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세상의 소금' 앞에서

이형선 2017. 7. 3. 10:06



소금이 쉬더냐?

로마가 쉬더라.

소금이 변하더냐?

역사가 변하더라.

소금이 썩더냐?

세월이 썩더라.

소금이 시들더냐?

양귀비가 시들더라.

소금이 죽더냐?

니체가 죽더라.



나트륨은 알아도

세상의 소금은 모르는,

이미 배부른 세대가

성인병 타령하며

비판도 하고

기피도 하지만,

싱거운 건

소금이 아니지.

단 게 좋고

좋은 게 좋다지만,

그것도 다

소금은 아니고.

맛본 자는 알잖아.

흰 가루라고 다

소금이 아니라는 걸.

설탕가루와

소금가루는

전혀 다르던 걸.



참 소금이요-

순 소금이요-

다투어 팔지만,

천일염과

돌소금은

또 다르더라.

하늘과

땅처럼

또 다르더라.

천일염의

본향은

바다인 것을.

하 고달픈

염전의 세월.

뉘 아는가?

뉘 아는가?

땡볕에 맞고

바람에 맞고

가래에 치이며,  

세상의

소금되어진  

그 세월

그 순례의 여정을.



거듭나면,

존재도 심령도

사명이 되는가.

땀이어도 좋으리.

눈물이어도 좋으리.

바다를 알고

바다의 마음을 품은

소금은, 그래서 늘

스스로 녹는다.

자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로다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아하, 통째로

자기를 부인하고

조용히 사라지는

무아(無我)의 생애.

바다로 돌아갔는가.

아서라.

죽은 것이 아니다.

겉대는 갔어도

속대는 살아있다.

저 낮은 곳까지

한 맛으로

공평하게 섬겼기에,

귀천 가리지 않고

처음 마음으로

여일하게 섬겼기에,

김치 네 속에도

된장 내 속에도,

숙성된 맛으로

고상한 삶으로,

더 크고 더 높게

살아있다.

 


지금 여기,

와 있는 바다.

바다의 소금이 아니어라.

성전의 소금도 아니어라.

세상의 소금이어라.

지금 여기,

와 있는 천국.

천국의 소금이 아니어라.

교회의 소금도 아니어라.

세상의 소금이어라.

이 현존의 비밀을,

이 존재의 조화를,

와서 보라!

어서 와서 맛보라!

 

 

  

   *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태복음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