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어떤 농사꾼

이형선 2017. 7. 31. 09:29



무슨 일하며

사느냐고요?

농사짓고 삽니다.

땅뙈기라도 있느냐고요?

그런 건 없어요.

그냥 천수답(天水畓)

소작농입니다.

 


그 나이 되도록

땅마지기도 마련 못한

지지리도

못난 사람이라고요?

맞습니다.

못나도 한참을 못났지요.

그런 사람도 있답니다.

 


우리 아바 아버지

나보다 더 나를

잘 아시는 분인지라,

이른 비도 늦은 비도

먹고 마시는 양식도,

다 맡기고 사는 것이

외려 더 평안하거든요.

 


그런 사람들도 있어야

세상의 숨통이

트이는 거 아닙니까?

스스로 잘난 사람들이

맹수들처럼 헐떡거리며,

연일 치고받고 싸우는

이 세상의 숨통이

트이는 거 아닙니까?

 


무슨 농사

짓느냐고요?

포도농사 짓지요.

포도원 주인이냐고요?

주인은 아니에요.

그냥 부르심 받은

가지()입니다.

종이지요.

 


그 나이 되도록

종살이하는

지지리도

어리석은 사람이고요?

맞습니다.

어리석어도 한참을 어리석지요.

그런 바보도 있답니다.

 


우리 주인이

나보다 더 내 길을

잘 아시는 분인지라,

낮이든지 밤이든지

살든지 죽든지,

다 맡기고 사는 것이

외려 더 자유롭거든요.

 


그런 바보들도 있어야

세상에 희망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참 주인도 아닌 주인들이

거머리 두 자식처럼,

다투어 탐욕을 챙기는

이 세상에 희망이

생기는 거 아닙니까?

 


인생은 어차피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나그네 여정인 것처럼,

인생은 어차피

너 나 없이

가지()의 여정이랍니다.

너무 폼 잡지 마세요.

교만하지도 마세요.

가지는 결국 가지니까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순 없잖아요.

가지가 스스로

생명을 맺을 순 없잖아요.

 


참 포도나무에서

떨어져나간 가지나

버려진 가지는,

그래서 불행하답니다.

마른가지는 죄다

허무한 주검의 길을

가기 마련이니까요.

참 포도나무에

바보처럼 꼭 붙어있는

푸른가지는 그래서

외려 복이 있답니다.

오늘의 푸른 생명이

거기 있고,

내일의 생명이자

영원한 생명의 열매도

거기 있으니까요.

 


언제 시간나면

우리 포도원에

한 번 들리세요.

너무 바쁘신 몸이라고요?

썩어질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를 위해,

너무 바쁘신 몸은

결국 허무하더라고요.

썩어질 양식이나

음료나 열매를 위해,

너무 분주한 몸도

결국 허망하더라고요.

장수시대라지만

그래도 요람은 멀고

무덤은 가깝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인생의 유월절(pass over)

섬김의 만찬을 위해

참 떡과 포도주를

준비하세요.

영원히 썩지 않을

참 생명의 떡과 포도주를

구하고 찾으세요.

보는 눈이 열리면,

참 포도나무가 바로

참 생명나무인 것을!

들을 귀가 열리면,

참 생명의 떡도 포도주도

거기 있는 것을!

 



   *

 



-(*예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요한복음15: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