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인종 때의
문무를 겸비한 정치가이자
석학이었던 김부식(金富軾).
사가들의 평가에 의하면 그가 중심이 되어 편찬한,
‘우리 민족 최고(最古)의 정사’인 50권의
〈삼국사기(三國史記)〉는 현존 역사 자료로써
중국의 역사서인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비견이
될 만큼 그 가치가 크다고 합니다.
물론 시대적 및 사상적 배경의 영향을 받아, 중국 중심이던 당대의 사대적 경향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학자들의 비판도 있습니다만, 여하간 그가 쓴 ‘삼국사기 총평’ 중에 나오는 아래 글은 여전히 ‘정치적 삼국시대(?)’ 내지 ‘이념적 삼국시대(?)’를 사는 오늘의 우리에게 주목할 만한 귀감으로 다가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살펴볼 것 같으면 그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화목하여
백성들이 다 같이 화합할 때는 비록 강대국일지라도 능히 이를 빼앗지 못했다.
그러나 그 나라에서 의롭지 못한 일을 행하고, 백성들에게 어질지 못하여(不仁)
백성들의 원망을 불러일으키게 되면 나라의 기강이 허물어져 자연 진흥되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맹자가 이르기를 천시(天時)와 지리(地利)가 인화(人和)만 못하다고 하였다.-
그렇습니다.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화목하여 백성들이 다 같이 화합할 때는 비록 강대국일지라도 능히 이를 빼앗지 못했고’, 또한 못합니다.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 처한 지정학적 입지를 ‘살펴볼 것 같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북한은 ‘핵무기’를 과시하며 우리 남한을 향해 “불바다를 만들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고, 강대국인 중국은 이미 ‘사드 보복’을 노골적으로 진행 중이고, 역시 강대국인 미국은 ‘사드’ 부지나 기반시설은 한국이 부담하고 사드 자체나 그 운용비용은 미국이 부담한다는 한미 간의 기존협약(SOFA)까지 무시하고, ‘10억불’이라는 사드 비용까지 한국이 내야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전쟁위기론’을 정치적으로 과장해서 수상 아베 집안의 비리를 덮는 등 아전인수에 바쁩니다. 예나 지금이나 상대적 약소국가는 그래저래 억울하고 서럽기 마련입니다.
문제는 그럴수록 ‘위와 아래의 마음’, 지역 및 계층 간의 마음, 빈부 간의 마음이 ‘서로 화목하여 백성들이 다 같이 화합’해야 될 텐데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싶습니다.
그럴 것이 대통령선거를 하루 앞둔 지금, 보수나 진보나 중도 진영의 후보자들은 물론이고 그들을 지지하는 국민들이 서로 ‘내 편, 네 편’, ‘아군, 적군’이 되어 ‘네거티브 선거전(選擧戰)’을 치르면서, 되레 불화와 반목과 대립을 고조시키고 있으니까요. 심지어 지지후보가 서로 다른 아버지와 아들 간에 폭행사건까지 발생하고, 가족 간에 “말도 안 섞는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는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민주주의 기본이념 그대로 ‘국민이 국가의 주인’인데, 왜 선거철만 되면 국민들이 서로 ‘내전(?)’을 치르며 불화와 갈등과 반목과 대립 등의 계절병을 앓아야만 할까요? 더 큰 문제는 선거가 끝나도 그런 병증이 쉽게 치유 내지 회복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승자(勝者) 무리는 주어진 권력으로 ‘적군’에게 은연중 보복하며 살생부 같은 ‘블랙리스트’나 만들고, 패자(敗者) 무리는 복수전을 기다리며 역시 은연중 칼을 갈기 십상이라는 데 있습니다.
따라서 내일의 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19대 대통령으로 누가 당선되든 간에 선결의 과제는 ‘위와 아래의 마음이 서로 화목하여 백성들이 다 같이 화합할’ 수 있는 길을 찾는 그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다 같이 화합할 수 있는 그 길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타락한 사람의 성정은 저를 포함해서 이기적이고 감정적이고 타산적이기 마련이어서 쉽게 화합할 수가 없습니다. 감정이나 편견에 사로잡히면 때론 밴댕이 소갈머리처럼 때론 바늘구멍의 여유조차 없도록 옹졸한 것이 사람의 마음 아니던가요.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heart)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언4:23)
정녕 그렇습니다.
