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세계 제일의 사기대국, 부패대국'?

이형선 2016. 6. 27. 10:05

 

 

최근에 국내 언론에서,

‘비즈니스저널‘이라는 일본경제월간지의

한국 관련 기사가 큰 논란거리가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위증죄로 기소된 사람 수는 일본의 66배,

인구 대비로는 165배로써, 한국은 세계 제일의

거짓말대국이자 사기대국(詐欺大國)이다,

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학력 사회이지만,

지나친 경쟁과 비교가 젊은이들을 자살로 내몰고 있다,

한국은 결과지상주의인 사회라 과정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결과만 중요하게 여긴다’는 등의 내용이 그것인데,

저 기사는 일본에서 먼저 화제가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인은 숨 쉬는 것처럼 거짓말을 한다”며 한국인을 싸잡아 비난하는 대목도 있던데, 이 정도면 언론의 건전한 비판 기능과는 이미 거리가 멉니다. 한국인은 그렇게까지 거짓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일본에도 보편적으로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는 것처럼, 한국에도 역시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한국인을 맹비난하는 혐한(嫌韓) 기사일수록 대중적 인기가 높고 그래서 화제가 되거나 유명해지고 그래서 판매부수까지도 배 이상 높아지는 상술이나 군중심리에 편승한, 아직도 강점기시대의 지배근성이나 우월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편견에서 비롯된 침략적 비난이자 악의적 비방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한 우리가 부인하지 못할 사실(fact)이 있는 것도 분명하기에, 뼈아픈 치욕을 느끼며 자성(自省) 및 자정(自淨)을 위한 기회로 받아들여야 할 충분한 이유도 있다고 사료됩니다.

 

그럴 것이 우리 국내 기자의 참조에 의하면, (2013년 기준) 한일 양국 경찰 및 검찰에 접수된 통계상 사기(詐欺)범죄 발생건수는 일본이 3만 8000건이고, 한국은 그 7배 정도인 27만 4000건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1억2천7백만 명 정도인 일본인구와 대비하자면 발생건수는 더욱 늘어나고, 그래서 인구 만 명 당 일본은 1건이고, 한국은 80건이나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전문학자의 견해에 의하면, 한국은 사기라는 형사 고소사건이 통계적으로 많기는 하지만, 검찰에 의해 기소까지 가는 비율은 20%가 채 안 된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일본은 한국과는 사법문화나 관행이 달라서 충분히 기소될 정도의 증거가 없으면 일방적인 형사 고소 접수 자체부터가 어렵다고 합니다.

 

따라서 수치 비교나 수평 비교할 문제는 아니라지만, 남을 쉽게 형사적으로 고소하는 문화 자체부터가 결코 민족의 미덕일 수는 없고, 각종 비리나 부정부패나 사기사건 등이 일본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워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또한 한국의 기성세대가 단기간에 이룬 근대화 및 산업화의 과정에서 수단이나 방법이야 어떠하든 남보다 먼저 권력을 잡거나 돈을 벌어 성공 내지 출세만 하면 “장땡이다”, 목적의 성취를 위해서는 뇌물도 주고 사기도 칠 수 있다는 식의 관행 및 결과지상주의에 보편적으로 길들여져 있는 것도, 어버이들의 그런 가치관에서 비롯된 경쟁과 비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오늘의 젊은이들의 자살률이 목하 OECD 1위인 것도 다 사실이니까요.

 

저는 한 사람의 기성세대이자 그리스도인으로써 저런 내용의 기사를 접했을 때, ‘내 책임, 우리의 책임’을 절감하며 부끄러운 마음과 함께 왠지 구약의 ‘선지자 하박국’이 앓았던 회의 및 고뇌가 상기되었습니다.

다른 종교는 차치하더라도 약 5천만 명 한국인구 중 명목상 내지 수치상으론 1/3 이상이 가톨릭과 개신교인 곧 하나님을 알고 또한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인데, 그런데도 우리민족 우리사회는 왜 이토록 ‘사기대국, 부패대국’이 되었을까?

불과 3% 정도의 ‘소금’만 있어도 ‘바다’라는 사회가 썩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있는데, 저를 포함해서 우리는 과연 진정한 ‘세상의 소금’이자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일까?

‘살아계신 하나님’은 ‘사기’나 ‘부패’를 일삼는 우리 사회의 ‘악인들의 형통’을 왜 보고만 계시는 것일까? 왜 침묵만 하고 계시는 것일까?

