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그리스도의 평화'를 위하여

이형선 2018. 2. 12. 10:54



-나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불의가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저도 젊을 때부터 즐겨 묵상했던

평화의 기도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숙제이자 명제이자 인격이다 싶습니다.

 


그럴 것이 미국이나 중국 등 강대국들의 패권 전쟁은 물론이고 테러나 종교 분쟁 등 무자비한 살상이 끊이지 않는 지구촌의 현실이나, 남한과 북한으로 분단되어 걸핏하면 대립하고 반목하는 우리 한반도의 현실이 그것의 필요를 반어적으로 역설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국내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그런 가치관은 다를 바 없습니다. 만사가 돈이나 권력이나 이념이나 정욕으로 통하고 그것으로 세상 이권이나 탐욕이나 패권을 추구하며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성공이나 행세를 위해 연일 전쟁하는 세태이니까요. 그래서 보수 혹은 진보라는 이념이나 지역이나 빈부나 세대나 갑을 간에 걸핏하면 서로 비판하고 대립하며 반목을 일삼고 있으니까요.

 


때론 언론이나 논객들이 그런 이념 내지 특정사상의 노예가 되어 직업적으로대립과 반목의 어젠다나 가치관을 생산해내고 있다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더군요. 물론 건설적 비판이나 권력에의 견제도 필요하지만, 그러나 나만이 심판자는 아닐 것입니다. 애국도 좋지만, ‘나만이 애국자는 아닐 것입니다. 정의도 좋지만, ‘나만이 정의는 아닐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는아집에 빠지면 그것은 차라리 독선이나 교만이기 십상입니다.

 


평화의 기도의 언급처럼 미움이나 다툼이나 분열이 갈수록 거칠어지고, 불의가 득세하고 그래서 어둠이나 슬픔이나 절망 같은 불안한 소식이나 부정적인 대립과 반목의 가치관이 난무하면 그래서 불화나 불만이나 불신 등이 고조되면 될수록 그런 사회 곧 양심이 죽은 사회, 신앙이나 신뢰가 죽은 사회의 결국은 피차에게 비극이자 불행일 것입니다. 가정이든 사회든 국가 간에든 전쟁이 터지면 결국엔 아군도 죽고 적군도 죽기 마련이니까요.

 


진정한 평화는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로마의 평화(Pax Romana)’에서 오는 것일까요?

미국의 평화’, ‘중국의 평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파나 좌파, 보수나 진보의 평화에서 오는 것일까요?

자본주의나 사회주의의 평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우구스투스 이후 현명한 황제들이 뒤를 이으면서, 사가들이 유럽 천하의 평화와 번영의 절정기로 평가하는 이른바 로마의 평화시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명언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평화그 시대나 기간은 다만 ‘200여 년이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 이후(AD.180) 대립과 분쟁이 빈발하면서 제국의 위세 역시 점차 쇠락의 길을 간 것입니다. 따라서 로마로 통하는 길은 결코 영원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누가, 무엇이,

우리에게 정녕 산 희망을 줄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정녕 참 평화를 줄 수 있을까요?

국민소득 3만 달러? 핵무기? 패권?

다 아닙니다. 예나 지금이나 로마로 통하는 길

결코 영원한 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사가 그것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어봅시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my peace)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한복음14:27)

 


그렇습니다.

산 희망, ‘참 평화,

'부활 생명'이자 '영원한 생명'도,

빵처럼 그것을 가진 자가 줄 수 있습니다.

참 평화를 가진 자가 그것을 믿고 구하는 자에게 오직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이나 가정의 평안 내지 평화도, 이웃이나 국가 간의 평화도, 인간 내 의지 내 노력만으로 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심지어 성자(聖者)’라는 프란치스코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권력이나 재력이나 지식으로 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참 생명도, 참 평화도, 참 기쁨도, 오직 그것을 가진 자가 구하는 자에게 줄 수 있습니다. 오직 ()이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은 하늘의 보화이기에 오직 하늘나라의 신령한 비밀을 믿고 기도하며 구하는 자가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영적 대화입니다. 살아있는 대화입니다.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나약한 사람들이 드리는 푸념도 타령도 아닙니다. ‘보는 눈, 들을 귀, 깨닫는 마음이라는 영성의 신비 내지 비밀에 크게 열려진, 프란치스코 같은 성자조차도 겸손하게 기도평화의 기도를 통해 구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무소불위라는 현재 우리나라 제왕적 대통령의 평화정권의 평화5년입니다. 그리고 역사 속으로 혹은 교도소 안으로 사라집니다. 저들이 우리들에게 참 평화를 주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역사상 그 어떤 제국이나 강대국이 역설하며 주창했던 인류의 평화는 더더구나 참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로마제국도 그 평화도 역사 속으로 다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 유무나 유신론 무신론을 떠나서, 오늘도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몸 된 교회와 함께 살아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평안, 그리스도의 평화는 살아있다는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peacemakers)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라.-(마태복음5:9)

 


지금 우리는 평화 메이커일까요,

불화 메이커(troublemaker)’일까요?

우리는 전자인 하나님의 아들일까요?

후자인 세상의 아들내지 악령의 아들일까요?

인간 우리는 내 편, 네 편가르기를 좋아하지만,

진정한 삶의 진영이나 소속감은 과연 이념적

보수나 진보, 적군이나 아군 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나 가난, 유식이나 무식 그 자체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영적(靈的) 소속감에 있습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어부들도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고,

베드로처럼 수제자까지 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세상이나 악령이 주는 평화나 번영이나 행복도 있습니다.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천하만국과 그 영광)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태복음4:8)고 예수 그리스도조차 시험 및 유혹했던 사탄이니까요. 그러나 그런 영광이나 평화나 행복은, ‘영원한 생명은커녕 내일조차 온전히 기약하지 못합니다. 때론 조변석개(朝變夕改)처럼, 때론 개성공단처럼, 때론 풀의 꽃처럼 차라리 허무한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이 곧 참 영성(靈性)이 되는 연역도 귀납도 거기 있습니다. 복된 가정, 복된 사회, 복된 나라를 위해, ‘세상의 소식(news)’ 내지 세상 주는 평화와는 구별된 하늘의 소식내지 그리스도의 평화를 먼저 구해야 할 절대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오늘도 바람처럼 임하는 성령(聖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세상의 우여곡절을 넉넉히 이기는 저 그리스도의 평안, 그리스도의 평화를 가지고, 그런 그리스도의 마음이자 남을 배려하는 마음 곧 역지사지(易地思之)의 마음과 여유를 가지고, 보다 헌신적이고 보다 겸손한 평화의 도구이자 평화 메이커로 살 수 있는 저나 당신이 될 수 있기를!

평창올림픽역시 인류 구속사(救贖史)의 참 주체이신 하나님이 도우시는 은혜와 선하신 섭리가 있어, 남한과 북한에게는 물론이고 나아가 지구촌 모두에게 평화 내지 화목의 계기이자 불꽃이자 모멘텀이 될 수 있기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 하라.

 (lf it possible, as far as it depends on you,

 live at peace with everyone.)-(로마서1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