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재물을 풀어 '은혜와 의를 사온' 이유

이형선 2018. 2. 5. 10:56



춘추전국시대 제()나라의 명재상

맹상군(孟嘗君)의 집에는 수많은 식객들이

있었는데, 종국적으로 그들 중 가장 충직하고

지혜로웠던 사람은 풍환(馮驩)이었다고 합니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가난한 선비 풍환은 맹상군이 왕족이자 재상이었던

그의 아버지 전영이 모았던 큰 재물을 풀어 식객들을

우대한다는 말을 듣고 먼 길을 걸어 찾아갑니다.

맹상군은 거지 행색인 풍환의 외양이 우습고

쓸모도 없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식객으로 받아줍니다.

‘3등 숙소에 배치해준 것입니다.

 


그런 풍환은 고기반찬이 없다”, “수레가 없다는 등

푸대접을 투덜대며 괴짜노릇을 하지만 그럴 때마다

맹상군은 그를 내치지 않고 큰마음으로 포용합니다.

원대로 ‘2등 숙소나아가 ‘1등 숙소로까지 옮겨준 것입니다.

 


그 무렵 맹상군은 왕족이나 공신이나 대신들에게 나라에서 하사한 영지(領地)인 설() 땅 곧 지금의 산동성 동남지방에 ‘1만호의 식읍(食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3천여 명이라는 많은 식객을 부양하기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설 땅 그곳 주민들에게 필요한 돈을 빌려주고 정당한 이자를 받고 있었는데 문제는 그들이 도무지 돈 갚을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맹상군이 사람을 찾습니다.

() 땅에 가서 빌려준 돈을 받아올 사람이 누구 없는가?”

 


그러자 1년여 무위도식하던 풍환이 그 소임을 자기가 맡겠다고 나섭니다.

맹상군이 쾌히 승낙하자 풍환이 떠나기에 앞서 이렇게 묻습니다.

빚을 다 받으면 무엇을 사올까요?”

무엇이든 좋으니, 내 집에 부족한 것을 사오시오.”

 


이윽고 설에 당도한 풍환.

그는 빚진 식읍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이나 실정을 두루 살핀 후,

맹상군이 시키지도 않은 전혀 엉뚱한 말을 선포합니다.

맹상군이 여러분의 모든 채무를 면제하라고 나에게 분부하셨소.”



그리고 쌓여있던 차용증 더미에 불을 질러버립니다.

차용증은 모두 재로 변하고, 빚진 가난한 백성들은 맹상군의 후덕에 감격과 감사의

환호성을 지릅니다. 그렇게 소임을 마친 풍환은 빈손으로 제나라 맹상군 집으로 돌아갑니다.

 


맹상군이 묻습니다.

무엇을 사오셨소이까?”

그때 풍환의 대답인즉 이렇습니다.

나리께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와 의입니다.(君之不足則恩義也)

 차용증서를 불살라버리고, 나리를 위해 돈 주고 사기 힘든

 은혜와 의를 사가지고 왔습니다.(以燒借書爲君賣恩義來)”

말문이 막힌 맹상군.

그도 사람인지라 당시엔 몹시 못마땅했습니다.

 


1년 후.

새로 즉위한 제나라 민왕(泯王)은 백성들의 신망이 높은 맹산군을 한편으론 시기하여 재상 직에서 물러나게 합니다. 그러자 3천여 명의 식객들도 모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때 풍환은 그들에게 잠시 설 땅에 가서 살도록 권유합니다.

맹상군 역시 실의에 찬 몸을 이끌고 설 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때 식읍 백성들 모두가 열렬히 환호하며 맞이합니다. 그제야 맹상군이 풍환에게 이렇게 토로합니다.

선생이 전에 은혜와 의를 사왔다고 한 말뜻을 이제야 겨우 깨달았소.”

 


그 후,

풍환은 위()나라의 혜왕(惠王)을 설득하여 위나라의 부국강병을 위해선 맹상군을 중용해야만 한다는 지략을 도모한 후, 그런 정보를 역이용해서 제나라 민왕이 맹상군의 진가를 깨닫도록 합니다. 그러자 제나라 민왕은 맹상군을 위나라에 뺏기지 않기 위해 정중하게 사과한 후 맹상군을 다시 재상으로 모셔옵니다. 그렇게 식객풍환이 맹상군을 다시 살린 것입니다.

