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

이형선 2012. 12. 10. 11:32

 

   목하 대통령 후보들의 각축과 유세가 절정을 이루고 있습니다.

   후보들의 정책 검증에 관한 뉴스를 시청하면서,

   또는 여야 후보는 물론이고 무소속들까지 포함해서 서로 다투어

   ‘새 정치’를 열심히 강조하는 나름대로의 모토나 비전을 읽으면서,

   왠지 “해 아래 새 것이 없다”(전도서1:9)는 지혜자 솔로몬의 말씀이 은근히 떠오릅니다.

 

 

   물론 ‘대한민국호(號)’의 향후 5년의 방향타를 쥐게 되는 대통령인 만큼 각 사람의 중심과 역사의 미래를 통찰하시는 하나님이, 국민들에게 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구원과 희망을 줄 수 있는 보다 나은 사람을 대통령으로 세워주시기를 저도 기도드립니다.

   저는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福音)을 전파하기 위해 힘써야할 교회나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의 일반 언론이나 이익단체들처럼 정치적 분파나 정쟁에 휩쓸리는 것은 유익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장로님 대통령’이라는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이 된 이후 기독교가 순풍을 타고 더 전파되기는커녕 되레 사회적으로 거부반응이라는 역풍을 맞고, 침체를 지나쳐 숫제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국면에 빠지고만 것도 현실적인 그 실례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교분리(政敎分離)’의 원칙이 과연 옳다고 생각하고, 여기서 특정 후보를 지지하고자 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누군가 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선택해야만 합니다.

   최선의 인물이 없으면 차선의 인물이라도 뽑아야만 합니다. 또한 그렇게 될 것입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현실정치로 대한민국이 이상향 혹은 지상낙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특정 인간 누군가가 국민들에게 진정한 희망과 행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진정한 희망이나 행복은 경제부국이나 군사강국이 되는 것이나 남북으로 분단된 민족의 비극을 이념적으로 교묘하게 역이용하는 정치적 술수나 책략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 포함해서 고도의 개인주의와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오늘의 대다수 서민들이 ‘새 정치’를 열망하는 요인도 대부분 ‘부익부 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라는 병적으로 심화된 경제적 양극화 내지 불평등에서 오는 것이고 그래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까지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공평한 분배 내지 따뜻한 나눔과 공존을 의미하고 또 그런 국가공동체가 되어야합니다만, 그러나 서민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의 가치관이 개인주의나 자본주의나 인간 자체조차도 물질로 이해하는 유물론이나 주체사상 등의 이념에 사로잡혀있는 한,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이상적인 ‘새 정치’ 풍토는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 가치관에 사로잡혀 있는 어떤 후보가 성공해서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지배하는 소수’를 위한 또 다른 ‘당신들만의 잔치’가 되기 십상이라는 것입니다.

 

 

   봉건시대가 아닌 민주주의시대를 사는 우리는 국민인 우리가 우리 손으로 직접 최고통치자를 뽑는다고 자부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둬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보다 재물이나 세상의 부귀영화나 안일이나 쾌락을 더 좋아하는, 그래서 타락한 백성들에게는 역시 타락한 지도자를 허락하신다는 그것 말입니다. 우매한 백성들에게는 우매한 지도자를 허락하신다는 그것 말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이나 악명이 높은 로마의 네로 황제 같은 지도자나 히틀러나 스탈린 같은 지도자도 허락하시고 그래서 시대의 비극이나 고통이나 핍박조차도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계시적으로 선택한 대표민족인 ‘이스라엘’조차도 그들의 중심 가치관이 악하게 타락하자 역시 ‘악한 왕’들을 허락하시고, 나아가 마침내 이방세력인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에 의해 왕국이 망하고 그들의 치하에서 포로로 살게 하신 구약의 역사의 섭리가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특정 정치지도자만 탓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 시대를 함께 사는 그들 모두의 연대책임이고, 이 시대를 함께 사는 ‘우리’ 모두의 연대책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태복음6:12)

 

 

   이미 ‘우리의 죄’로 인해 타락한 세상 역사의 순환에는 그래서 예나 지금이나 “새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새 정치’도 없습니다. 누군가가 대권을 잡고 ‘새 정치’를 시작한다고 해도 상대적으로 ‘보다 나은 정치’를 할 수는 있겠지만, ‘새 정치’를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결국은 ‘헌 정치’의 개선이나 회전 아니면 재판 정도에서 오락가락하고 말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세속사 현장에서 비관적인 방관자로만 살아야하는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해 아래 ‘새 것’은 없지만, 그러나 ‘새 영’과 ‘새 마음’의 세계는 있다고 확실하게 증언하고 있습니다.

