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계축일기'의 '꿈'과 '성경'의 '계시적 꿈'

이형선 2018. 5. 7. 10:43



선조의 계비(繼妃)로 궁중에 들어가

정명공주와 영창대군을 낳았던 인목왕후.

그러나 광해군 5년에 영창대군과 아버지

김제남 등 친정가문은 역모 죄에 몰려

죽음을 당하고 그녀 역시 폐비가 되어

유폐당하는 비운의 신세가 됩니다.

그런 폐비를 모셨던 어느 궁녀가 썼다는

계축일기에 이런 내용의 글이 있습니다.

 


-명례궁에 갇히어 지낸지 십년이 되어 가는데

 ‧‧ 심지도 않은 복숭아가 저절로 열리더니

 그 맛이 예사가 아니더라. 꿈에 이르기를,

 “보통 복숭아는 세 해 만에 열매가 열리나 이 나무는

 두 해 만에 열매가 열리게 하였으니, 다른 사람들이

 먹으면 열매를 맺지 않고 나무가 죽게 되리라해서

 윗전께서만 잡수시다가 꿈이라 믿어지지 않아 모두

 먹었더니 과연 그해 겨울에 저절로 죽었더라.-

 


그 후 폐비가 시녀들을 시켜 밤나무를 심습니다. 그 나무는 여러 해살다가 저절로 죽습니다. 그때 또 꾼 에 관한 얘기가 역시 계축일기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꿈에 이르기를, “이 나무가 죽었으나 괴이하게

 여기지 말라. 다시 살아나리라. 이 나무 사는 것처럼

 윗전께서 다시 살아나리라하거늘, 이듬해 한 가지가

 살아나고 또 이듬해 한 가지가 살아나는데

 다시 꿈에 이르기를, “다 살아나면 좋은 일 오리라.”-

 


과연 나무가 다 살아나자 명례궁 문이 열립니다. 인조반정으로 세상이 바뀐 것. 차라리 비참하게 살아왔던 폐비는 드디어 대왕대비로 복권됩니다.

저기서 복숭아나무 꿈을 통해 그 이 허무맹랑한 꿈이나 개꿈이 아닌 하늘의 계시임을 먼저 체득케 한 후 밤나무 꿈을 통해 장래의 희망 내지 구원을 예언해주었다는 그것은, ‘창세기에서 시작해서 요한계시록으로 끝나는 성경(聖經)’에 기록된 수많은 꿈이나 환상이나 이상(異像) 등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이자 구원에의 메시지와 그 맥락을 같이 한다 싶습니다. 인생 우리가 알든 모르든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이 허락하신 계시적 꿈이라는 큰 틀의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계축일기에 기록된 처럼 단편적인 하나님의 일반은총내지 자연은총인 그것과는 구별된, 인간 및 인류의 타락의 기원과 구속을 위한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 곧 구속사(救贖史) 그 시작과 종말이 유유히 흐르는 강물처럼 동맥처럼 분명하고 집요하게 계시 및 예언되어 있는 그래서 그 섭리의 역사가 특별은총의 영역인 신구약성경(聖經)’에 기록된 에 대한 언급을 통해 그 계시적 의미를 보다 분명하게 상고해봅시다.

 


물론 이라고 해서 다 계시적 꿈일 수는 없습니다.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은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됩니다. ‘자연적 꿈’, ‘거짓 꿈’, ‘계시적 꿈이 그것입니다. ‘자연적 꿈이자 일반적 꿈에 대한 언급인즉 이렇습니다.

 


-걱정(cares)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한 자의 소리가 나타나느니라.-(전도서5:3)

 


우리를 시험 내지 미혹으로 인도하는

악령(惡靈)이나 그 하수인들의

거짓 꿈에 대한 언급인즉 이렇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거짓 꿈을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들을 내가 치리라.

