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군 오지면.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도시로 떠난 지 이미 오래된
그 오지면의 오지초등학교 5학년 학생은 단 세 명이었다.
철호와 돌이와 진아가 그들.
텁수룩한 구레나룻이 인상적인 담임선생님은
그동안 학생들이 잘 모르는 난치성 희귀질병을 앓고 있었다.
그러나 투병생활이 여의치 않자 휴직을 하고 치료에 전념하기로 한 담임선생님은
그런 사정을 휴직 사흘 전에야 비로소 학생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수업을 하던 날.
평소에도 ‘다윗과 골리앗’이나 ‘에스더’나 ‘선한 사마리아인’ 등
성경 속의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희들도 앞으로 어른이 되면 절로 알게 되겠지만,
세상을 사는 사람들에겐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때론 어렵고
때론 무거운 고난이나 고통의 문제나 짐이 있기 마련이란다.
그러나 김길동이란 사람에게는 그것이 지극히 어렵고 무거운 문제나 짐이 되지만,
같은 그것이 이길동이란 사람에게는 아주 쉽고 가벼운 문제나 짐이 되기도 한단다.
두 사람 중 하늘의 참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니?”
그것은 그렇게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철호와 돌이와 진아는 약속이라도 한 듯 오른손을 치켜든 채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길동이요!”
선생님은 화답 대신 만면에 미소를 지은 채 고개를 크게 끄덕거리며 세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을 마음의 방에 담아두려는 듯 각각 눈(目)사진을 찍은 후,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 너희들에게 숙제를 주겠다.
선생님이 너희들에게 주는 마지막 숙제가 되겠구나.
저 김길동이란 사람의 길과 이길동이란 사람의 길이 서로 다른 점은 한 마디로 무엇이겠니?
두 사람의 길을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는 그 차이점은 한 마디로 무엇이겠니?”
그것은 참으로 어려운 수수께끼이자 난해한 숙제였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릴 뿐 누구도 답변을 하지 못했다. 짐짓 뜸을 들인 선생님이 이내 입을 열었다.
“물론 이건 어려운 숙제야. 너희들에게는 물론이고 선생님에게도 역시 어려운 숙제지.
따라서 지금 여기서 대답을 하라는 건 아냐. 너희들도 선생님인 나도 앞으로 살아가면서
관심을 가지고 곰곰이 그리고 꾸준히 풀어나가자는 마음에서 남기는 숙제란다.”
그렇게 선생님과의 마지막 수업은 끝났다.
세 아이들은 교정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선생님과 얼싸안은 채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거기서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린 머잖아 또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배웅하는 선생님을 뒤에 두고 아이들은 나란히 귀갓길에 나섰다.
시무룩한 아이들은 한동안 말없이 시골길을 터벅터벅 걷기만 했다.
그러던 돌이가 혼잣말하듯 입을 열었다.
“왜 사람들은 만났다가 슬프게 헤어져야 하는 걸까?
선생님 말씀처럼 그것도 가볍고 기쁘게 헤어지면 좋을 텐데….”
“그러게. 우리 아버지도…, 우리 선생님도…, 왜 병을 앓으며 고생해야 하는 거지?
다 건강하시면 좋을 텐데, 쳇!”
철호가 그렇게 받으며 길에 뒹구는 깡통을 발로 냅다 차버렸다.
그때 머리에 늘 노랑나비핀을 꽂고 다니는 진아가 그런 돌이나 철호를 나무라듯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선생님은 우리에게 희망을 주셨잖아!”
돌이와 철호가 퉁명스럽게 받았다.
“희망? 무슨 희망 말이야?”
“우린 머잖아 또 웃으며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 말이야.
희망이 있는 사람은 어렵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결코 낙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
돌이와 철호가 그런 진아가 대단하다는 듯 짐짓 눈을 크게 뜨며 받았다.
“그런가? 그럼 너 선생님이 내주신 그 수수께끼 같은 숙제의 답도 아니?”
“그건 나도 몰라. 그렇게 어려운 걸 나라고 알겠니.”
“하긴 그래. 선생님에게도 그건 어려운 숙제라고 하셨으니까 뭐.”
그때였다.
뒤에서 경운기가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지면 같은 마을에 사는 아저씨가 밭일을 마치고 귀가하는 길이었다. 돌이와 철호가 번쩍 손을 들고 소리쳤다.
“이장님 아저씨! 저희들 좀 태워주세요!”
“학교 파했구나.”
이장 아저씨는 흔쾌히 경운기를 세웠다. 아이들은 농기구가 실린 경운기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저씨는 마을회관에 들러 볼일이 있다면서 경운기의 속력을 올렸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던 경운기가 산등성이에 위치한 저수지 옆길을 돌아서 갈 때였다. 울퉁불퉁 거칠게 패인 좁은 길목에서 우회전을 하려던 경운기가 갑자기 갸우뚱 기울었다. 당황한 이장 아저씨는 저수지 쪽으로 빠지지 않기 위해 핸들을 반대편으로 꺾었다. 순간 뒷바퀴가 들리면서 경운기가 경사진 비탈 쪽으로 전복하고 말았다. 순간 세 아이들의 비명소리가 터졌다. 이장 아저씨는 다행히 무사했지만, 세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신음소리가 범벅이 되고 있었다.
