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對北)제재 결의는 물론이고,
미국의 선제타격도 불사하겠다는 ‘옵션’에
대항 및 시위라도 하는 듯 요즈음 북한의
미사일 발사사태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 트럼프 정부를 향해 남한이나 주한미군 등의
‘인질’을 담보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형국인데,
전문가들도 북의 핵·미사일 기술이 최종성사단계에
거의 이르렀다고 평가하고 있는 걸 보면 북한이
공들인 핵을 쉽게 포기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럴 것이 저 김정은으로썬 핵(核)을 북한체제존립을 위한
유일한 무기이자 ‘생명줄’이라고 인식하고 있으니까요.
정녕 그럴까요? 저 핵이 되레 북한 체제종말을 앞당기는
흉기이자 ‘죽음줄’이 될 수도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고인이 된 미국 35대 대통령 존 F. 케네디는
재임 중 행한 한 연설에서 핵무기를 ‘인류에게 있어서
다모클레스의 검(劒)’이라고 표현 및 언급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모클레스는 시칠리아 섬의 도시국가 시라쿠사의 왕 디오니시우스의 신하입니다. 그는 왕의 통치 권력과 영광을 항상 부러워하며 왕의 존엄을 찬양하기에 여념이 없는 아부(阿附)형 신하입니다. 어느 날, 그런 다모클레스에게 왕이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왕의 자리에 하루 동안만 앉아 있어보도록 하시오.”
소원풀이를 하게 된 다모클레스는 왕의 선처에 감격하며 왕좌에 오릅니다. 천하와 만민을 눈 아래로 내려다보는 지상의 권좌이자 금좌. 눈앞에 가득 차려진 산해진미. 그런 부귀영화는 과연 좋았습니다. 그러나 권좌에서 눈을 들어 천장을 올려다 본 순간, 다모클레스는 소름이 끼치도록 경악하고 맙니다. 거기 예리한 칼이 머리카락 한 올에 달랑 매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머리 위로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저 시퍼런 칼!
다모클레스의 감격은 금세 공포로 변하고 맙니다. 그래서 권좌가 되레 불안하고 불편한 그래서 차라리 고통스런 자리가 되고 맙니다. 만민이 부러워하는 화려한 왕좌 그 자리가 평범한 신하나 서민들의 삶 자리보다 되레 더 위험하고 불행한 자리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케네디 대통령의 말처럼 ‘핵무기’ 등의 살상무기는 과연 예나 지금이나 지구촌 모든 국가 및 인류 위에 ‘머리카락 한 올에 달랑 매달려 있는’, 그래서 인간과 자연 모두의 생명과 평화를 한사코 위협하는 ‘다모클레스의 검’입니다. 적이나 적대국의 칼이나 총이나 핵무기는 물론이고, 자기 혹은 자국(自國)의 칼이나 총이나 핵무기가 되레 자기를 찌를 수도 있고, 자기 나라를 파멸로 인도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검(劒)을 도로 집에 꽂으라.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라.-(마태복음26:52)
물론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약육강식(弱肉强食)논리나 패권논리가 지배합니다. ‘힘’ 곧 ‘무력’이나 ‘권력’이나 ‘재력’을 가진 자들이 지배하는 사회이자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또한 주목할 것은 ‘힘을 가진 자들’인 ‘공룡’은 이미 멸종했고, ‘사자’나 ‘호랑이’ 역시 되레 멸종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약한 자들’인 ‘양’이나 ‘토끼’ 등은 여전히 왕성하게 번식하고 있습니다. 저 자연의 질서 속에, 그것들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의 자연계시적 말씀 및 섭리가 분명히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자(the meek)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복음5:5)