그래서 하나님을 우리보다 더 모르는, 온갖 범신론과 다신론과 조상신 등이 무속종교처럼 난무하는 저 일본으로부터 되레 맹비난과 조롱을 받게 하시는 것일까?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내게 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눈으로 보게 하시나이까?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하박국1:2-4)

 

이스라엘은 백성 모두가 스스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하던 ‘하나님의 민족(選民)’이자 ‘하나님의 왕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왕국이자 사회의 내면에는 온갖 ‘패역’과 ‘겁탈’과 ‘강포’와 ‘변론과 분쟁’ 등 사악한 죄악과 불의가 난무했습니다. 종교 자체부터가 타락해서 하나님의 ‘율법’과 하나님의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는 사회이자 악인들이 형통해서 의인들이나 선인들이 되레 짓밟히며 고난과 고통을 받는 사회가 된 것. 시쳇말로 ‘사기대국’이자 ‘부패대국’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선지자 하박국’은 그런 사회나 그 사회의 왕이나 실세들을 향해 부르짖지 않습니다.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저렇듯 하소연 및 탄원의 기도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침내 하박국에게 이런 답변이자 ‘묵시’를 주십니다.

 

-보라 내가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이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을 일으켰나니, (…) 그들은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god)으로 삼는 자들이라. 이에 바람 같이 급히 몰아 지나치게 행하여 범죄하리라.-(하박국1:6,11)

 

그러니까 ‘갈대아 사람’ 곧 ‘바벨론제국’을 일으켜 타락한 사회이자 나라인 ‘선민 이스라엘’을 심판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자 선지자 하박국은 더 큰 인간적 혼란과 회의에 빠지고 맙니다.

조국 이스라엘이 너무 타락해서 이미 자정능력을 잃었기에 하나님의 구속사(救贖史)를 위한 역사적 간섭과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다 쳐도, 그 ‘심판의 도구’가 왜 하필이면 창조주 하나님을 전혀 모르는 그래서 우리보다 더 악하고 더 패역한 저 야만족 ‘갈대아 사람’이란 말인가?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르고 “자기들의 힘을 자기들의 신으로 섬기는 자들”인 ‘대일본제국’ 아니, ‘조선인민공화국’ 아니, ‘바베론제국’이란 말인가?

 

그래서 선지자 하박국은 다시 하나님께 탄원의 기도이자 질문을 드립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하박국1:13)

 

이윽고 하나님의 대답 곧 ‘묵시’가 다시 들려옵니다.

 

-이 묵시(revelation)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임하리라.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여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하박국2:3-4)

 

그러니까 ‘심판의 도구’로 쓰일 뿐인 저들에게는 ‘정한 때’에 더 큰 ‘종말적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BC 586년에 유다(*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킨 바벨론제국은 과연 훗날 메대‧바사(*페르시아)제국에 의해 더 큰 심판을 받고 아예 망했습니다. ‘고난의 심판’을 당한 이스라엘 민족은 오늘도 살아있지만, ‘종말의 심판’을 당한 갈대아 민족은 역사에서 아주 사라진 것입니다.

따라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섭리 내지 심판이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며”, 끝까지 ‘묵시’의 말씀을 믿고 기다리며, “믿음으로 사는 의인(義人)”이 되라는 응답이자 말씀입니다.

 

국내적 세상 풍토가 ‘사기대국’이 되고 ‘부패대국’이 되어 아무리 어둡고 혼탁해도 거기 ‘한물 한통속’이 되어 휩쓸리지 아니하고, 국외적으로 ‘비판의 도구’로 쓰인 일본의 ‘맹비난’을 통해서도 회개하며 겸허하게 배울 것은 배우고 고칠 것은 고치며, 남북 민족 통일의 문제나 강대국들 속에 갇힌 형국인 한반도의 생존의 문제도 끝까지 하나님의 섭리의 때 내지 심판의 때 내지 구원의 때를 믿고 오래 참으며,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자기 몫의 ‘십자가의 길’을 가는 의인.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으로 깨어 사는 그리스도인. 그들이 참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의 그런 삶이 우리의 국내적 ‘악인의 세력’ 일체를 이기는 묵시적 내지 계시적 해법이자 또한 국외적으로 한국을 맹비난하며 혐한(嫌韓)사상을 고취시키고 그것을 상업적으로 교활하게 이용하는 일본의 ‘악인의 세력’ 일체나 국제적이자 제국적인 모든 역학관계를 능히 이기는 평화적 해법이자 종말적 해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기도 부패도, 증오나 혐오나 강포도, 그것을 심은 자는 또한 그 재앙의 열매 역시 자기가 거두기 마련이고, 그것을 관행처럼 자행하는 자는 결국 그것이 관행처럼 부메랑처럼 되돌아와 자기 면상을 때리기 마련이니까요.

따라서 우리가 명심할 것은 ‘하나님의 정한 때’는 더디기도 하지만 때론 “밤의 도적 같이” 임하기도 한다는 그것일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그런 계시의 말씀과 섭리 역사를 굳게 그리고 끝까지 믿고, 보다 신실(信實)하고 보다 정직하게 살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를!

 

-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도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니라.-(잠언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