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바른 신하'나 '바른 형제'의 직언

이형선 2018. 2. 19. 11:39



제왕적 권력구조 아래서 그것을 유감없이

행사했던 전직 대통령들의 숨겨진 비리와

불법이 거의 매일 적폐 청산이라는

도마 위에 오르는 뉴스를 보고들을 때마다

전 이런 의문이 떠오르기도 합니다.

 


예나 지금이나 청와대나 정부청사나

정치권 등 대통령 주변에는 내로라하는

대한민국 정상급 인재나 수재들이 수두룩한데,

자리는 물론이고 목숨이라도 내걸고 언필칭

나라와 국민과 대통령을 위해‘, “아니오라고

직언하는 측근들이 한 사람도 없었던 것일까?

저들이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을 때 이미

무조건 할 것을 맹세라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직언하는 바른 신하가 있었는데도

어리석은 제왕혹은 교만한 대통령그런

직언을 죄다 무시 및 묵살해버렸던 것일까?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yes),

 아니라 아니라(No)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는 것이니라.-(마태복음5:37)

 


조선왕조 영조 때 좌의정을 지낸 이관명(李觀命).

그가 벼슬이 당하관이던 숙종 때, 어명을 받고 수의어사(繡衣御使)

곧 암행어사가 되어 관리들의 민폐를 살피고자 영남지방 사찰에 나선 적이 있습니다.


이윽고 사찰을 마치고 귀경한 이관명에게 숙종은 여정의 노고를 위로하며

실정을 본대로 고하라고 분부합니다.  그때 성정이 곧은 이관명은 자기에게 득이 되기는커녕

'용의 비늘'을 건드려 되레 화를 자초할 수밖에 민감한 사안을 감히 이렇게 직언합니다.   

 


"황공하오나 한 가지만 아뢰겠나이다.

 통영 관할 하에 대궐의 후궁 한 분의 소유로 되어 있는 섬 하나가 있었는데,

 그곳 관리의 수탈이 너무 심해서 백성들의 실정이 아주 비참한 지경이었나이다."

 


숙종은 왕후와의 사이엔 아들이 없습니다. 장희빈을 위시한 세 후궁에게서 각각 한 명씩 얻은 아들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그 섬은 숙종이 후궁에게 하사한 것인데, 그 후궁의 막강한 뒷심을 업은 통영 관리가 비리나 수탈을 예사로 자행했던 것이지요. 그렇듯 왕이나 후궁이 연루된 민감한 사안이고 그래서 누구나 모른 척 덮어두기 십상인 정치현안이었지만, 성정이 곧은 이관명은 그 섬 소유의 부당성을 진솔하게 직언합니다.

 


듣고 있던 숙종이 버럭 화를 냅니다.

일국의 임금인 내가 그 조그만 섬 하나를 후궁에게 준 것이 그렇게도 불찰이란 말인가!"

그리고 철갑을 들어 앞에 놓인 탁자를 내리쳐 박살내버리는 숙종. 임금의 격노에 분위기는 온통 얼어붙었지만, 이관명은 조금도 굽히지 않고 다시 이렇게 아룁니다.

"신은 전하의 어명을 받들어 어사로 밖에 나가 1년 동안 있었나이다. 그리고 전하의 사사로운 처사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전하 곁에 있던 대신들 역시 누구 하나 전하의 이런 처사를 막지 못하였사오니, 저를 비롯하여 이제껏 전하께 직언하지 못한 대신들을 벌하여주옵소서."

 


그리고 이관명은 사의를 표명합니다.

신을 오늘 물러나도록, 파직하여 주옵소서.”

신하들 앞에서 체면을 구긴 숙종도 지지 않습니다.

그만 둘 테면 그만 두라!”

 


숙종은 곧 승지에게 전교를 쓰라고 분부합니다.

신하들은 이관명에게 큰 벌이 내려질 게 분명했기에 죄다 숨을 죽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숙종의 분부는 전혀 엉뚱한 내용이었습니다.

 


전 수의어사 이관명에게 부제학을 제수한다고 쓰라.”

파직도 좌천도 형벌도 아닌, 승진입니다.

놀란 채로 승지가 교지를 다 쓰자 다시 분부하는 숙종.

또 한 장 다시 쓰라. 부제학 이관명에게 홍문제학을 제수한다.”

승지가 다 쓰자 연이어 다시 분부하는 숙종.

홍문제학 이관명에게 호조판서를 제수한다.”

 


그러니까 바른 신하(正卿)’ 이관명의 충간(忠諫)으로 내 잘못을 깨달은숙종이 무려 세 계급이나 특진시켜 이관명에게 전국의 관리를 사찰하는 장관직을 맡긴 것. 이관명을 일약 정2품이자 판서 직에 올린 것입니다. 숙종의 해학적이고 파격적인 반전이자 군자다운 풍모와 지혜가 엿보이는 응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관명 같은 바른 신하를 곁에 둘 수 있었던 숙종도, 신하의 직언이나 고언을 듣고 내 잘못을 깨달은숙종 같은 임금을 모실 수 있었던 이관명도 그 자체가 하늘이 서로에게 허락하신 복된 인연이 아닐 수 없다 싶습니다.



-의로운 입술은 왕들의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잠언16:13)    




한편,

신약성경에 나오는,

사도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12제자 중 수제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기간인

3년 이상의 세월을 주님과 동고동락하며,

친히 하나님의 나라복음의 진리

성령의 비밀을 익히 배우고 체험한 수제자입니다.