 


물론 선비 풍환이 맹상군에게 그렇게 충직했던 것은 가난한 식객들이나 어려운 백성들을 살펴 우대하는 맹산군의 인물됨이나 그 진정성을 실감 및 신뢰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울러 그에겐 춘추전국시대라는 불안한 정치상황에서 미래를 미리 읽는 선지자적(?) 혜안이나 통찰력이 있었던 것으로 사료됩니다.

그래서 감히 나리께 지금 부족한 것은 은혜(恩惠)와 의()입니다라고 직언 내지 고언을 할 수 있었고, 빚진 자들의 빚을 죄다 탕감해주고 대신 그 은혜와 의를 사올 수 있었던 것이겠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쳐주신 기도인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6:12)

 


우리의 '죄(debts)’ 곧 헬라어 오페이레마과 동의어입니다. 따라서 죽어 마땅한 죄인인 인간 우리의 죄, 우리의 빚을 탕감해주시는 그것이 진정으로 크신 하나님의 은혜(恩)와 ()’ 그 자체이자 그 근원이라는 말씀이요 가르침인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 그리스도께선 태생적으로 죄인인 인간 우리 모두의 정체성을 하나님께 일만 달란트 빚진 자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천국은 그 종들과 결산하려 하던

 어떤 임금과 같으니 결산할 때에 만 달란트 빚진 자

 하나를 데려오매 갚을 것이 없는지라.

 ··· 그 종의 주인이 불쌍히 여겨 놓아 보내며

 그 빚을 탕감해주었더니-(마태복음18:)

 


당시 1달란트는 노동자들이 250년 정도를 일해야 벌 수 있는 돈입니다. 그 일만 배인 일만 달란트라면 계산하기조차 어려운 천문학적 수치입니다. 따라서 인간의 노력이나 공적으로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의 값이자 을 의미합니다. 막말로 죄인인 내가 죽어도 도저히 갚을 수 없는 이라는 것. 오직 희생양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을 통해 갚을 수밖에 없는, ‘하나님의 은혜이자 의에 대한 빚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고린도전서15:10)입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 자체만 해도 하나님의 전적 은혜입니다. ‘큰 은혜에 빚진 자라는 걸 깨달아 알게 된 자는 절로 작은 이웃에게 작은 은혜라도 베풀며 살려고 노력하기 마련입니다. 또한 그럴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렇게 큰 빚을 탕감 받은 인생 우리가, 그렇게 큰 죄를 용서 받은 인생 우리가, 돌아서면 금세 하나님의 그 큰 은혜나 의를 잊어버리고 되레 배은망덕한 짓을 예사로 자행한다는 그것입니다.

 


-그 종이 나가서 자기에게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 한 사람을 만나 붙들어 목을 잡고 이르되

 빚을 갚으라 하매-(마태복음18:) 

 


동료의 목을 잡고, 빚을 갚으라고 을러댄 저 백 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들의 3달 월급 정도 되는 액면입니다. 그러니까 사형에 해당하는 중죄를 사면 받고 운명의 교도소에서 출소한 자가 배가 고파 빵을 훔친 절도범을 만나자마자 그의 생명인 목을 잡고닦달질하는 형국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이웃과의 관계는 결코 둘이 아닙니다. 하나입니다. 그래서 동료에 대한 저 종의 행태는 그 이웃을 역시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배은망덕이 되고 악행이 됩니다.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 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태복음18:)

 


또한 우리는 성경에서,

주인의 재물을 풀어 은혜와 의를 사온

저 풍환의 지혜 및 그 이상의 지혜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익히 배울 수 있습니다.

이른바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가 그것입니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주인의 귀에 들어가자

주인이 그를 불러 해직을 경고합니다.