세 아이들은 곧 읍내 보건소로 옮겨졌다.
아이들은 나란히 한 병실에 누운 채 링거를 맞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큰 사고는 아니었다. 경운기를 자주 탔던 사내아이들인 철호와 돌이는 요령이 있어서인지 경상에 그쳤고, 진아만이 오른팔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기브스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병실에 누운 채 링거를 맞고 있던 돌이가 몸을 일으키며, 자기의 몸이 아픈 것보다 더 크고 무거운 고민을 토로하듯 이렇게 말했다.
“야, 이렇게 입원해 있으면 치료비도 많이 나올 텐데 어떡하지?
우리 할머니는 돈도 못 버시는데 시리!”
그도 그럴 것이 돌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고로 일찍이 여의었다. 그래서 할머니와 단 둘이 살고 있는 아이였다. 그때 철호도 몸을 일으키며 맞장구쳤다.
“나도 진짜로 그게 걱정이다. 돈이 정말 많이 나올 텐데 어떡하지?
돌이 너도 알다시피 우리 아버지도 병들어 작년부터 골방에 누워만 계시잖아.
내가 다쳤다는 소리만 들어도 심란해하실 텐데, 정말 그것이 큰 고민이다, 고민!”
그러자 그들보다 더 크게 다친 진아가 몸을 일으키며 의외로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너무 걱정하지 마.
오늘 우리 선생님의 말씀처럼 다 쉽고 가볍게 해결이 될 수 있을 거야.”
철호와 돌이가 각각 퉁명스럽게 받았다.
“야, 우리가 사고 당한 것도, 입원한 것도 다 현실이야.”
“암, 위로가 밥 먹여 주는 건 아니니까 큰 고민이지.”
진아가 목소리에 더 힘을 주어 말했다.
“걱정하지 말라니까!”
차라리 태평하리만큼 마음의 여유가 있고 평안해 보이는 진아가 되레 좀 이상하다 싶어진 돌이는 이렇게 반문했다.
“진아 너 또라이도 아닌데, 그렇게 자신 있는 걸 보니 뭐 믿는 구석이 있는가 본대?”
철호도 맞장구쳤다.
“그래, 믿는 구석이 분명히 있는 것 같다. 그게 뭐지?”
순간 진아가 전혀 엉뚱한 말을 부르짖었다.
“알았다! 그 숙제의 답을!”
영문을 알 수 없는 철호와 돌이는 의아한 얼굴로 진아의 표정을 살피고만 있었다. 진아가 말을 이었다.
“얘들아, 나 이제 알았다! 오늘 우리 선생님이 내주신 그 마지막 숙제의 답을!”
“너도 모른다고 했잖아?”
“그랬지. 그런데 지금 알았어!
우리가 이렇게 고통을 당하는 자리에서 비로소 알게 되었단 말이야!”
바로 그때.
교정에서 작별인사까지 나눴던 선생님이 병실로 불쑥 들어섰다.
아이들의 불행한 사고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찾아온 길이었다.
그 자리에서 진아는 씩 웃으며 담임선생님께 먼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오늘 우리에게 내주신 그 마지막 숙제의 답을 저 이제 알았어요.”
선생님은 의외라는 표정을 얼굴을 크게 그렸다.
“그래? 말해보렴.”
진아는 짐짓 뜸을 들였다. 철호도 돌이도 귀를 세웠다. 진아의 머리에는 여느 때처럼 노랑나비핀이 그대로 꽂혀 있었다. 진아가 이내 입을 열었다.
“김길동이란 사람과 이길동이란 사람의 차이점은 한 마디로,
아버지를 ‘살아계신 아버지’로 믿느냐 못 믿느냐의 차이이자
모든 일을 ‘살아계신 아버지’께 맡기느냐 못 맡기느냐의 차이입니다!
아버지를 죽은 아버지나 병들어 골방에만 누워계신 아버지로 알고 있고
그렇게 믿을 때는 모두가 다 김길동이란 사람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철호와 돌이는 순간 마음에 크게 찔리는 것이 있었다.
그때 선생님은 이렇게 받았다.
“바요나 시몬아 네게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과 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리고 잠시 사이를 두고 그 말이 ‘성경 마태복음 16장에 있는, 우리의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 담임선생님은 이어 이렇게 말했다.
“너희의 선생님인 나도 진아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투병생활을 할 테니까,
철호나 돌이도 앞으로 진아의 말을 가슴에 깊이 새기고 살도록 하려무나.
그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살아계신 나의 아버지’로 정말 믿고 맡기는 사람은,
그 어떠한 어려움이나 시련이 와도 영원한 소망이 있기에
그 모든 것을 능히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열매로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자꾸나.”
그리고 담임선생님은 막차시간에 맞춰 돌아갔다.
그 일주일 후, 세 아이들은 모두 퇴원을 했다.
진아의 아버지가 보건소 소장님이자 의사였기에, 진아의 중보(仲保) 덕분에 병원비 일체를 탕감 받고 철호와 돌이도 자유롭고 신나게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이다.
퇴원할 때, 진아의 아버지는 철호와 돌이에게 이런 언약까지 주었다.
“우리 진아의 생일이 사흘 후란다.
진아의 각별한 부탁도 있고 하니까, 그날 생일잔치에, 우리집에 꼭 놀러오도록 하렴.”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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