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이 잘 우거진 그 동산에는
동화 속에 나오는 궁궐이나 별장처럼
아름답고 멋진 집이 한 채 서 있었다.
숲에서 피어오르는 안개 때문인지
신비로운 기운까지 감도는 그 집 대문에는
‘하나님의 집’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지방 소도시의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은 등하굣길에
매일 지나쳐가는 그 동산의 ‘하나님의 집’을
올려다볼 때마다 막연한 동경과 상상을 하곤 했다.
저 집엔 누가 살고 있을까?
진짜로 하나님이 살고 계실까?
아니면 공주와 난장이들이 살고 있을까?
아니면 천사로 가장한 요술할멈?
아니면 콩쥐와 팥쥐?
그런 어느 날.
하굣길에 우리 가운데서 공부도 제일 잘하고,
주먹도 담력도 제일 센 철호가 그 집 대문을
우리 힘으로 무조건 한 번 열어보자고,
그래서 과연 누가 사는지 살짝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대문으로 들어가기가 어려우면, 담장이라도 넘어서
집 안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 좀 살펴보자고 제안했다.
강철호는 우리들의 ‘위대한 골목대장’이었기에
그의 말을 거역하기도 어려웠지만, 우리 역시
그렇게라도 해서 신비의 영역인 그 ‘하나님의 집’ 안을
좀 살펴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긴 마찬가지였다.
철호는 이내 자기가 마치 김유신 장군이나
이순신 장군이라도 되는 듯이 “나를 따르라”고
감히 소리치며 앞장서서 그 동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병사들처럼 그의 뒤를 따라갔다.
이윽고 우리는 ‘하나님의 집’ 앞에 섰다.
물론 대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앞장선 철호가 그 앞에서는 캥키는 듯 자꾸만
망설이며 집안 낌새만을 살피고 있었다.
사나운 개들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외려 지금껏 우리가 그 어디서도 맡아볼 수 없었던
맑고 그윽한 향기가 집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코를 자극하는 꽃향기와는 분명히
구별되는 것이었다. 그 향기는 희한하게도 사람의
마음을 의롭게 그리고 선하게 자극하는 고상한 향기였다.
그래서 더욱 궁금증이 발동한 우리는 성문이라도 열듯
함께 대문을 힘껏 밀어붙였다.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치며.
“열려라! 참깨!”
대문은 의외로 쉽게 스르르 열렸다.
애초부터 잠겨있는 문은 아니었다.
대문이 활짝 열리자,
순간 처음 보는 크고 작은 아름다운 꽃들이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정원의 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밖에서 보던 풍광보다 훨씬 아름답고 평화로운 정경이었다.
이른바 ‘낙원’이란 곳이 바로 이런 곳인가 보구나 싶었다.
대문이나 담장 너머로 집 안에 과연 누가 사는지
살짝 들여다보기만 할 요량이었던 우리는, 연방
탄성을 지르며 우리도 모른 새에 신비에 이끌리듯
점점 집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우와! 세상에! 왔다다! 왔다!”
“진짜 천국이다! 정말 천당이여!”
바로 그때.
집 안에서 눈부시도록 새하얀 옷을 입은
한 아저씨가 밖으로 나왔다.
그 아저씨의 얼굴에서는 인자한 아니 차라리
거룩한 빛과 고상한 향기가 나고 있었다.
우리가 대문 밖에서 맡았던 바로 그 향기다 싶었다.
그 아저씨가 우리들 앞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남의 집에 무단으로 침입했으니 불호령이 떨어지겠다 싶어
우리는 잔뜩 주눅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그 아저씨는 의외로 다정하게 이렇게 물었다.
“어디서 왔니? 전혀 모르는 애들인데…?”
다정한 그 어른의 응대에 불현듯 용기가 생긴
우리들은 다짜고짜 이구동성으로 떼를 썼다.
“아저씨, 이곳이 어떤 집이에요?
