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복(伏)날 세상

이형선 2014. 8. 4. 08:31

 

 

이사 온 마을 뒷산

저 낮은 숲을 거닐다가,

나는 보았다.

태초의 실존을.

태초의 사랑을.

타는 목마름일까.

타는 배고픔일까.

고라니가 어린 제 새끼와 함께

길을 헤매고 있는 것을.

타는 땀방울.

인생도 걸음을 멈추었다.

헉헉 앓는 복(伏)날 세상.

헉헉 앓는 서민 세상.

그래도 우리는 살아 있다.

 

스스로 잘 본다고 자부하는

낮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늘의 이슬.

하늘의 은혜.

그 태초의 사랑

그 비밀이 크도다.

뙤약볕 아래서 타는

우리의 목마름보다 크도다.

뙤약볕 아래서 타는

우리의 땀방울보다 크도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오늘의 삶은

오늘에 끝나지 않는다.

너무 낙심할 것은 없다.

너무 서두를 것도 없다.

그것이 열심도 아니고,

평안은 더더구나 아니다.

평안이란 내세까지도

미리 보면서,

여유를 가지는 것.

 

새벽의 눈에

비로소 보이는,

오늘도 임하는

하늘의 이슬.

하늘의 은혜.

그 태초의 구원

그 비밀이 크도다.

긴 세월 타던

우리의 목마름보다 크도다.

긴 세월 타던

우리의 땀방울보다 크도다.

그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