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언론에 보도되었던, 하버드대 신학부 캐런 킹 교수가 국제학회에서 발표했다는
이른바 ‘예수의 아내 복음( The Gospel of Jesus' Wife)’에 관한 내용이 은연중 항간의 화제가 되어 있습니다. 전문신학자들이 학문적으로 접근해야할 내용인지라, 저로선 운위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자격도 없습니다만,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묵상하다 보니 왠지 유감(有感)을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우러납니다.
불과 몇 년 전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였던, 댄 브라운의 소설「다빈치 코드」를 통해 우리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해서 프랑스로 망명했고 그의 후손도 있었다’는 소설의 내용 정도는 이미 두루 알고 있습니다. 나름대로 정통 기독교가 아닌, 이단적 기독교 계통에서 나온 외경이나 위경이나 야사나 전설이나 가설 등을 임의적으로 인용 및 재구성해서 ‘예수는 신화다’라고 주장한 상업적인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하긴 그래서 댄 브라운은 엄청난 돈을 버는데 ‘성공’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에, ‘4세기’ 것으로 추정된다는 고대 파피루스에 그것도 불과 명함 정도 크기의 파편에 콥트어로 기록된, 맥락을 알 수 없는 조각 글에서 ‘예수가 그들에게 말하기를 나의 아내’라는 내용이 있다고 해서 또 다시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식의 루머가 호사가들의 화제가 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 고대 파피루스의 소장자는 입수한 경위나 출처나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은 채 저 파피루스 조각을 “하바드대에 팔고 싶어 한다”는 거래상입니다. 역시 장사꾼이라는 것입니다.
왜 세상의 사람들은 처참하게 순교까지 당했던 제자들이, 1세기 중엽 내지 후기에 그 진실을 직접 기록한 성경 곧 정경의 내용은 믿지 못하고, 훨씬 뒤인 4세기의 그것도 명함 크기에 기록된 단어 몇 개에는 믿음(?)과 관심을 가지고 흥분하는 것일까요? 그것도 성경의 원어인 히브리어나 헬라어도 아니고, 이미 중세기에 사라져버린 이집트어에서 파생된 콥트어로 기록된 문서 조각에 불과한데도 말입니다. 그것도 진본인지 사본인지 위조본인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말입니다.
왜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자꾸만 끌어내려서 우리와 동일한 ‘육체(肉體)’ 내지 ‘속물(俗物)’로 만들지 못해 기를 쓰고 안달을 하는 것일까요? ‘뱀’ 곧 ‘악령’이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의 금기인 ‘선악과’를 따먹어라고 유혹했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뱀’들 역시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먹어라’고 집요하게 유혹하고 있습니다만, 예나 지금이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자기가 하나님처럼 되어 스스로 ‘선악을 알게 하는 지식(말씀)’의 기준이 되고자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불행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랬고, 니체도 그랬습니다. ‘실락원(失樂園)의 고통과 비극’이 그것입니다.
물론 ‘악령의 행동대원’으로는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고 거부 반응이나 증오심을 품고 있는 이방인들이나 이방종교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기독교에 대한 영적 테러를 통해 조롱과 비하를 획책하는 고도의 음모나 조작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머리 좋은 장사꾼들의 고도의 상업이겠지요.
저도 문서선교 일선에서 오랜 세월 사역을 하면서 살아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선교지에 게재한 글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나 우리 개개의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아내’나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표현한 적이 더러 있습니다. 그럼 그런 글의 파편도 천년이나 2천년 후에 발견되면 역시 ‘예수가 결혼했다’는 말이 되는 것일까요?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할 것은, 초기기독교시대부터 왜곡된 거짓 교설이나 이단적 가설이 난무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처형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시체를 지키던 군병들을 매수한 적대 세력들의 음모부터가 그렇습니다.
-(대제사장들)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여 군병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만일 이 말이 총독에게 들리면 우리가 권하여 너희로 근심하지 않게 하리라 하니,
군인들이 돈을 받고 가르친 대로 하였으니
이 말이 오늘날까지 유대인 가운데 두루 퍼지니라.- (마태복음28:12-)
그런 유언비어 등에 근거해서 초기기독교시대에 존재했던 최대의 이단적 기독교 종파가 바로 '그노시스주의(Gnosticism)' 곧 ‘영지주의(靈知主義)’입니다. ‘그노시스’는 헬라어로 ‘지식’이라는 말입니다. 영지주의의 ‘예수 이해’는 정통기독교에서 말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이 아닙니다. 다만 신에게 가는 길을 인도한 ‘영지주의의 교사이자 현자(賢者)’일 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신성(神性)은 부인하고, 인간인 ‘역사적 예수’만 인정하는 오늘의 불교 같은(?) 인본주의적인 ‘기독교’인 셈이지요.
따라서 예수의 부활을 부인하고, 구원은 예수를 믿는 믿음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현자(賢者) 예수처럼 영적 지식 곧 깨달음을 얻어 육신으로부터 해방되는 그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대교나 기독교나 그리스나 이집트의 철학이나 점성술 등을 다원주의적으로 혼합시킨 종교로써, ‘영혼은 절대선이고 육체는 절대악이다’는 비성경적인 ‘이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어차피 악한 육체라며 방종으로 빠진 부류도 있었고, 정반대로 철저한 금욕이나 고행 위주로 빠진 부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또한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 탄생도 믿지 않았습니다. 절대선이 절대악과 한 몸이 될 수 없다는 이론에서이지요. 다만 인간 예수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을 때 하늘의 그리스도가 그와 결합했다가 십자가에서 죽을 때 떠나갔다고 이해합니다. 심지어 실체는 없었고 사람의 눈에 하늘의 그리스도가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가현설(假顯說)’을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정통 기독교에서 배척당하는 그들의 주장이나 혼합적인 교리를 합리화 내지 정당화시키고 전파하기 위해서 그들 나름대로 고대 파피루스에 예수의 가르침이나 그들의 교리를 기록했고, 거기서 비롯된 외경이나 야사나 전설 등의 왜곡된 각종 문서나 사본의 내용이 오늘의 ‘성혈 성배’나 ‘다빈치 코드’나 저 ‘예수의 아내 복음’ 등을 출현시킨 배경이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통 제자이자 사도였던 요한은 영지주의의 그런 ‘적그리스도’의 교리나 ‘미혹’에 조심하라고 이미 1세기말부터 성경(正經)을 통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 하는 자가 누구냐.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냐.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요한일서2:22-23)
당대의 대표적 지식인이었던 사도 바울도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15:5)
진리나 진실은 그 ‘열매’나 역사가 증언하는 것.
진리나 진실은 그것을 알고 믿고 따르는 자가 있는 것.
영지주의 기독교 종파는 3세기를 전후해서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한 그리스도인의 영성 편지(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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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김을 받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섬기려 하셨던 주님의 열심,
인간의 모든 고난에 대한 주님의 연민,
친히 고통을 담당하신 주님의 용기,
욕을 당하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신
주님이 온유하신 인내,
맡겨진 일을 이루고자 애쓰시는
주님의 신실함,
주님의 단순성,
주님의 자기 훈련,
주님의 평온함,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온전한 신뢰,
이 모든 면에서 제가 주님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아멘.
*존 베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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