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세밑의 겨울나무

이형선 2016. 12. 26. 10:07



남들이

산 나무라면

어떻고,

죽은 나무라면

또 어떠랴.

스스로

비운 삶이라면

어떻고,

가난해서

헐벗은 삶이라면

또 어떠랴.

십자가처럼

죄다 벗어버린

겨울나무에게,

자기 이름

몇 자는

없어도 좋다.

몰라도 좋다.

 


벌거벗은

삶이지만

겨울이 추워

떨지는 않는다.

세상이 무서워

떨지도 않는다.

낮도 밤도

고드름처럼

길게 얼어버린

동토에서,

지극히 작은

가지 끝 하나

움츠리지 않는 것은

네 속에서

고동치는,

생명의 힘

때문이려니.

세상 이래서

벌거벗으면

죽음이 오지만,

하늘 아래서

벌거벗으면

부활이 온다는,

진실의 힘

때문이려니.

 


진실이 있으면

이웃도 있어라.

세월도 서로

이별을 하고

인연도 서로

잊고 잊히는

세밑이지만,

여전하게 오가는

이웃 있어라.

앙상한 가지에

오선지처럼 앉아

명년을 노래하는

새들 있어

자족하는 겨울나무.

가는 해와

오는 해는

제야에서 만나고,

가는 마음과

오는 마음은

언약에서 만나고.

 


-잘 가.

-잘 살아.

-또 보자.

그 모든 긍정이

합력해서

때가 되고

새해가 되는가.

그 모든 기약이

합력해서

새 일이 되고

새 것이 되는가.

묵은해와

구별되어야 할

새해라면,

묵은 것과

구별되어야 할

새 것이라면,

아직도 많이 남은

겨울 한파에

네 앙상한 가지는

많이 흔들려도 좋다.

더 오래 참고

더 오래 기다리더라도

아무쪼록

푸르른 봄날,

나로 하여금

네 생명의 생명 됨을

증언하게 하라.

네 삶에 부활 있음의

증인이 되게 하라.

 

  


   *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이사야43: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