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몸으로 상경했던 지난날의
내 가난한 마음을 찾고 싶어서,
내 순수한 영혼을 찾고 싶어서,
나는 타향살이의 애환이
흑백으로 남아있는 옛 마을을 찾아갔다.
‘금촌’을 찾아갔다.
그러나 금촌은 이미 금촌이 아니었다.
신도시가 되어있었다.
‘21세기 아파트’ 단지였다.
다행히도 동산 위의 교회는
‘종교부지’로 남아있었으나,
보고 싶은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이쪽에서 보면
대형 건물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고,
저쪽에서 보면
전신주와 거기 얽힌 거미줄 같은
진화론의 전선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나는 다시 길을 옮겼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넓은 길을 따라 걸었다.
유식한 현대인의 상식처럼 걸었다.
그래도 십자가는 보이지 않았다.
이권을 다투는
모 집단의 구호가 혈서처럼 새겨진
현수막에 가려진 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방황을 끝내고 싶었다.
그리고 그만 돌아갈까 싶었다.
그러나 기왕 온 것.
지난날의 내 가난한 마음을 찾듯
지난날의 내 순수한 영혼을 찾듯
십자가를 되찾고 싶었다.
그런 십자가가 보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다른 길을 찾아야만했다.
나는 이방인처럼
오가는 현지 주민들에게
십자가를 십자가로
온전하게 볼 수 있는
다른 길을 물었다.
스스로 배부르고 이미 배부른
‘21세기 아파트’ 주민들은
죄다 모른다고 했다.
죄다 무관심한 채 고개만 딱 한 번
달랑 흔들며 지나쳐버렸다.
나는 그만 포기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만 돌아갈까 싶었다.
그러나 기왕 온 것.
지난날의 내 가난한 마음을 찾듯
지난날의 내 순수한 영혼을 찾듯
십자가를 되찾고 싶었다.
그런 십자가가 정말 보고 싶었다.
그때였다. 한 사람이 나타났다.
관심 밖의 ‘사마리아인’이었다.
나는 그에게서
찾는 사람이 적은 그래서 간간이
한 두 사람만이 오가는
좁은 길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그 길 너머 동네인
‘안식마을’에 살고 있다고 했다.
긴 시간의 절망을 체험했던 나는
기꺼이 그의 뒤를 따라갔다.
포장되지 않은
좁은 길은 단순했다.
바보처럼 어리석고 미련했다.
나는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피가 흐르는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러나 기뻤다.
쓰러진 자리에서 외려
살아있는 십자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죽은 십자가도 아니고
반쪽 십자가도 분명 아니었다.
내가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온전하게 살아있는 십자가였다.
개안(開眼)의 세계는 계속되었다.
진작 죽었어야 할 내 대신
죽어있는 메시아가 보였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나
진작 죽었어야 할 이 죄인 대신
죽어있는 그리스도가 보였다.
연탄가스 중독으로
질병이나 교통사고 등으로
진작 죽었어야 할 이 죄인 대신
죽어 있는 인자(人子) 예수가 보였다.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린도전서15:10)
그랬다. 정녕 그랬다.
나의 나 오늘 살아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였다.
생명의 값인 ‘일만 달란트’라는
은혜이자 빚이었다.
회개에 합당한 삶이 법적 의무라면,
은혜에 합당한 삶은 자발적 사랑이려니.
겉옷을 빚진 자는 자기 길을 가고,
생명을 빚진 자는 좁은 길을 가는 것처럼.
나는 문득 뒤돌아보았다.
선한 사마리아인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벌써 좁은 길을 넘어가셨나?
그 새? 앞서? 천사였을까?
높고 맑은 하늘이 하나님의 얼굴처럼
그냥 미소만 짓고 있었다.
*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린도전서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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