렇습니다.
‘놀라움을 금할 길 없는’ 그 자체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긍휼이자 그 섭리 역사입니다.
그럴 것이 참 스승이자 참 교육자인 그래서
또한 ‘세상의 빛’이자 ‘세상의 소금’이었던,
‘작은 예수’ 앤 설리번과의 만남은 곧 하나님과의 만남이자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다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몫의 인생 ‘자서전’에서,
‘일생을 통틀어 가장 중요한 날’은 누구와 만난 날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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