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오멜의 영성

‘전인적(全人的) 건강을 위해서’

이형선 2018. 8. 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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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정신과 의사인) 내가 사용할 수 있는

 여러 처방들 가운데, 인간으로 하여금 영적 행복에

 도달할 수 있도록 돕는데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단연

 성경 묵상이었다. 인간은 전인적 존재이기 때문에 영적,

 심리적, 육체적 기능이 복잡하게 뒤얽혀 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측면이 전인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삶의 원리를 매일 묵상하는

 것이 전인적 건강을 위해서 음식이나 섹스 혹은 기타

 그 어떤 요소들보다 더 중요하다.

 

 성경 묵상이 전인적 건강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고 패턴과 가치관이 인간과는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는 데서 기인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서 이기적이며 궁극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사고유형과 행동을 소유하고 있다.

 

 ··· 인간이 성적인 것과 권력, , 명예 등에서

 얻을 수 있는 위안은 잠시 동안뿐이다.

 궁극적으로 인간의 행복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만 얻을 수 있다.-

 

 

                                              -폴 마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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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곳곳에서 폭염, 지진, 물난리, 가뭄 등

각종 재난과 기상 이변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저 모든 게 하나님이 인간 우리에게 청지기자세로

경작하며 지키라”(창세기2:15)고 맡겨주신

에덴 동산이라는 자연 환경을 이기적 내지 임의적,

산업적 내지 탐욕적 성취를 위해 함부로 파괴하고,

차라리 교만하도록 거침없이 훼손한 우리의 죄악

회개하라고 주시는 메시지인 것은 아닐까요?



우리나라도 기록적인 폭염이 재난 수준으로

연일 계속되고 있는데, 그럴수록 전인적 건강이자

전인적 평강이 더욱 절실해지고 소중해지는 요즘입니다.

켜켜이 쌓이는 나이테 인생을 살면서 인체의 메커니즘에

열려질수록 인간은 과연 단순한 고등동물도 아니고,

유물론자들의 이해처럼 유기물이나 무기물로 구성된 물질

내지 육체만의 생명도 아니라는 걸 재삼 절감하게 됩니다.

 


물론 사람의 죽음도 여느 동물의 죽음과 일반이고’,

지혜자의 죽음도 우매자의 죽음과 일반이지만’(전도서1:16),

그래서 현자 솔로몬도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된그 허무 앞에서

오호라장탄식했지만, 그럴수록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먼저 풀어야 할 숙제는 되레 허무와 무가치를 이기는 우리 모두의

종말적 결산이자 자산인 참 소유의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

 흙(dust)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spirit)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도서12:)

 


흙으로, 땅으로 돌아가는육체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나 사명은 정녕 무엇일까요. ‘내 조국, 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지키다 의연하게 순국한 이순신 장군의 애국애족이라는 가치나 신념, 사명의식이나 헌신은 진실로 숭고합니다. 그렇다면 ()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 그 영원한 생명의 비밀을 알고 믿는다고 공공연히 고백하는 우리는 그 가치 그 정의 그 진리를 위해 의연하게 순교할 수 있을 만큼 투철한 사명의식이나 책임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주지하다시피 최근에 정의당 노회찬 국회의원이 투신자살했습니다. 자살을 미화시키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한세상 의로운 노동운동을 하면서 자신이 추구하고 공언하던 정의의 가치나 양심을 지키지 못하고 불과 4천만 원이라는 정치자금그 마수의 시험 앞에서, 한순간에 무너져버린 자기의 한계나 비리를 자기가 심판한 저 공인의 죽음을 향해 죄 없는그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그 투철한 책임의식과 사명의식을 향해 안일하게 사는그 누가 침을 뱉을 수 있을까요?

 


우리 기독교 신앙풍토의 가치나 양심이나 도덕성, 약자들과 함께하는 정의(正義)의식이나 공존의식이나 사명의식이 저 고인보다 더 진실하고 더 투철하지 못하다면 세상 구원이나 개혁은커녕, 높아진 시민의식 앞에서 되레 적폐의 대상으로 치부될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까지 들더군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립보서1:21)

