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결혼식의 계절’이라던가요.
전철 안에서도, 친지의 아들이나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청첩장을 들고 웨딩홀의 위치를 찾는 순박한 어른들의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띕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며’(로마서12:15),
누군가를 축복해주기 위해 가는 발길은 아름답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젊은이들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복해주는 ‘선물’은 과연 무엇일까?
그런 자문을 해봅니다.
그럴 때면 늘 먼저 떠오르는 일화와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 중 맨 처음 행하신
표적으로, 요한복음에 기록된 ‘가나의 혼인 잔치’
그 일화와 말씀이 그것입니다.
‘갈릴리 가나’ 마을에 선남선녀의 결혼잔치가 있었는데,
그곳에 ‘예수의 어머니와 예수와 그 제자들이’
초대를 받아 함께 참석을 하게 됩니다.
즐거운 잔치가 한층 고조되어 가는 도중에,
돌연 잔치를 주최한 신랑 신부를 위시한 가족들은
곤혹스런 낭패에 직면하게 됩니다.
-포도주가 모자란지라.-(요한복음2:3)
저 한 마디 표현에는 심오한 인생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습니다.
잔치의 분위기를 살리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달콤한 기쁨은 ‘포도주’입니다.
유대인의 당시 관습에 의하면, 결혼잔치에 사람을 초대해놓고 포도주가 없다고 하면 그것은 법적 곤욕까지도 치를 수 있는 결례이자 가문의 수치였습니다.
저 ‘포도주’ 곧 헬라어 ‘오이노스’는 물론 ‘포도주(wine), 술’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만, 그것은 또한 남녀 두 사람이 결혼을 통해 한 몸, 한 가정을 이룬 이후의 인생 여정에는 결코 즐거움과 달콤한 기쁨만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의 상징성이자 함축성일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란 공동체는 ‘포도주’가 모자란 공동체입니다.
‘행복’이 부족한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하긴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우리 개개인 모두의
인생 여정 자체부터가 어차피 ‘포도주’가 모자란 여정입니다.
물론 얼마 동안 결혼한 젊은 남녀의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은 꿀과 같고 포도주와 같겠지만,
그러나 살다보면 앞으로 어려운 일도 많이 생기도, 고달픈 일도 많이 생기고,
심지어 부부간의 불화와 갈등과 반목도 생기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숙제는, 모자란 인생의 ‘포도주’를,
인생의 행복을 어떻게 마련하고,
어떻게 채울 수 있느냐? 그것으로 집약이 됩니다.
실인즉 그것이 결혼하는 젊은 남녀들이 먼저 풀어야할
가장 중요한 혼수(?)이자 인생의 숙제이자, 성격이나 배경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기 위한 가장 복된 영성(靈性)의 비밀이기도 합니다.
그럼 그 해법을 상고해봅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결혼한 그 가족과 아주 가까운 사이였던 것 같습니다.
포도주가 부족한 사정을 미리 알게 된 ‘성령의 사람’ 마리아는
그 해법을 장사하는 가게나 주점으로 가서 돈으로 구하지 않습니다.
엉뚱하게도(?) 예수 그리스도에게 알리며 그 해법을 구합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요셉을 대신하여 어머니를 중심으로 가족을 부양하던 사생애(私生涯)가 이미 아닌, 메시야로서의 공생애(共生涯)에 나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구속사(救贖史)를 위한 ‘내 때’를 고려해서 일단 난색을 표명합니다만, 그러나 이웃의 즐거워야할 결혼잔치의 곤경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 집 하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그곳에 놓여 있던 백 리터 정도 들이의 ‘돌항아리 여섯 개’에 물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이성(理性)이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부족한 것은 포도주인데, 물을 빈 돌항아리 아귀까지 채워봐야 뭘 합니까?
말씀을 채워봐야 뭘 합니까? 기도 내지 간구를 채워봐야 뭘 합니까?
삶은 현실인데, 그런다고 현실의 문제가 해결됩니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인들은 하인들이니까
그냥 시킨 그대로 우직하게 순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역시 하인들은 하인들이니까 시킨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말씀에 대한 그 순종을 통해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본’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감탄하며 이렇게 말한 것입니다.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그렇게 신랑과 신부는 연회장의 칭찬 및 찬사와 함께 부족했던 즐거움과
기쁨과 행복의 ‘포도주’를 그들의 ‘빈 돌항아리’에 가득 채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결혼하는 청춘남녀들은 물론이고, 우리네 인생 모두에게 어차피 부족한 ‘포도주’는 오직 그렇게 채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채워져야만 합니다. 먼저 영적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및 그리스도를 가정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리스도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으로 행복은 살 수 없습니다.
돈으로 살 수 있는 ‘포도주’는 결국 부족하게 됩니다.
돈이나 권세가 아무리 많고 대단해도
거기서 오는 ‘포도주’는 결국 부족하게 됩니다.
‘신령한 포도주’ 그 그리스도의 비밀,
영성의 비밀, 성령의 비밀한 생명과 사랑만이 영원한 것입니다.
따라서 말씀에 순종할 때는, 자기 머리 굴리지 않고 그냥 저 ‘하인들’처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성경 말씀 그대로, 시킨 그래도 순종하는 것이 되레 자기에게 가장 복이 있습니다. 곤경이나 위기에 처한 인간 우리의 이성이나 상식이나 계산이나 인간관계에서의 구원도 기적도 그럴 때 거기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온 하인들은 알더라.-(요한복음2:9)
저 영성의 비밀이자 섬김의 비밀을,
포도주의 비밀이자 인생의 행복의 비밀을 아는
‘하인들’은 그래서 복이 있습니다.
그 비밀을 알게 된 신랑 신부도 이후 예수 그리스도를
저 ‘하인들처럼’ 섬기며 복이 있는 생애를 살았을 것입니다.
또한 부부 상호간에서의 서로 섬김은 물론이고,
이웃을 저 ‘하인들’처럼 섬기며 복이 있는 삶을 살았을 것입니다.
그럴 것이 저 ‘포도주’는 곧 죄인인 우리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代贖)의 피’이자
복된 ‘구원의 피’이자 ‘언약의 피’이기 때문입니다.
-(*최후의 만찬 때) 또 잔을 가지사
감사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포도주) 이것을 마시라.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마태복음26:27-28)
따라서 저 그리스도의 비밀, 영성의 비밀,
인생의 행복의 비밀을 알고,
오늘도 ‘빈 돌항아리’의 수치에 절망하지 않고
저 하인들처럼 혹은 어린아이들처럼
먼저 ‘순종의 물’ 내지 '섬김의 물'을 붓고,
그래서 ‘구원의 포도주’를 마시며
사는 자들에게 하늘의 참 복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그렇게 하나님 및 그리스도를 섬기며,
아울러 사랑과 기쁨과 즐거움과 화평의 ‘포도주’를
이웃에게도 나눠줄 수 있는 복된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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