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아버지 '검은숯'과 아들 '검은숯'

이형선 2015. 11. 9. 11:26

 

 

어느 날.

검(黑) 씨 집안의 성년기에 이른

외아들 ‘검은숯’이 돌연 가출을 했다.

아들이 방에 남겨둔 편지의 내용인즉 이랬다.

 

-아버님 어머님.

 나를 찾기 위해 집을 떠납니다.

 이렇게 ‘추한 검은숯’의 몸으로 저는 물론이고

 이웃들의 손까지 더럽히며 한세상을

 지저분하게 살 수만은 없다 싶습니다.

 나는 과연 누구인가?, 인생은 과연 무엇인가?,

 보다 가치 있게 살 수 있는 길은 없는가?,

 그 답을 구하고 찾는 날,

 그 답이 풀리는 날 돌아오겠습니다.

 장날 읍에 가서 흑염소를 사오라고 주신 돈을

 노자로 쓰고자 허락도 받지 않고 가지고 갑니다.

 짚신 몇 켤레도 가지고 갑니다.

 불효자식을 용서해주십시오.-

 

집은 떠난 아들 검은숯은 산과 들을 넘고,

강 건너 바다 건너까지 두루 돌아다니며

유명한 현자들을 찾아가 그 답과 길을 구했다.

그러나 “이것이다!” 싶은 구원의 답은 나오지 않았다.

자기 목숨과 생애 전부를 걸어도 아깝지 않을 만큼

“이 길이다!” 싶은 참 길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죄다 “검은숯으로 세상에 왔으니 검은숯으로 살다가라”는

운명론의 범주나 언어유희 내지 지적유희에서 맴도는,

죽은 자들의 현학이나 도학 정도의 깨우침뿐이었다.

 

아들 검은숯이 구하고 찾고자하는 것은 길(道)에 대한

이론도 구름잡기식의 도학적(道學的) 유희도 아니었다.

길 자체를 찾고 싶었고, 그 길을 몸소 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검은숯의 가슴은 날이 갈수록 답답해지기만 했다.

공허한 구멍들이 뚫리면서 갈수록 허무해지기만 했다.

바람이나 구름잡기식의 지혜나 공동묘지에 묻힌 진리 정도는

우리집 바로 뒷산에도 많이 있다 싶었기 때문이었다.

 

길이 멀수록 짚신은 빨리 닳아졌다.

괴나리봇짐이 나그네의 멍에처럼 메워진 세월 속에서 노자도 거의 떨어져갔다. 설상가상이라더니, 검은숯은 험준한 산을 넘다가 중심을 잃고 미끄러지면서 높은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다리까지 부러지고 말았다. 검은숯에게 그것은 방랑길 여정에서의 최종적 절망을 의미했지만, 사람들은 외려 거기서 떨어져 죽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자 하늘의 도움이라고 말했다.

검은숯은 더 이상 돌아다니고 싶어도 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방향을 돌려 절뚝거리는 상거지 행색으로 집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때론 굶기도 하고 때론 노숙도 하며 걷기를 며칠.

마침내 고향마을이 눈앞에 들어왔다. 아들 검은숯은 차마 낮에 집에 들어가기가 부끄럽다 싶었다. 그래서 산마루에서 지체하다가 한밤중에 찾아들어갔다.

한밤중인데도 대문은 열려 있었다. 아들 검은숯의 방에는 등잔불까지 켜져 있었다. 검은숯은 도둑고양이처럼 살며시 방으로 들어갔다. 방은 따뜻했다. 아버지 검은숯이 여느 때처럼 아궁이에 불을 지펴놓았기 때문이었다.

 

이튿날 아침.

방문 밖에서 기침소리가 났다. 아버지 검은숯이었다.

아들 검은숯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버지 검은숯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아무런 말도 없이 아들의 두 손만을 마주 잡은 채 지긋이 힘을 주었다. 그렇게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아버지가 나직하게 그러나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어때? 방랑생활 할 만하더냐?”

아들 검은숯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아버지 검은숯이 다시 물었다.

“그래, 찾고자 했던 ‘나‘는 찾았느냐?”

아들 검은숯은 여전히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 애비가 검은숯이기에 검은숯인 너를 낳았으니,

 너를 그렇게 방황하게 만든 원죄(原罪)는 이 애비에게 있는 것이다.

 이 애비를 용서해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잠시 침묵만 흘렀다.

이윽고 아버지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렇다고 우리가 ‘추한 검은숯’으로 일생을 살아야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니란다. 물론 우리가 자기를 고집하고 자기 안에 갇혀버린다면 우리는 추하고 더럽고 시꺼먼 일개 검은숯일 뿐이지. 그러나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고’ 타는 불속 곧 살아있는 불속 그 안에 들어가면 우리는 불덩어리와 한 몸이 되어 우리 자신조차도 살아있는 한 덩어리의 뜨거운 불이 되고 찬란한 빛이 될 수도 있단다.

그처럼 미천한 우리도 ‘자기를 부인하고’ 우리 인류 역사에서 죽은 자들 중에서 유일하게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復活)하심으로써 창조주 하나님의 유일한 아들이심이 증명된 예수 그리스도의 품속 그 안에 들어가면, 우리도 ‘하나님의 형상’ 곧  ‘참 신의 형상’이 되고 ‘참 인간’이 되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단다. 영원히 살 수 있는 생명이자 존재가 될 수 있다는 말이지.”

 

순간 아들 검은숯은 “이 길이다!” 싶어

주먹으로 자기 다리를 힘껏 쥐어박았다.

그리고 제물에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다.

다리가 부러진 것도 잊은 채 그 다리를 쥐어박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아들 검은숯은 기뻤다. 진실로 기뻤다.

자기가 그토록 구하고 찾던 참 답과 참 길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 참 답, 참 길이 바로 우리집 안에 있었군요!

 바로 제 안에 있었군요! 그걸 진작 가르쳐주시지 않고

 왜 이제야 가르쳐주시는 거예요?”

 

차라리 고깝다싶어 하는 아들의 그런 원성에

아버지 검은숯은 비로소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이 답 이 길은 인간 자기의 노력이나 세상의 삶에 대한 허무함을 뼈가 부러지도록,

 피를 토하도록, 직접 절감해 본 자들에게만 진실로 보이고 들려지는 하늘의 비밀이기 때문이지.

 인간 자기의 타락한 정체성 곧 시꺼먼 죄악성이나 무력한 연약함 그 모순 그 한계에 치열한 절망,

 거룩한 절망을 해본 자들에게만 보이고 들려지고 주어지는 영성(靈性)의 비밀이자

 거듭나는 참 생명의 비밀이기 때문이지.

 이제는 열린, 너의 보는 눈과 들을 귀에 하늘의 복이 있을 지어다!”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