그렇게 박해와 순교까지 각오하고 살았던 사도 바울처럼 확고한 소신과 치열한, 투철한, 사명의식이 없다면 차라리 죽은 믿음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각설하고, 사도 바울이 죽는 것조차도 유익하게여기고 그것을 준비하며 살았던 저 영성의 비밀을 폴 마이어 박사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삶의 원리라고 표현했습니다. 그것은 여느 동물들과는 다른, 인간 우리 속에 각별히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이자 원리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먼저 원리에 열려야 방문도 천국문도 열리고, 사명의식에도 열립니다. 먼저 영혼에 열려야 육신에도 열리고, 하늘에 열려야 땅에도 열립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와 영성의 비밀에 열려야만 자기나 이웃이나 대적을 포함한 피차 소중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이나 참 가치나 참 사명에 대한 전인적이자 통전적 이해 또한 진실로 열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일찍부터 성령의 지혜로 전인적 존재인 인체의 비밀을 잘 알았던 것 같습니다. 저 모든 게 하나님의 평강이라는 안식(安息)’에서 비롯된다는 그 인체의 비밀이자 영성의 비밀 말입니다. 그는 그래서 교우들에게 세상의 모든 우여곡절을 다 이기는 그 구별된 하나님의 평강이 있기를 기원하며, ‘(hole) 존재전인적 존재를 이렇게 3가지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

 (your hole spirit, soul and body)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이

 보전되기를 원하노라.-(데살로니가전서5:23)

 


영과 혼과 몸’, 이른바 삼분법(三分法)’입니다. 물론 솔로몬도,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인간 내지 인체를 (sprit)과 육(body)’이라는 이분법(二分法)’으로 말씀하셨고, 사도 바울 역시 다른 곳에선 이분법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인 폴 마이어는 영적, 심리적, 육체적 기능이라고 삼분했으니까 사도 바울의 삼분법을 참조한 것 같습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인 지그문트 프로이트 역시 그 분석과 이해는 다르지만 삼분법을 사용했습니다.

 


여하간 우리들은 심리적 곧 정신적으로 병들면 육체도 덩달아 병들게 된다는 것은 체험적으로 잘 압니다. 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각종 스트레스가 만병의 원인이다라고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지요. 그러나 정작 더 강조할 악센트는 그 심리 내지 정신은 모시고 사는 주인(主人)’이자 주체(主體)’가 누구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향이나 양상을 받고 나타내는 다만 종속기능이라는 거기 있을 것입니다. 하긴 ()이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무신론자나 유물론자에겐 정신이나 이성 자체가 사람의 주인이자 주체가 되겠지만, 창조주(主人) 하나님의 영성의 비밀을 알고 믿는 사람들에겐 정신의 기능은 다만 종속기능이 됩니다. 그래서 성경에서 대개 영혼내지 심령이라고 함께 묶어 언급되어지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 본성의 측면이 전인적 존재로서의

 인간에게 영향을 준다. 그러므로 인간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된 삶의 원리를 매일 묵상하는

 것이 전인적 건강을 위해서 음식이나 섹스 혹은 기타

 그 어떤 요소들보다 더 중요하다.-

 


실로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주인이자 참 가치를

먼저 구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그 때문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33)

 


여기서 우리는 새삼스럽지만 이렇게 자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나 부동산투자비결같은 재테크가 실속 있는 축복이 되는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선 왜 비현실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라고 강조하셨을까? 물론 그것은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자 비전을 먼저 구하고 나아가 그 사랑 그 공의를 삶으로 구현하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온 몸 온 삶으로서의 나의 주(主人), 나의 하나님이 되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문제는 그러기 위해선 저 폴 마이어가 언급하고 있는 바처럼 우리 역시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일차적 이유에 정작 주목할 수 있어야한다는 그것입니다.



-성경 묵상이 전인적 건강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일차적으로 하나님의 사고 패턴과 가치관이 인간과는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는 데서 기인한다. 인간은 전적으로

 부패한 존재로서 이기적이며 궁극적으로 자기 파괴적인

 사고유형과 행동을 소유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각별히 주목하고 늘 유의할 대목은 하나님의 사고 패턴과 가치관이 인간과는 예리한 대조를 이룬다는 거기 있습니다. ‘주여, 주여라는 이름으로, 신앙이란 이름으로, 자기 합리화나 교만이나 탐욕이나 정욕이나 인일에 빠져서는 안 되는 예리한 대조의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타인이나 자연 환경의 이기적인 파괴나 훼손이 부메랑처럼 자기 파괴적인 사고유형이자 행동이 되어 돌아온다는 예리한 대조의 이유나 자기 죄악이 자기를 심판하는 종말론적 심판의 이유도 다 거기 있습니다.

 


따라서 늘 먼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겸허하게 자기를 부인하고비우며, ‘자기 심령이라는 그 그릇에 말씀을 채우는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항상 선을 좇으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데살로니가전서5:) 삶의 자세가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항상 깨어있는 삶의 중심인 심령이라는 그릇그 자체가 외려 하늘의 참 복이 담기는 진정한 겸손의 그릇이라고 성경 말씀은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전인적 건강전인적 공동체를 살리는 하늘의 참 지혜이자 비결이자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시편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