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으로 찬바람이 인다지만
낙엽이 지기엔 아직은 이른
이 가을에,
몸매가 잘난 것도 아닌
나의 벌거벗음이
아름다움일 수는 없겠지만,
그러나 진실일 수는 있겠지.
미학도 예술도 좋다지만
생명보다 클 수는 없는 거니까.
주렁주렁 맺은 열매 죄다 내주고
잎사귀조차 한 잎 두 잎 벗고 있는,
초라한 모습의 내가
너의 서글픈 생각과는 달리,
몸은 가볍고 마음은 기뻐서
부풀어 있다는 것을
사람아, 사람아, 너는 아마 모를 거야.
너에게만 살짝 들려주는 비밀인데,
흙으로 가는
낙엽의 길은 서글프지만,
본향으로 가는
귀향의 길은 설레기 때문이란다.
귀향의 길은 그래서 마음의 길이잖아.
영혼의 길이잖아.
너는 돌아갈 고향이 있니?
너는 돌아갈 고향을 아니?
우리는 모두 나그네란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우리가 돌아갈 영혼의 고향을
준비하는 기간이란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보다 작은 이웃을 사랑하며,
열심히 선(善)을 준비하라는 ‘말씀’도
다 그 때문이지.
겨울이 하얗게 깊은 어느 날,
회색 데드마스크를 쓴 누가
앙상한 내 앞에 서서
죽은 나무냐고 묻거든,
아니면 돌포도나무냐고 묻거든,
확실하게 말해다오.
난 주렁주렁 맺은 열매를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죄다 내주고,
빈손으로 자유롭게
본향으로 돌아간 나무라고.
죽은 것이 아니라
본향에서 안식하고 있는 나무라고.
금년이나 금세라는 세상을 살면서
고향을 준비하고
고향으로 돌아간 나무들은
내년이나 내세라는 오는 세상에서도
복되게 살 수 있단다.
봄이 오면 부활할 수 있는 거니까.
그것도 하나님의 비밀이지만,
너 설마 봄을 모르는 건 아니겠지?
너 설마 봄을 못 믿는 건 아니겠지?
믿음이란 그렇게 단순해지는 거야.
스스로 어른이 되지 아니하고
스스로 어린아이가 되는 거야.
한 마디로 ‘유식한 어린아이’가 되는 거지.
하긴 그게 쉬운 일은 아냐.
세상의 유식이 너무 오염되어 있으니까.
그래도 봄은 오고 부활의 때는 올 거야.
사람아, 사람아, 그때 우리 다시 보자.
그래도 한 생(生)을 마치고 돌아가는
귀향의 길인데,
빈손으로 가면 어떻게 하냐고?
괜찮아.
내 열매 이웃들에게 죄다 나눠주고
빈손으로 왔다고 하면
우리 ‘하늘 아버지’께서는 더 기뻐하시거든.
어때, 내 포도 먹을만 하니?
돌포도가 아닌 참포도라고?
공연히 내가 좀 부끄러워진다 얘.
그럴 것이 금년엔 거센 태풍이 유독 잦아
정말이지 고난의 연속이었지.
하마터면 뿌리 채 뽑혀 죽을 지경이었으니까.
그래도 구사일생으로 내가 살 수 있었던 건
오직 이 ‘말씀’에 붙어서 매달렸기 때문이야.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신약성경 요한복음 15장 4절 5절 말씀이야.
소설(小說)보다 큰 것이 대설(大說)이고
대설보다 큰 것이 ‘말씀’이더라.
말씀은 계시(啓示)이자 생명 자체이니까.
아픈 체험의 고백은 보다 진실한 거잖아.
네 삶에도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무서운 폭풍이나 폭우를 만날 때일수록
‘그리스도 안에’ 더 깊이 거하면
너에게도 구원의 비밀이 보이고
돌아갈 본향도 밝히 보일 거야.
사람아, 사람아.
나그네 여정이 그래도 아름다운 건
우리가 약속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새 하늘과 새 봄이 열리는
‘오는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나는 떠나도,
'그리스도의 포도송이'가 사랑이 되어
네 마음에 남아 있을 수 있다면
나는 더욱 기쁠 수 있을 거야.
눈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마음에 남는 진실이
정작 우리를 살리는 사랑일 테니까.
파란 하늘이 참 높고 아름답구나.
하늘은 마음이자 약속의 세계란다.
저 하늘을 너에게 이별의 선물로 주고 싶구나.
그럼 ‘오는 세상’에서 우리 다시 만나자.
*한 그리스도인의 영성 편지(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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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세상에 살면서 하는 모든 일 안에서
제가 항상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자 하는
그런 갈망을 가지기를 원합니다.
그런 갈망에서 우러나온 일이 아니면
그 무엇도 하지를 않기를 원합니다.
그렇게 하면 당신이 저를 바른 길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은 저는 압니다.
제가 바른 길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때로는 제가 길을 잃고
죽음의 그늘에서 헤매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저는 언제나 당신을 신뢰합니다.
두려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언제나 저와 함께 계시고,
저 혼자서 위험과 싸우도록 저를 내버려두지
않으신다는 것을 제가 믿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머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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