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우화) 누렁소가 먹는 '백년 묵은 산삼'

이형선 2013. 4. 8. 09:12

 

저잣거리나 5일장터에선 벌써부터 촌부들의 촌평이 화제가 되어 있었다.

금년에도 ‘고을 씨름대회’ 최종결선에 오를 후보는 단연 겉보릿골 누렁소와 밤골 검정소라고 예견하는 내용이 그것이었다. 작년에, 외모가 우락부락한 것도 아니고 덩치가 큰 것도 아닌, 차라리 비실비실해 보이는 겉보릿골 누렁소와 최종결승전에서 맞붙어 후반에 밀려 아깝게 분패했던 밤골 검정소는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설욕의 기회가 주어졌다고 굳게 믿은 것이다.

 

 

밤골 검정소는 자기 주인이 매일 푸짐하게 주는 고급양식인 밤을 배불리 먹으면서, 타이어를 끌고 산에 오르고, 모래가마니를 등에 메고 들판을 뛰는 등 연일 체력과 기교를 강화시켰다. 이만하면 숙적인 겉보릿골 누렁소를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마침내 ‘고을 씨름대회’의 예선과 준결승전이 다 끝났다. 촌부들의 촌평처럼 과연 최종결선에 오른 후보는 겉보릿골 누렁소와 밤골 검정소였다.

 

 

최종결승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날.

여느 때처럼 산에서 훈련을 마치고 돌아오던 밤골 검정소는 방앗간 근처에서 참새들이 재잘재잘 입방아 찧는 소리를 들었다.

   “얘, 겉보릿골 누렁소는 제네 주인집이 가난해서 맨 날 겉보리만 먹고 산다던데 어떻게 그렇게 씨름을 잘할까? 걘 참 여유가 있어 뵈더라.”

   “걔, 금년에도 작년처럼 또 백년 묵은 산삼을 먹었다고 그러던데.”

   “백년 묵은 산삼? 그건 영물(靈物)이라 보통 것들의 눈에는 잘 보이지도 않는 거잖아!”

   “그럼 금년 승자도 뻔할 뻔자다 얘. 백년 묵은 산삼은 죽을 사람도 살린다던데, 그 위력을 누가 당해!”

 

 

밀짚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채 못들은 척 외면하고 지나쳐 왔지만, 외양간에 당도한 검정소는 작년의 패인(敗因)이 그것이었구나 싶어 영 마음에 걸렸다. 그때 주인이 검정소의 저녁양식인 밤을 들고 친히 외양간으로 찾아왔다. 그러나 검정소는 밤 이까짓 걸 배불리 먹는 정도로는 안 된다 싶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백년 묵은 산삼을 한 뿌리만 먹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그럼 누렁소를 이길 수 있다고 장담하며.

 

 

주인은 곤혹스러운 듯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윽고 이렇게 입을 열었다.

   “성경에, ‘자기를 이기는 자는 한 성(城)을 빼앗는 자보다 낫다’는 말씀이 있느니라. 이기고 지는 세상의 모든 문제는 먹는 것 마시는 것에 그 답이 있는 것이 아니다. 먼저 세상에 속한 너 자신을 이기도록 해라. 그래야 네가 되레 세상도 이기고, 누렁소도 이길 수 있을 게다.”

 

그리고 주인은 돌아서 가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자기를 이기는 자는 설령 전투에서 지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기는 법이지.”

 

 

그러나 백년 묵은 산삼이 이미 그의 눈이나 마음을 가려버린 때문일까. 검정소는 그런 주인의 뜻이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하지 못했다. 주인이 그저 고깝기만 했다. 그래서 주인의 뜻을 먼저 구하기는커녕 현실이나 세상의 실물 역학(力學)을 도무지 모르는 구닥다리 영감탱이라고 되레 주인을 원망하며 한사코 구시렁거리고만 있었다.

 

 

이튿날.

검정소는 평소에 하던 강화훈련을 그만두고, 자기 발로 백년 묵은 산삼을 직접 찾아서 먹고자 진종일 깊은 산속을 헤매며 뒤졌다. 그 다음날도 자기의 뜻을 고집하며 역시 그랬다. 그러나 산삼은 정말 보통 것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일까. 몸만 더 기진맥진해졌을 뿐, 검정소는 결국 그 좋다는 산삼을 먹지 못한 채 결승전에 출전해야 했다.

 

 

마침내 ‘고을 씨름대회’에서 맞붙은 겉보릿골 누렁소와 밤골 검정소.

덩치가 크고 우락부락한 검정소는 기선을 잡고자 누렁소를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내심으론 과연 백년 묵은 산삼을 먹어 때깔부터가 좋구나 싶어 은근히 기가 죽었다. 그래서 초반 승부수를 노린 검정소는 그의 실한 뿔로 마구 밀어붙였다. 실인즉 체력은 영양가 높은 밤을 매일 먹고사는 검정소가 겉보리만 매일 먹고사는 누렁소보다 훨씬 강했다. 그래서 계속 밀리는 누렁소는 그러나 여유 있게 버티는 지구력과 인내력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곰처럼 밀어붙이는 검정소의 공격을 부드럽게 피하며 시간을 끄는 지혜와 유연성이 있었다.

 

 

그렇게 후반으로 접어들자, 공격하면서 제물에 지쳐버린 검정소는 점점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저놈이 먹은 백년 묵은 산삼의 효력이 점점 나온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생각에 잡힌 검정소는 누렁소를 무리하게 공격하다가 순간적으로 실족하며 갸우뚱 중심을 잃었다. 누렁소는 그때를 놓치지 않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되치기’로 역공을 펼쳤다. 검정소가 바닥으로 쿵하고 넘어졌다. 검정소는 금세 다시 일어나 누렁소와 맞섰지만 그러나 승부는 그렇게 결정이 나고 말았다.

 

 

작년에 이은 연거푸 패배에 울화가 치민 때문인지 검정소는 여전히 거품을 씩씩 뿜어대며 누렁소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변명하듯 원망하듯 이런 말을 내뱉었다.

   “임마, 난 너한테 진 게 아냐! 네가 먹은 백년 묵은 산삼한테 졌을 뿐이야!”

 

그러자 ‘백년 묵은 산삼’을 먹기는커녕 그것이 어떻게 생겼는지 구경조차 하지 못했던 누렁소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윽고 혼잣말하듯 다만 이렇게 중얼거렸다.

   “하긴 우리 주인이 언제가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지. ‘겉보리 양식도 그것에 자족하고 감사하면, 그게 백년 묵은 산삼이 되는 것이다’고.”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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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의 말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구약성경, 잠언22:12-13*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신약성경, 빌립보서4: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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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약 하나님의 복을 받기 원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알려지고 싶다면 중재하는 법을 배우라.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마태복음5:9)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복을 받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기억하라.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평화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분은 “평화로운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시지도 않았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자들은 복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깨어진 모든 인간 관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릭 워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