그런데 그런 그가 사도 바울에게,

신하들 앞에서 당한 저 숙종의 곤욕이나 모욕보다

더 큰 모욕이자 곤욕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 거듭나기 전의 인간 사울은 당대의 지식인이자 구약성경 중심의 율법주의 유대교인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철저한 바리새파였습니다. 그래서 대제사장의 권한까지 위임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며 사로잡아 죽이기까지 하는데 앞장섰던,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한’(사도행전9:1) 위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사울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한 메시아곧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는 신비체험을 한 후 철저한 그리스도인이자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 바울로 거듭납니다. ‘바울작은 자란 의미입니다. 이름도 인격도 거듭난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의 사도 직분에는 주님이 택하셨다는 신적 권위가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후 사흘동안이나 눈이 멀어버렸고 그것을 치유해준 주의 제자 아나니아(사도행전9:)’의 증언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세상 조직의 위계질서나 인간적 차원에서 보자면, 당시 예루살렘교회의 최고지도자이자 오늘의 교황(敎皇)’ 같은 신분인 사도이자 수제자인 베드로 앞에서는 신참이자 후배이자 막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감히 그런 사도 바울이 안디옥에 이르렀을 때에 책망 받을 일이

있기로 내가 그(*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갈라디아서2:11)한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 사유인즉, 베드로가 안디옥교회의 이방인들과 함께 앉아 식사를 하던 중 구약 율법주의 신앙을 지키는 유대인들이 거기 나타나자 그가 그 유대인 할례자들을 두려워하여 떠나 물러가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신약 복음의 진리는 구약 율법의 멍에나 할례로부터 자유롭다고 예루살렘공의회(AD. 49) 이름으로 구원에의 그 무용론을 공식 선포했고, 또한 그렇게 가르치며 전도하다가 정작 구약 율법이나 할례를 중시하는 유대인들이 현장에 나타나자 그들의 눈치를 살피며 슬그머니 피해버린 것입니다.

 


수제자이자 종교지도자인 곧 당시 교회 및 공의회 최고지도자인 베드로의 그런 외식이나 실수는 개인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함께 식사하던 그리스도인들 곧 남은 유대인들, 심지어 바울의 막역한 동역자인 바나바조차도 그런 베드로의 외식을 본받아 피신해버린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그 길 그 진리 그 부활 생명을 위해 온갖 핍박도 죽음조차도 이미 각오했던 사도 바울은, 그런 이중인격적 외식이 적대자들이나 누리꾼들에게 악의적인 빌미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以信得義)’ 복음의 진리와 그 구원의 큰 비밀을 알게 하는데 큰 혼란과 미혹을 줄 수밖에 없는 중대 사안이라고 판단합니다. 그래서 감히 베드로를 대면하여 책망한 것입니다. “아니오라고 말한 것입니다.

과연 인간 우리는 스스로 큰 자가 될수록 위선이나 이중인격이나 보신주의(保身主義)에 빠지기 쉽습니다. 공익이나 공동선을 위한 직언이나 고언은 사심 야심 탐심 등이 없거나 적거나 작은 그래서 되레 담대할 수 있는 작은 자의 마음과 입에서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들이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고

 모든 자 앞에서 게바(*베드로)에게 이르되,

 네가 유대인으로서 이방인을 따르고 유대인답게

 살지 아니하면서 어찌하여 억지로 이방인을

 유대인답게 살게 하려느냐 하였노라.-(갈라디아서2:14)

 


인간 베드로의 입장 혹은 우리 속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자면, 그것은 대단한 치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수제자인 나, ‘교황인 나를 대놓고 감히 책망하는 사도 바울,

왕년에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국내외 막론하고 쥐 잡듯 색출해서

되레 죽이기까지 하는데 앞장섰던 작자가 감히 나를 책망하다니?

자기가 학문이 큰 지식인이라 해서, 내가 무식한 어부 출신이라 해서,

날 무시하는 것인가? 내 권위에 도전하는 것인가?

그 소행이 괘씸해서 사감을 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막말로, 소인배(小人輩)들의 행태가 대개 그렇듯이 예루살렘 중심의 정통신앙

내지 제도권 신앙에서 배제시키거나 불이익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시쳇말로, 종교권력이나 기득권을 이용해서 골탕을 먹일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합력해서 먼저 구해야 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 그 대의(大義)에 서로 통했던 베드로는 그 후 그리스도의 수제자이자 그리스도를 본받는 대인배(大人輩)다운, 성숙한 신앙인격의 면모를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말씀이자 지향 푯대처럼 신의 성품(divine nature)에 참여하는 자‘(베드로후서1:4)다운 삶의 면모를 신앙후손 내지 후배들에게 남겨준 것입니다.

자기에게 아니오라고 감히 말해줄 수 있었던, 대면해서 직언하며 책망해줄 수 있었던 사랑하는 형제 바울의 그 지혜 그 진정성을 되레 높이 평가하며, ‘바울 서신의 성경으로서의 그 정경성(正經性)과 성령의 계시와 감동에 의한 그 영감성(靈感性)까지 공공연하게 이렇게 인정 및 평가해준 것입니다.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바울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베드로후서3:15~16)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때론 직언을 하는저 이관명이나 저 사도 바울이 될 수도 있고,

때론 모욕이나 책망을 당하는저 숙종이나 저 베드로의 입장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나타나는 우리의 감정이나 심령이나 인격의 바로미터는

과연 저들과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소인배일까요? 저들처럼 대인배일까요?

사심 없는 직언의 진정성, 또한 그것을 듣고 내 잘못을 깨닫고겸허하게 회개할 수 있는

인격의 양면성을 두루 갖출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하늘의 큰 복이 아닐 수 없겠지요?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베드로후서1: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