 내가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으며 명령하지 아니하였나니

 그들은 이 백성에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23:32)

 


살아계신 하나님이자 섭리 및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미래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려주시는

계시적 꿈에 대한 언급인즉 이렇습니다.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이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머릿속으로 받은 환상은 이러하니이다.-(다니엘2:28)

 


나아가 구약성경에 나타난

계시적 꿈의 실례 몇 가지를 좀 상고해봅시다.

어느 날, ‘꿈꾸는 자’(창세기37:)였던 야곱의 아들이자 ‘17세 소년이었던 요셉이 그가 꾼 꿈 얘기를 가족들에게 털어놓습니다. 참고로 일부다처제였던 당대 야곱의 아들들은 4여인에게서 얻은 12(*12)입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편애(偏愛)하리만큼 각별히 사랑했는데 그것은 요셉의 지혜나 효심이 남달랐던 때문도 있었겠지만, 야곱이 가장 연모했던 첫사랑이자 일찍 죽은 라헬이 낳은 아들인 때문도 있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다시 꿈을 꾸고 그의 형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또 꿈을 꾼즉 해와 달과 열한 별이 내게 절하더이다

 하니라. 그가 그의 꿈을 아버지와 형들에게 말하매 아버지가

 그를 꾸짖고 그에게 이르되 네가 꾼 꿈이 무엇이냐?

 나와 네 어머니와 네 형들이 참으로 가서 땅에 엎드려

 너에게 절하겠느냐? 그의 형들은 시기하되 그의 아버지는

 그의 말을 간직해두었더라.-(창세기37:)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요셉에 대한 이복형들의 시기와 질투심은 그런 꿈 얘기로 인해 절정에 달합니다. 시쳇말로 미운털이 박힌 요셉은 그래서 이복형들에 의해 은 삼십에 종으로 팔려 낯선 애급 땅으로 가게 됩니다.

그 후 종살이도 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도 하는 등 고초를 겪지만 그러나 그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사를 받아 또한 꿈을 해석하는 자였던 요셉은 애급의 현자나 술사들 그 누구도 풀지 못했던 애급 바로 왕의 꿈을 명쾌하게 풀어내고, 계시적 꿈곧 앞으로 닥쳐올 칠 년 대풍년과 후기 칠 년 대흉년에 대한 해법도 명쾌하게 제시함으로써 바로 왕의 신임을 얻어 일약 애급 총리가 됩니다. 당시 요셉 나이 30세였습니다.

 


-요셉이 바로()에게 아뢰되 바로의 (두 가지) 꿈은 하나라.

 하나님이 그가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창세기41:25)   

 

 

그 후 대풍년과 대흉년은 역사적으로 그대로 실현됩니다. 근동 전지역에 칠년 대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던 야곱의 아들들은 양식을 구하고자 애급으로 가서 총리 앞에 엎드려 절을 합니다. 요셉의 에 계시된 예언이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물론 형들은 그가 동생 요셉인 것을 전혀 몰랐지만, 요셉은 그런 형들을 금세 알아봅니다. 그래서 기근에 시달리는 부모님과 가족들을 다 애급으로 모셔오도록 했고, 그렇게 야곱(*이스라엘)의 가족들 모두 칠십 명’(창세기46:27)은 가나안 땅을 떠나 애급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이후 저 이스라엘 자손들은 ‘430동안 애급에서 삽니다. 요셉 총리가 죽은 후 이스라엘 자손들은 당대의 문명국이자 제국이었던 애급에서 종살이 신세로 전락하고 맙니다. 그러다 종살이의 설움과 신음이 높아가던 무렵인 기원전 1446, 하나님은 친히 모세를 대리자로 불러 세우셔서 저 유명한 ()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 민족을 다시 가나안 땅으로의 귀환하도록 역사하십니다.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men on foot) 육십만 가량’(출애굽기12:37)이니까 여자들까지 계수하면 이백만 가량은 족히 될 대 민족 이동이 믿음의 조상들과 언약했던 하나님의 예언 그대로 실현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전적 은혜로 가나안 땅에 정착했던

이스라엘왕국은 배가 부르자되레 타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래서 결국 남북왕국이 다 멸망당한 이후인 기원전 530년경,