구경 좀 하게 해주세요!”
“이곳은 ‘하나님의 집’이란다.”
“진짜 하나님이 사시는 집이에요?
아니면 성이 하씨고,
이름이 나님이란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에요?”
그 아저씨는 더 이상 응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빙그레 미소로 답하다가 이어 조용히 이렇게만 말했다.
“이곳은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란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고,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지.
그만 나가도록 해라.”
그 어른의 말은 영 난해했다.
그러니까 한 마디로 우리들은 들어올 자격이 없다는
말씀인데, 그것은 우리 선생님이 평소에 우리에게 내주는
숙제보다 훨씬 더 어려운 숙제다 싶었다.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 수 있는 사람?’
도대체 그런 자격은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 주어진다는 것일까? 그 어른의 말에는
또한 우리가 감히 거역할 수 없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더 이상 질문을 할 수 없었다.
이상하게도 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다.
그럴 것이 도적이 지레 제 발 저리는 것처럼,
지난날 남들에게 알게 모르게 거짓말한 것이나
못된 죄 지은 일들이 절로 떠오르며
제물에 마음이 너무 찔리고 너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만 슬금슬금 물러나오고 말았다.
그런 달포 후였다.
서울에서 내려왔다는 한 사내아이가
우리 학교 우리 반으로 전학을 왔다.
그 아이의 이름은 ‘하수예’였다.
수예는 우리들과 하굣길 방향이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어울려 여느 때처럼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수예가 우리들에게 먼저 이렇게 말했다.
“얘들아, 오늘이 마침 내 생일이란다.
우리집 잔치에 너희를 초대하고 싶은데, 같이 가자!”
그것은 물론 신나는 일이었다.
우리는 수예의 뒤를 따라 그의 집으로 가기로 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의 집은 달포 전에 우리가
우리의 ‘위대한 골목대장’ 강철호의 뒤를 따라 감히 올라갔다가
결국 쫓겨났었던 바로 그 동산의 그 ‘하나님의 집’이었다.
우리 모두는 이상하게도 스스로 양심의 가책 같은 것을 느껴
마음이 찔리고 부끄러워져서, 신비로울만큼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 집이었지만
그 안에서 바로 서 있을 수조차 없었던 달포 전의 기묘한 기억이 떠올라
대문 앞에서 한동안 망설이고만 있었다.
차마 그 집 안으로 들어설 용기가 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 수예가 집 안을 향해 이렇게 소리쳤다.
“아버지, 저 왔어요!
우리반 친구들과 같이 왔어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문이 절로 활짝 열렸다.
그리고 접때의 그 새하얀 옷을 입은 그 아저씨가
친히 나와서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우리 아들 친구들이구나!
어서들 들어오렴!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하나님의 아들의 친구들’라는 자격으로
떳떳하게 그리고 아주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의 집 안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어른이 "어서 들어오렴! 기다리고 있었다!"라고 말씀하는 순간,
역시 이상하게도 달포 전에 느껴지던 그런 가책이나 부끄러움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거실에는 산해진미의 푸짐한 생일잔칫상이 차려져있었다.
명절에나 구경할 수 있는 산해진미였다.
우리는 상에 둘러앉아 허리띠를 아예 풀어놓고
배꼽이 터지도록 신나게 먹었다. 그럴 것이 우리는
그때 수예의 이런 말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많이들 먹어라.
우리 ‘하나님의 집’ 양식이나 음식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이 안 난단다.
수박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배탈이 안 나는 것처럼 말이야.
배탈이 나서 자기나 가족이나 이웃들을 괴롭히는 것은
그것이 참된 양식이나 참된 음료가 아닌 때문이지.”
그리고 수예는 또한 그 식탁에서
우리들에게 좀 난해하다 싶은 이런 말을 했다.
“얘들아, 우리도 앞으로 배탈 나는 음식이나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지 않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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