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아.
바람이 인다.
신령한 바람이 인다.
과거가 보이느냐?
현재가 들리느냐?
잊힌 듯 죽은 듯
겨우내 버려진 땅,
광야 같은 산하에
바람이 인다.
만물을 깨우는
생명의 바람이다.
자락으로 막을 수 없는
성령의 바람이다.
방향을 바꿔라.
삶의 방향을 바꿔라.
더 늦기 전에 바꿔라.
인생관도 가치관도 바꾸고
삶의 목적도 푯대도 바꿔라.
너를 위해,
네 운명을 위해 바꿔라.
보이는 자기 것
자기 소유가
전부이자 전체라고
목을 매는,
세상의 생명보다
더 크고 복이 있는
영원한 생명이 있나니,
그 나라 그 전체가
바로 ‘천국’이어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4:17)
사람아.
높은 보좌에 앉아
내로라 군림하는
제왕의 권세보다
더 크고 복이 있는
영원한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네가 아느냐?
진정 아느냐?
그 천국의 비밀을
그 공존의 비밀을
네가 맛보아 아느냐?
그 역설의 권세가
바로 ‘섬기는 권세’여라.
사람아.
사람을 사람이나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상품이나 들러리로
보이게 하는
재물의 권세보다
더 크고,
육신의 생명을 빼앗는
죽음의 권세보다
더 크고 능력 있는
영원한 권세가 있다는 것을
네가 아느냐?
진정 아느냐?
그 신령한 권세이자
그 부활에의 비밀을
네가 믿느냐?
진정 믿느냐?
그 역설의 권세가
바로 ‘버릴 권세’여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요한복음10:18)
내가 ‘버릴 권세’로
머리 둘 곳도 없이
한세상 산 건 차지하고,
내가 ‘버릴 권세’로
십자가에 매달려 죽은 것은
매달려 죽은 게 아니었다.
십자가 그 멍에와 가치조차
껴안아 살린 것이었다.
너를 살리고,
네 삶의 고난 그 십자가조차
대신 껴안기 위함이었다.
온몸의 물과 피 다 흘리며
나를 죄다 버린 것은
나를 포기한 게 아니었다.
나를 비우고 낮춘 것이었다.
죄와 허물이 많은 인생
너를 살리고
너를 채우기 위함이었다.
불행한 네 운명 네 죽음을
대신하기 위해서였다.
대속하기 위해서였다.
사람아.
너는 ‘버릴 권세‘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이 하나님 되고
‘나 그리스도’가 그리스도 되고
그 말씀이 말씀 되게 하고자,
너 자신을 부인하며
네 눈물이나 땀이나 피를
흘려본 적이 있느냐?
조금이라도
흘려본 적이 있느냐?
‘작은 이웃’ 그 누군가를
네 몸처럼 사랑하기 위해,
‘원수’ 그 누군가조차
사랑하기 위해,
너 자신을 부인하며
네 눈물이나 땀이나 피를
흘려본 적이 있느냐?
조금이라도
흘려본 적이 있느냐?
하나님 앞에서,
‘나 그리스도’ 앞에서,
못 자국 하나 없는
차라리 뻔뻔한 손과 발은
결코 자랑이 아니란다.
축복은 더더구나 아니란다.
‘값싼 은혜’에 빠져
남보다 큰 떡이나
좋은 떡을 구하는 삶은
외려 부끄러움이지.
배은망덕한 삶이지.
그런 삶으론
세상의 빛도 소금도
될 수 없는 거니까.
내가 널 긍휼히 여겨 부른 건
‘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는 것이지,
큰 떡을 구하는 무리 중
한 사람이 되라는 건 아니란다.
33년의 생애를 살았던
‘나 그리스도’ 앞에서,
장수 타령 역시
결코 자랑은 아니란다.
축복은 더더구나 아니란다.
하나님 앞에서는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은 것을.
먹고 마시는
‘크로노스’의 삶 백년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한
‘카이로스’의 삶 하루가
되레 더 가치 있고
되레 더 하늘의 복이 있는
일생일 수 있는 것을!
사람아.
네 육체의 가시가
그리도 버거우냐?
네 인생의 불운이
그리도 한이 되느냐?
운명의 못 자국이나
저주 같은 창 자국이
그리도 두려우냐?
두려워하지 마라.
‘맡기는 권세’를 믿으라.
그것이 네 몫이라면
그것조차 넉넉히 감당할
은혜도 자비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맡겨라.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부탁하나이다.-(누가복음23:46)
내일 일을 염려하지도 마라.
네가 염려한다고 해서
머리카락 한 올 변하지 않는다.
세상 흙 한 줌 변하지 않는다.
초상집에 가보았느냐?
거기서 하늘의 지혜를 보았느냐?
인간의 허무가 거기 있어라.
인간의 한계도 거기 있어라.
그것이 네 정체성이자 실존이니라.
겸손의 당위성이니라.
염려를 뒤집으면 교만이 되는 것.
내일은 또 내일의 태양이 뜨는 것.
하나님을 믿고
‘나 그리스도’를 믿으라.
죽어도 사는, 죽어서 사는,
십자가의 비밀이자
부활 생명의 비밀을 믿으라.
‘버릴 권세’가 있는 자에겐
‘다시 얻을 권세’도 있고,
‘맡기는 권세’가 있는 자에겐
‘다시 찾을 권세’도 있다는 것을
네가 거래하는 세상의 은행을
믿는 그만큼만이라도 믿으라.
그리하여 믿음의 권세가
믿음의 권세 되게 하고,
하늘의 신령한 권세가
하늘의 신령한 권세 되게 하라.
내일은 물론이고
내세조차 맡길 수 있는
영혼의 참 주인을 알고,
참 안식의 처소를 아는 자는
그래서 되레 자기도 이기고,
인생살이에 있기 마련인
크고 작은 풍파도 이기고,
무덤의 권세조차도
넉넉히 이길 수 있느니라.
내가 세상을 이긴 것처럼,
아무쪼록 너도 ‘나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이기는 사람이 되어라!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니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한복음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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