   -또 새 영(靈)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에스겔36;26-)

 

 

   그렇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희망이나 행복은 ‘새 것’이나 남보다 ‘많은 것’에서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새 영’ 곧 하나님의 영인 성령에서 오는 것이고, ‘새 마음’에서 오는 것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의 좌우이념이나 특정 인간이나 어떤 후보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이웃을 일개 동물이나 물질이나 상품이나 노동력 정도로 이해하는 차원이 아닌, 피차 고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로 볼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차원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령에 의해 ‘새 마음’ 곧 ‘새 심령’을 가질 때 곧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속사’인 ‘새 정치’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그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성령의 사람이자 새 마음의 사람인 ‘그리스도 인격’이 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신학자 칼 바르트의 명언처럼

   “한 손에 성경을, 한 손에 신문을” 들고 삽니다.

   또 그래야만 합니다.

   신문에 실리는 대통령을 위시한 세속사(世俗史)가 사람들이나

   다수의 뜻 내지 힘에 의해 경영되는 것 같아도,

   성경에 계시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 내지 영안(靈眼)에 열리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속사조차도 구속사(救贖史) 중심으로 경영이 됩니다.

   하나님이 ‘하루가 천년 같이, 천년이 하루 같이’, 때론 빠르게 때론 존재하지도 않으신 것처럼 더디게 그렇게 구속사 중심으로 세속사를 운행하십니다. 타락한 인생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이루고자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및 종말론을 향해 가는 하나님의 구속사 중심으로 섭리 및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 그대로 지금은 예루살렘에서 시작한 하나님의 복음이 20세기에 걸쳐서 로마와 유럽과 미국을 거쳐 아시아 및 땅 끝까지 전파되고 있는 여정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영안(靈眼)으로 갈파한 구속사 그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고자 하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의 신비”(로마서11:25)가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구속사의 ‘비밀’ 내지 ‘신비’가 다 이루어질 때까지 ‘세상의 배꼽’이자 ‘세상의 중앙'(에스겔38:12)인 예루살렘이 이방인들에게 짓밟히는 중동 전쟁 등의 소요는 끝이지 않을 것입니다. “깨어 있으라”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경고처럼 잊을만하면 또 터지고 또 터지곤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친히 이렇게 예언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누가복음21:24)

 

 

   나아가 아픔도 슬픔도 고통도 빈부격차도 차별도 죽음도 없는 우리 인생들의 이상향(理想鄕)인,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이자 ‘구속사’는 최종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과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렇게 성취 및 마무리된다고 성경은 예언 및 계시하고 있습니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어라.-(요한계시록21: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시는 곳’, 그곳이 온전하고 종말론적인 천국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또한 세상에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부분적이나마 이미 와 있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시는 마음’, 그곳이 또한 현재적인 천국인 것입니다. 인생의 생사화복이나 우여곡절 등에 얽힌 모든 고통이나 애환을 이기는, ‘세상을 이기는 그리스도의 평안’이 함께하는 우리의 심령이 또한 현재적인 천국의 소재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지금 무엇으로 가득 채워져 있을까요?

   돈? 권력? 명예? 주색?

   분명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함께 계시는 마음’, 그곳이 자기도 살리고 남도 그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살릴 수 있는 그래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되어 공존할 수 있는 진실로 복이 있는 현재적인 천국의 시원(始原)이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도 거기서 나오고, ‘새 정치’도 비로소 거기서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오셨고 또한 장차 오실 것입니다.

   메시아는 이미 오셨고 또한 장차 오실 것입니다.   

   천국 역시 그렇게 ‘이미 또한 장차(already but yet)’, 와있고 또한 올 것입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신 이가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요한계시록22:20)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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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의 사회에서는 날로 개인의 권리만이 주장되고 있다. …

    자기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 모든 물건들은 마음대로 쓰고 버릴 수 있는 존재에 불과하다. 이웃은 자기를 위해 만들어졌으며 자기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존재에 불과할 뿐이다. 이러한 관념이 미국 문화의 심장부에서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다. 이 불꽃은 진로에 방해가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 모조리 삼켜버린다.

 

 

   우리는 자기의 삶만을 안락하게 만들기 위해 애쓰며 이웃의 고통과 결핍에 대해서 망각할 우려가 있다. 또한 은혜라는 미명하에 교만과 성적 불결과 탐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씀하는 여러 성경 구절들을 과소평가할 우려가 있다. 자아성취복음이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복음을 본뜬 번지르르한 위조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 하더라도, 우리에겐 무의식적으로 거짓복음에 대한 가치를 과대평가할 우려가 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려고 노력하고, 자기의 가족들을 위해, 동료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가난한 자와 병든 자들을 위해 희생하고자 노력한다.-

 

 

                                                                                                               *존 우드브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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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병들고 가난한 사람을 만지는 것은

    곧 고통 받는 예수님의 몸을 만지는 것입니다.-

 

 

                                                    *마더 테레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