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콩나물 백서(白書)

이형선 2016. 8. 15. 08:28



세상엔 사람도 많고

시장엔 콩도 많지만

그래도 삶은 하나랍니다.

삶다운 삶은 하나랍니다.

하늘도 땅도

하나인 것처럼.

 


하 많은 콩 중에서

지지리 못났다고

지지리 천하다고,

사람들은 날

메주콩이라고 부르지만

너무 박대하진 마세요.

 


콩이라고 다

나물이 되는 줄 아세요.

아녜요 진실로 아녜요.

맵시 있는 강낭콩이 잘 났다지만

그게 나물이 될 수 있는 건 아녜요.

녹두나 검은콩이 건강에 좋다지만

그게 당신 밥상에 오를 수 있는

나물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녜요.

타는 당신 속

시원하게 풀어줄

나물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라고요.

 


암담한 사면초가에 갇혀

물 먹어본 적 있으시죠.

세상이 온통 캄캄하고

별똥만 오락가락하던 때 있으시죠.

그건 약과예요.

운명의 틀에 덜컥 갇힌 채

두 시간에 한 번씩

온몸에 물먹기를

무려 열흘하고도 이틀.

처음엔 퉁퉁 부어

비명도 많이 질렀지요.

살려달라고

살게 해달라고

애원도 많이 했어요.

한 많은 세상을

비관도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럴수록 더 물만 먹이더라고요.

 


그날 이후,

내 아집은 죽었지요.

하얗게 죽었지요.

온몸을 주인의 뜻에

다 맡겨버렸어요.

죽은 자는 말이 없잖아요.

주는 물 그대로

퍼붓는 물 그대로

먹고 마시기만 했지요.

그랬더니 글쎄, 보세요.

나도 모르는 새에

내가 변해 있더라고요.

 


이제는 나도 알지요.

그래서 감히 말씀하지요.

한 알의 콩이 죽어야

콩나물이 된다는 것을.

한 알의 콩도

물과 주인의 뜻으로

거듭나야만,

섬김의 그릇에

들어갈 수 있고

사람의 밥상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요한복음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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