바벨론제국 느부갓네살 왕 치하에서 살았던 선지자 다니엘

통해서도 우리는 주목할 만한 계시적 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이 다스린 지 이 년이 되는 해에

 느부갓네살이 꿈을 꾸고 그로 말미암아

 마음이 번민하여 잠을 이루지 못한지라.-(다니엘2:1)

 


왕은 그가 꾼 꿈 내용조차 함구한 채, 그가 꾼 꿈과 그 해석을 알고 풀어낼 용하다는 박수와 술객과 점쟁이와 갈대아 술사들을 죄다 부르지만 그 누구도 왕이 꾼 꿈 그 내용조차 알지 못합니다. 과연 미혹하는 악령 내지 귀신의 '거짓꿈'이 아닌, 하나님의 참 '계시적 꿈'의 비밀은 무속이나 인간적 술법으로 알 수 있는 것이아닙니다. 그러자 왕은 이로 말미암아 바벨론의 모든 지혜자들을 다 죽이라 명령합니다. 선지자 다니엘과 그 친구들도 그 살생부에 이름이 오른 지혜자들이었습니다.

위기의 순간이었지만 그러나 신실한 다니엘은 자기 집에 들어가 여느 때처럼 살아계신 하나님께 사정을 아뢰며 간곡한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자 인생들에게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는하나님이 느부갓네살이 꾼 꿈 내용과 그 해석을 알려주십니다. 그것인 실로 일목요연하게 나타난 계시이자 미래적 세계사(世界史)이자 종말론적인 구속사(救贖史) 그 자체였습니다.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a large statue)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매우 찬란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그 우상의 머리는 순금이요,

 가슴과 두 팔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쇠요,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다니엘2:31~33)

 


다니엘은 저 큰 신상머리는 순금에서 시작해서 가슴과 두 팔은 은을 거쳐 그 발은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으로 내려가는 과정을 각각 세상 패권을 장악한 제국의 여러 왕들의 시대로 풀어냅니다. 곧 미래적 세계역사로 풀어낸 것입니다. 실인즉 저 꿈 저 예언 저 계시는 이후 인류 역사 속에서 기묘하도록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럴 것이 순금인 머리는 당대 바벨론제국, ‘은으로 된 가슴과 두 팔은 연합세력인 메데, 바사(페르샤)제국, ‘놋으로 된 배와 넓적다리는 광대했던 알렉산더(그리스)제국, ‘()로 된 종아리는 로마제국, ‘얼마는 쇠요, 얼마는 진흙으로 된 발은 로마제국의 분열에 대한 예언이니까요. 과연 로마제국은 이후 동로마, 서로마로 결국 분열하고, 오늘의 우리는 열 발가락시대에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원전 530년경, 성경에 이미 예언된 시대를 살고 있을 뿐입니다. 설령 제국의 왕이 되어 스스로 날고뛰어봤자, 스스로 교만해봤자, 결국 하나님의 섭리이자 구속사 그 손바닥 안에서 살고 있는 인생들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정작 주목할 것은,

이어지는 다음의 꿈 내용입니다. 여기에 세계사 내지 세속사를 이기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구속사에 대한 분명한 예언이자 계시가 있으니까요.

 


-또 왕이 보신즉

 손대지 아니한 돌(but not by human hands)

 나와서 신상의 쇠와 진흙의 발을 쳐서 부서뜨리매

 그 때에 쇠와 진흙과 놋과 은과 금이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 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었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하였나이다.-(다니엘2:34~35)

 


손대지 아니한 돌'에서 '손' 곧 히브리어 '야드'는 또한 '힘, 능력'을 의미하는 언어입니다. 따라서 인위적 산물, 인간적인 힘이나 능력이나 노력의 산물도 제조물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 정체성이 오직 하나님의 역사, 성령의 역사에 의한 이라는 것. 직설하자면, ‘성령으로 잉태되어장차 세상에 나오실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과연 저 신령한 돌로마제국은 물론이고 큰 신상이자 우상이던 세상 제국의 세력이나 패권 자체를 다 부서뜨려버렸습니다. 그리고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해졌습니다. 나아가 땅 끝까지가득해지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또한 친히 이렇게 예언하셨으니까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1:8)

 


나아가,

손대지 아니한(but not by human hands) 돌이 나오는’,

인간의 손에 의한 돌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의한 돌

처녀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낳은 아들’(이사야7:14)

세상에 나오는과정을 마저 상고해봅시다.

