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석양(夕陽)

이형선 2017. 9. 18. 09:55



꽃 보고

살아왔더냐.

빛 보고

살아왔더냐.

시든 꽃

곱지 않지만,

시든 석양은

한낮보다  

더 고와라.

인자의 품처럼  

붉게 물든,

저 노을빛

저녁하늘.

저 넉넉한

가을하늘.

 


이제는

참회하는

인격처럼

교회 첨탑 

높은 십자가에

매달려있는

석양(夕陽).

누굴 닮아

누구 대신

매달린 것일까.

한 겹

내 죄,

두 겹

내 허물.

내 대신일까.

 


신의 성품을

닮은

대속(代贖),

예나

지금이나

기쁨이 되고

잔치가 되고.

은빛으로

금빛으로

온통 빛나는

십자가.

 


이제는

겸허하게

배경이 되고

후광이 된

석양은,

그래서

임종조차

찬란해진다.

황혼의

그늘은

이미 없다.

 


때론 기쁘고

때론 괴롭던

하루.

일생 같은 하루.

이제

석양은 지지만,

내일에 열려지면

아하,

저녁도

아침도

다 고운

노을이려니.

 


때론 선하고

때론 악하던

일생.

하루 같은 일생.

이제

석양은 지지만,

내세에 열려지면

아하,

금세도

내세도

다 고운

낙원이려니.

 

 


   *

 

 


-(*함께 십자가에 달린 행악자 중 하나가)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23:4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