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돌아서면
금세 잊어버리는
내 얼굴.
스스로 잘 안다고
자신하지만,
돌아서면
금세 희미해지는
내 모순.
어디쯤에서 잃었을까.
내 얼굴 내 분수를.
추상화 같은
내 얼굴을 찾으려고
베옷 입고,
행인처럼 순례자처럼
헤매지만,
고달프도록 헤매지만,
스스로 ‘큰 거울’
행세를 하는
세상의 쇼윈도는
약속이라도 한 듯
죄다, 한사코,
겉사람만 말한다.
배부른 삶만 말한다.
화려한 삶만 말한다.
그게 성공이라고
그게 행복이라고
거푸거푸 말한다.
그래서 되레
공존은 멀고
탐욕은 가깝다.
대립도 죽음도 가깝다.
와장창 깨져버리는
한순간의 죽음.
죽음이 슬픈 것이 아니더라.
죽음을 준비하지 못한 것이
슬픈 것이더라.
허무해서 슬픈 것이더라.
내일이라는
희망도 모르고,
내세라는
소망도 모르는 거울.
스스로 큰 거울.
현실밖에 모르는 거울.
그래서 사랑은
더더구나 모른다.
사랑을 잃은 게
타락인 것을 모르고,
죽음을 모르는 게
교만인 것을 모른다.
죽음은 십자가처럼
우리 곁에서
이미 일상이 되어있다는,
우리 곁에서
또한 일상이 되어야한다는,
참 행복의 비밀을
끝내 모른다.
그래서 일그러진 투영.
그래서 얄팍한 공존.
내가 울면 너도 울고
내가 웃으면
너도 웃는다 해서,
그게 어디 한 몸이더냐.
그게 어디 사랑이더냐.
우리 서로, 늘,
좌우가 뒤틀린 얼굴.
좌우가 뒤틀린 실존.
먼저 목욕은 했던가.
먼저 세수는 했던가.
정작 발이라도 씻었던가.
스스로 거울이라지만
이건 거울이 아니다.
세상을 위해
화장하라는 거울.
베일을 쓰라는 거울.
진정은 멀고
가면만 가깝다.
사랑은 멀고
잇속만 가깝다.
악세사리는 그만 가라.
허영도 허세도 그만 가라.
더 늦기 전에, 제발,
속사람이 보이는
참 거울을 다오.
너무 늦기 전에, 제발,
구원이 허락되는
참 거울을 다오.
가난한 심령에
비둘기처럼
하늘의 평화가 임하고
하늘의 안식이 임하는
‘참 거울’을 다오.
사자들이 풀을 먹고
어린양과 뛰놀며,
독사굴에 손을 넣고
어린이가 장난치는
‘온전한 거울’을 다오.
산 소망이 보이는
‘산 거울’을 다오.
*
-그러나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veil)이 벗겨지리라.
주는 영(靈)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느니라.-(고린도후서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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