그렇습니다. ‘맹수’가 아닌, ‘영웅’도 아닌, ‘온유한 자, 온순한 자’가 되레 ‘땅’을 차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땅’, 그래서 행복한 ‘땅’ 혹은 ‘심령’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온유한 그래서 연약하게 보이는 ‘양’이나 ‘토끼’들이 되레 ‘선한 목자’의 보호와 인도함을 받아 ‘푸른 초원의 땅’을 차지하고, 숨어서 살아야하는 혹은 경호원들에게 갇혀서 살아야하는 혹은 ‘다모클레스의 검’ 아래서 살아야하는 ‘사자’나 ‘호랑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인즉 봉건적 왕조시대에 대물림하던 왕좌는 물론이고, 임기가 보장되는 민주주의시대의 선출직인 오늘의 대통령자리 역시 ‘칼’이나 ‘총’이나 ‘핵무기’ 같은 살상무기의 우선적 표적이 되는 자리입니다. 그런 징조를 미리 알았던 것일까요? 그래선지 케네디 대통령은 자국민의 ‘총’에 맞아 의문의 암살을 당했습니다만, 여하간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역시 오늘 자랑하며 유세하는 저 ‘핵무기’가 또한 바로 자기 머리 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다모클레스의 검’이라는 걸 명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아래만을 보기 좋아하는 눈을 들어 자기 머리 위를 볼 수 있어야 하고, ‘아래 세계’에만 집착하는 눈을 들어 ‘위의 세계’ 곧 ‘하늘의 세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에 다름 아닙니다. 환언하자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 재앙 곧 (*말들) 자기들의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이
죽음을 당하니라. 이 말(馬)들의 힘은 입과 꼬리에
있으니 꼬리는 뱀 같고 또 꼬리에 머리가 있어
이것으로 해하더라.-(요한계시록9:18~19)
2천여 년 전,
노년의 사도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되었을 때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1:1)를 기록한 저 ‘요한계시록’은 고도로 상징적인 예언서이자 묵시문학이니까 그 누구도 인위적 내지 임의적으로, 함부로 풀 수는 없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개신교 신학의 아버지’ 요한 칼뱅조차도 ‘요한계시록 강해’만은 집필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풀 수 있는 분은 ‘계시를 주신 그리스도’ 한 분 뿐이니까요.
하지만 사도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계시 및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21세기의 ‘핵무기’를 보았을 때, 난해한 그것이 ‘입에서 나오는 불과 연기와 유황으로 말미암아 사람 삼분의 일을 죽이는 말(馬)’처럼 보였을 것 같다 싶기도 합니다. 저 ‘말들’의 정체가 현대첨단무기인 ‘핵·미사일‘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그리스도의 말씀’의 계시적 내지 예언적 추이와 비밀에 대한 현실적이자 말세적인 공감이 커질수록 인류역사는 과연 성경에 계시 내지 예언된 그대로 ‘종말론’을 향해 진행하는 역사라는 것을 더욱 절감하게 됩니다. 아울러 모든 인간 개개인의 역사도 역시 ‘종말론’을 향해 진행하는 역사입니다.
따라서 ‘핵·미사일’ 같은 상대적 ‘힘의 소유’로 제국적 내지 제왕적 세상 패권이나 기득권을 장악하고 그것을 고수하려는 오늘의 강대국 지도자들이나 저 북한의 김정은은 물론이고, 권력이나 재력 등 상대적 ‘힘의 소유’로 세상의 행세에 연연하는 우리 개개인에게도 정작 중요한 자기 인생 절대 숙제는 ‘마지막’이자 ‘마침’이자 ‘오메가’이자 ‘내세’라는 종말론(終末論) 그것을 준비하는 문제입니다.
‘아래 세계’ 곧 세상일에만 집착하는 눈을 들어 ‘위의 세계’ 곧 하늘을 우러러볼 수 있어야하는 문제이자 자기 머리 바로 위에 늘 현재형으로 위태롭게 걸려있는 ‘다모클레스의 검’에 대비하는 문제이자 그것을 능히 이기는 구원 곧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평안과 안식을 준비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웃 내지 국민을 ‘네 몸처럼’ 보다 의(義)롭게, 보다 선(善)하게, 섬기며 베푸는 사랑의 삶을 통해서 말입니다. 그런 삶만이 오직 자기 몫으로, 진실로 복 있는 자기 상급(賞給)으로 영원히 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요한계시록22: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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