‘모든 지킬만한 것 중에’ 가장 소중한 것은 그래서 먼저, 더욱, 지켜야 할 것은 ‘권력’도 ‘재물’도 그 ‘자리’도 아닙니다. ‘마음’입니다. 생사(生死) 곧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아는 바른 마음이자 선한 마음입니다. 하나님을 믿든 안 믿든, 신앙유무를 떠나서,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인 자기에게 하나님이 ‘대통령’이라는 권력을 위임한 이유도, 재물을 위임한 이유도 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울러 이웃(*국민)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임을 아는 자는 그래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이웃을 섬기는, 겸손한 마음과 사명은 그런 우주적 이해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언16:32~33)
예나 지금이나
‘제비’도 사람이 뽑고,
‘대통령’도 선거를 통해 사람이 뽑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일을 작정(decision)하시는 분’ 곧 ‘섭리하시는 분’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도, 그 당선자가 ‘내 편’이나 ‘아군’이 아니더라도, 하나님의 그 결정 그 섭리를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국민은 그래서 또한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네 편’이나 ‘적군’조차 섬기며, 화합 및 화목할 수 있는 마음이 거기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마음’이자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는 그래서 진실로 ‘성을 빼앗는 자(one who takes a city)’ 혹은 ‘청와대를 차지한 자’보다 낫습니다. 권좌를 차지했다고 해서 이기적 아집이나 이념적 독선이나 교만에 빠져 그 권력으로 과거지향적 정치보복이나 ‘패권’이라는 집단이기적인 패거리 정치를 일삼는 자보다 그 미래 그 결국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왜냐고요? ‘일의 작정’이 실인즉 하나님의 손에 있는 것처럼 ‘일의 심판’도 역시 하나님의 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이유도, 하나님과 모든 이웃 내지 국민과의 화목 및 화합에 힘써야 할 이유나 사명도 거기 있습니다.
권력도 재물도 성공도 ‘소금’처럼 좋은 것이로되, 그것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 내지 국민들을 ‘섬기는’ 그 본래적 ‘맛’을 잃어버리면 결국엔 역시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까요.
-(예수께서 이르시되) 소금은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이를 짜게 하리요?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마가복음9:50)
달(月)은 발광체가 아닙니다.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달이 그래도 ‘밤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해의 빛’을 그 중심에 간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정이 타락한 죄인인 사람 역시 스스로 빛을 낼 수 없습니다. 사람이 그래도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빛’을 그 중심에 간직하고 있으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소금’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세상의 부패를 막고, 살맛을 살리는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그것이 유물론(唯物論)이나 주체사상 등의 인간 이념이나 철학이나 학문으로 가능했다면 봉건적 독재 권력인 저 북한 땅에 ‘유토피아’라는 ‘지상낙원’이 먼저 이루어졌어야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국제적 문제아’ 수준입니다.
따라서 인간 우리가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것도, ‘너희 속에 소금’ 곧 ‘참 소금’인 ‘그리스도’를 둘 때 비로소 가능한 일입니다. “너희 속에 그리스도를 두고 서로 화목하라‘, ’너희 속에 하나님을 두고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명령이자 사명의 부여입니다.
‘내 감정’, ‘내 배짱’, ‘내 이념’으로는 도저히 ‘원수(?)’인 ‘너와 화목할 수 없지만’, 그럴수록 ‘네 속에 그리스도를 두고’ 그리스도 이름으로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네 속에 자기 몫의 십자가, 자기 몫의 희생이라는 소금을 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내 감정’, ‘내 배짱’, ‘내 생각’으로는 도저히 ‘웬수(?)’인 ‘너와 화목할 수 없지만’ 그래서 이혼해야 하지만, 그럴수록 ‘네 속에 그리스도를 두고’, ‘네 몫의 십자가라는 소금을 두고’, 하나님의 이름으로 ‘서로 화목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의 ‘부패’를 막고 서로의 ‘살맛’을 살리는, 피차 ‘하늘의 복’이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강대국’도, 강대한 자인 ‘사탄(Satan)’도 ‘능히 하늘의 복을 빼앗지 못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중심에 ‘그리스도가 없는 소금’이자 ‘자기 몫의 십자가가 없는 소금’은 참 ‘소금’도 아니고, 참 교회도 아닙니다. 그래서 이웃과의 공동체나 사회나 국가의 화목이나 화합을 도모할 수도 없습니다.
새로 선출된 대통령 역시 유신론자든 무신론자든 불신론자든 그 여부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작정’ 내지 결정에 의해 선택되고 아울러 사명을 부여받았다는 그 영성(靈性)의 비밀이자 섭리의 비밀을 알고, 공의 내지 정의이자 사랑 그 자체 및 본체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삶이 곧 ‘하늘의 지혜’가 있는 대통령이자 ‘세상의 빛, 세상의 소금’이 될 수 있는 길임에 틀림없습니다.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 서로 화목” 및 화합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 이 대한민국 위에 어서 속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되기를!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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