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또 한 해의 설날

이형선 2016. 2. 8. 09:32

 

 

나는 어제

먼 고향 묘소에서

날 찾아오신,

우리 엄니와

우리 아부지와 함께

빨래를 했다.

설을 쇠려고

빨래를 했다.

가난한 추억도 먹고,

질긴 그리움도 마시며

물빨래를 했다.

찌든 마음이나

더러운 마음

빠는 일은,

찌든 옷이나

더러운 옷

빠는 일보다

훨씬 더 어려워서,

어제 내내

물빨래를 했다.

 

 

일출과 일몰을

살다 가는

나그네 인생에게,

오늘 살아있음이

위에서 허락하신

은총인 것처럼,

위에서 주신

기회인 것처럼,

그렇게 열린

또 한 해의 하늘.

나눌 수 있는

또 한 자락의 햇살.

또 한 그릇의 떡국.

또 한 잔의 축복.

천지(天地)진미이다.

천지일체이다.

자족은 늘 넉넉하다.

그래서 설날이다.

설빔은 없어도 족하다.

어제 내내 물빨래한

마음 있어 족하다.

영혼의 나이테를

그릴 수 있는,

청결한 마음 있어

진실로 진실로 족하다.

그래서 참 명절이다.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복음5:8)

'영성 편지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평화로길' 1번지   (0) 2016.02.29
'인간의 교만'과 '인간의 절망' 사이   (0) 2016.02.22
'행복을 가져다주는 황새'를 위하여   (0) 2016.02.01
영화 '파계'에 대한 소감   (0) 2016.01.25
한겨울 강물   (0) 2016.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