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좋은 밭' 앞에서

이형선 2015. 4. 27. 08:45

 

 

이른 비더냐.

늦은 비더냐.

입 안에

하늘과 땅을 잇는

십자가를 품고,

간구하는 밭(田)에게

주어지는 은혜.

하늘의 단비로

세례를 받으면,

밭도 생물이 되는가.

밭이 숨을 쉰다.

정말 숨을 쉰다.

아예 기염을 토한다.

 

금년엔 뭔가

야무진 것을

품을 모양이다.

금년엔 뭔가

튼실한 것을

생산할 모양이다.

그 작물로

밭의 밭 됨을

말하겠다는,

기세 비등하다.

속속 기염을 토한다.

 

이른 비더냐.

늦은 비더냐.

마음 안에

하늘과 땅을 잇는

희망을 품고,

기다리는 밭에게

주어지는 은혜.

하늘의 단비로

세례를 받으면,

밭도 영물(靈物)이 되는가.

밭이 말을 한다.

정말 말을 한다.

아예 말씀을 토한다.

 

내 발목을 잡으며,

누가 산 밭이고

누가 죽은 밭인지,

누가 좋은 밭이고

누가 나쁜 밭인지,

내기하자며

벼르기까지 한다.

타고난 본래성이

피차 흙이자

피차 밭이긴

매일반 아니냐면서.

 

산천 앞에서

세월은 유수 같은

나그네인 것처럼,

밭 앞에서

나는 씨알 같은

나그네가 된다.

내 흙의 생애가

더 짧은 때문이려니.

내 밭의 생명이

더 짧은 때문이려니.

 

밭도 생물이어라.

숨을 쉰다.

정말 숨을 쉰다.

아예 기염을 토한다.

보는 눈이 있으면

지금 보라고 한다.

씨 뿌리는

인자(人子)의 모습을

지금 보라고 한다.

 

밭도 영물이어라.

말을 한다.

정말 말을 한다.

아예 말씀을 토한다.

들을 귀가 있으면

지금 들으라고 한다.

씨 뿌리는

인자(人子)의 소리를

지금 들으라고 한다.

 

금세가 보이는가.

내세가 들리는가.

땅의 씨알도

하늘의 씨알도

그 생명의 뿌리는

하나인 것을.

그 이치의 뿌리는

하나인 것을.

누가 죽지 아니하고

입으로 열매만 구하는가.

누가 죽지 아니하고

머리로 열매만 논하는가.

누가 죽지 아니하고

마음으로 열매만 탐하는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한복음1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