그러자 청지기는 나름대로 주인의 미래가 아닌,

자기의 미래를 대비합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일일이 불러다가-(누가복음16:)

 


제멋대로 그 빚을 삭감해줍니다. ‘기름 백말의 빚을 진 자를 오십 말, ‘밀 백석의 빚을 진 자를 칠십 석등으로 그 채무증서를 변조시켜준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분명 의로운 일이 아닙니다. 주인도 친히 그것을 지적합니다. 그러나 그 지혜만은 인정 및 칭찬합니다.

 


-주인이 그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eternal dwellings)로 영접하리라.-(누가복음16:)

 


물론 돈이나 재물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닙니다. 의도 아니고 불의도 아닙니다. 사람이 그것을 어떻게 벌고,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선도 되고 악도 됩니다. 의도 되고 불의도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모든 것이 주인의 재물이라는 전제 그 자체입니다. 그렇습니다. 인간 우리는 모두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갑니다. 진정한 내 것, 내 재물은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주인참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한세상 살며 그분의 것을 관리 및 활용하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돈을 주인으로 모신 돈의 노예가 되는 것도, 자기 돈이라고 탐욕이나 교만이나 위세를 부리며 갑질하는 것도 악이 되고 불의가 되고 어리석음이 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재물은 어차피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부자역시 빈손으로 죽어야만 합니다. 그 재물로 현재적이자 종말적으로 구현되고 또한 구현되어야 하는, ‘참 정의와 사랑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는 없는 것입니다. 해서 어차피 불의한 재물입니다.

따라서 그 한시적인 재물친구를 사귀는 것영원한 은혜와 의를 사는 것그 자체가 정작 중요합니다. 어려운 이웃을 사랑하며 살리는 것이 정작 중요한 지혜이자 투자라는 것입니다.

과연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은 주인의 재물이자 불의한 재물을 풀어 가난한 설() 땅의 백성들을 주인 맹상군의 이름으로 살리고, 그렇게 은혜와 의를 사온풍환은 그 지혜를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저들처럼 과연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되레 불의한 재물의 노예나 경제동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예나 지금이나 재물을 모으는 지혜나 능력보다 더 크고 영원한 가치는 되레 재물을 나누는 지혜나 능력에 있습니다. 성공하는 지혜나 능력보다 그 성공을 이웃과 나누며 섬기는 인격이 참 지혜이자 능력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알고 믿는 진정한 그리스도 인격이라면 세상 나그네 인생을 살다간 저 맹상군이나 풍환이 모르고 있었던 하늘의 본향영주(永住)할 처소'까지 알고 있는 사림들입니다.

우리가 종말론적인 미래이자 처소까지 진정으로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참 그리스도 인격이라면 우리는 영주할 처소주의 이름으로저들보다 더 열심히 준비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래야만 할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시대를 살다간 평양의 과부이자 빈손으로 시작해서 당대의 거부가 되었던 백선행 여사처럼 조국과 어려운 이웃을 위해 하나님이 맡겨주신 자기의 재물을 다 풀어 영원한 하나님의 은혜와 의참 선()과 참 의()’를 베풀다 빈손으로 '본으로 돌아간 사람, 그런 사람이 영원히 사는 미래를 깨어 준비하는 하늘의 지혜를 가진 의인(義人)’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에 임금(*하나님)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永罰), 의인들은 영생(永生)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태복음25:)

 


상대적으로, 다른 지도자들은 차치하고 심지어 대통령이라는 무소불위의 권좌까지 차지하고 누렸던 사람들이 그 직위를 잃고난 후 백성들의 존경이나 환대는커녕 외려 의혹이나 야유나 비난이나 구금의 대상이 되어있는 작금 우리나라의 세태는 시대의 불행이자 비극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고관대작이라 해서 하루 네 끼 먹는 것일까요? 하늘나라 가는데 거액의 노잣돈이 필요한 때문일까요? ‘내 아들, 내 손자에 이르기까지 가문 대대로 먹고 살 수 있는 내 재물을 물려주는 것이 저들을 진정으로 살리는 능력이자 지혜일까요? 아니면 권력이나 재물을 풀어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사서 물려주는 것이 진정한 능력이자 지혜일까요?

하나님이 흩어버리면 다 허무한, 바람 앞에 티끌인 것을!

 


-우리가 먹을 것 마실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디모데전서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