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겨울산

이형선 2015. 2. 23. 10:18

 

 

단순하게

살고 싶었는가.

자기를 죄다

벗어버리고

비우고 낮춘 산.

하긴 그래.

겨울에는

겨울처럼 살아야지.

겨울산의 치장은

차라리 허세이려니.

차라리 허영이려니.

 

좁은 길을

구하고 싶었는가.

욕심을 죄다

벗어버리고

비우고 낮춘 산.

하긴 그래.

땅에서 살지만

땅과는

구별되어야 할 산.

그 산맥

그 태생부터가

구도자였으니까.  

파수꾼이었으니까.

 

하늘을

늘 우러러보면서

살기 때문이려니.

하늘을 닮아

하늘처럼

품도 마음도 큰 산.

겨울 세상에서는

으레 버려지고

으레 잊혀지는,

앙상한 나무도

이름 없는 작은 잡초도,

당최 은혜를 모르는

금수조차도,

겨우내 품에 안고

죽음 같은 고통을

함께 나누며,

오래 참고

오래 견디는 산.

 

이제는

품 안의 모든 생명을

깨우고 있다.

겨울잠에서 깨우고 있다.

나팔소리와 함께

외치는 산의 소리 들린다.

이렇게 들린다.

 

-귀 있는 자는 들어라!

 봄이 오고 있다.

 희망이 오고 있다.

 눈 있는 자는 보아라!

 부활의 세계가 보인다.

 영원한 생명이 보인다.

 종말이나 심판이나 죽음은

 내세에만 있는 게 아니다.

 종말이나 심판이나 죽음은

 금세 여기에서도 있는 것이다.

 그처럼 부활도 천국도

 죽은 후 하늘에서만 있는 게 아니다.

 거듭나는 부활이나 천국은

 세상 지금 여기에서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사람의 과학을 더 믿는 너희여!

 나, 산은 사람의 과학보다 먼저 있었느니라.

 나, 산은 사람의 학문보다 먼저 있었느니라.

 나도 너희의 유식한 말 좀 쓰겠노라.

 자연이나 우주라는 전체 구조와

 인간이나 소우주라는 작은 구조의,

 그 생명의 메커니즘이 서로 같고

 그 인과의 알고리즘이 서로 닮았다는,

 이른바 ‘프랙탈(fractal) 구조’를

 너희는 이제야 알았느냐?

 산(山)줄기나 강(江)줄기 같은 전체 구조와

 사람이나 동물의 핏줄기 같은 작은 구조가

 서로 같고 서로 닮았다는 프랙탈 구조를,

 너희는 이제야 알았느냐? 

 그것이 다만 진회된 것이겠느냐?   

 이십 세기 기하학은 알면서,

 창세기 영성의 비밀은 알지 못하느냐? 

 사람의 과학은 믿으면서,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못하느냐?  

 ‘전체 구조’이신 하나님이

 ‘작은 구조’인 인간 너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하신 것도,

 전체 구조인 ‘하나님의 나라’가

 작은 구조인 ‘너희 안에 있는 것’도,

 너희 유식한 말로 다 ‘프랙탈 구조’이니라.

 금세와 내세가 다 그렇게 하나로 통하느니라.

 

 스스로 살아 있다고 자부하지만

 실상은 죽은 자가 되지 말지어다.

 세상 허영이나 욕심에 사로잡혀

 일 년 내내 자기(自己)라는

 허물을 벗지 못하는 자들이여!

 그 자체가 교만이자 심판이 아니더냐.

 스스로 심판을 자초하지 말지어다.

 들어라, 보아라, 깨어라!

 봄이 오고 있다.

 부활의 생명이 오고 있다.

 범사에는 때가 있고,

 때가 되면 동토가 풀리고,

 동토가 풀리는 날,

 땅의 길(道)의 비밀이 풀리고,

 하늘 길의 비밀도 풀리는 것.

 봄의 부활을 보면서도

 부활의 영성(靈性)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 되지 말지어다!

 금세의 부활생명을 보면서도

 내세의 부활생명을 깨닫지 못하는

 목석이 되지 말지어다!-

 

쾌재라.

자기를 벗어버리고

비우고 낮춘 산.

겨울의 죽음과

봄의 부활이

하나로 통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구나.

땅의 길과

하늘의 길이

하나로 통하는,

영원한 사랑을 얻었구나.

과연 그래.

땅에서 살지만

땅과는

구별되어야 할 산.

그 산맥

그 정체성부터가

구도자였으니까.

순례자였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