 


신약시대 유대사회에서 약혼은 아직 동침만 하지 않을 뿐 실상인즉 결혼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진실로 믿고 사랑했기에 한세상 함께 하기로 약혼까지 한 여인이 어느 날, 누군가 다른 사람의 자식을 떡 임신해서 배가 불러있다면 그 충격 그 배신감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것입니다. 막말로 환장하지 않을 남자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도 온갖 치정사건이나 살상사건이 예사로 빈발하는 현실 아닙니까.

 


마리아의 약혼자 요셉 역시 모르긴 몰라도,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했다고 말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 말을 믿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자기의 부정이나 비리를 합리화시키는 가증한 사람도 많은 세상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수 요셉은 과연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미 임신한 마리아를 원망하지도 증오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남자와의 간통이 드러나면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마리아의 입장을 되레 배려해서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합니다. 인생 대사 및 범사에 대한 역사와 심판을 내 손이 아닌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맡겼다는 의미일 수 있겠지요.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現夢)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태복음1:19~21)

 


구약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초월적 기적이나 계시적 꿈의 비밀을 알고 있고 믿고 있는 의로운요셉이, ‘메시아를 대망하고 있던 다윗의 자손요셉이, ‘꿈속에 나타난 주의 사자(an angel)’의 저 예언 저 계시의 말씀을 직접 분명하게 들었을 때 그 느낌이 어떠했을까요? 상처 입은 인간적 배신감이나 성적 감정마저 사라져버리고 되레 감격했을 것입니다. ‘성령 잉태의 신비를 비로소 확실하게 믿고, 그 선택 그 소명에 되레 감지덕지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 주의 사자의

 분부대로 행하여 그의 아내를 데려왔으나

 아들을 낳기까지 동침하지 아니하더니

 낳으매 이름을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1:24~25)

 


예나 지금이나 저처럼 불의한 죄인이다 쳐도 기묘한, 희한한, ‘계시적 꿈이나 성령 체험을 직접 경험하게 되면 이성(理性)이나 상식 이상의 초월 세계를 절로 믿을 수 있게 되기 마련입니다. 하물며 의로운 요셉의 경우이랴!

 


과연 철학이나 인문학에서 '신, 존재, 최고 가치' 등 형이상학적이자 무형적이자 추상적으로 언급되는 하나님의 계시도, 성령의 신비도, 그리스도의 비밀도, 그 은혜 그 구원도, 그것을 직접 맛본 자, 먹어본 자, 체험해 본 자의 몫입니다. 해서 처럼 뒤늦게나마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뵙고 회개한’(욥기42:)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天國)’와 내세를 믿을 수 있다면, 금세에서의 모진 고난이나 육체의 가시나 실패나 불행은 물론이고 억울한 오해나 처참한 죽음이나 순교까지도 다 심오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는 섭리이자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이나 친구나 친척들마저 다 를 정죄하고 버려도 나의 가는 길을 오직 아시는 하나님만 진실로 인격적으로 살아계시면’, 그에 대한 체험적 확신을 가질 수만 있다면, 결국엔 모든 게 합력해서 선()이 되고 영원한 구원이 된다는 산 소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우리를 영원한 길이자 진리이자 생명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보다 심오한 은혜이자 역설의 비밀에 열려진 이방인을 위한 사도바울은 그래서 형극의 인생여정이자 전도여정 속에서도 되레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인생여정을 사는 저나 우리도 그런 은혜를 받은 자’, ‘계시를 받은 자될 수 있기를!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11:2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