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을 품고
기도하고 있는가.
땅을 품고
사색하고 있는가.
십자가에 못박힌
성자처럼,
한계를 인식한
철인처럼,
고개 숙인 삶.
한해살이풀은
이미 아니다.
이제는 양식이어라.
이제는 생명이어라.
황금들판은
목하
너희들의 세상이지만,
선지자처럼
추수의 때를 미리 알고
이미 고개 숙인 너는,
목이 굳은 세상에서
다투지 않는다.
그것을 본받아
저 허수아비처럼
행세하지도 않는다.
육의 양식도
영의 양식도,
입맛에 맞도록
이미 다원화되고
이미 서구화되어,
스스로 배부르고
스스로 자귀 난 것을
자랑하는 세상에서,
가난한 진리보다는
배부른 진미와 별식을,
동맥이 경화되도록
구하고 찾는 세상에서,
네 값어치가 날로 하락해도
너는 낙심하지 않는다.
거기 연연하지도 않는다.
성자처럼
철인처럼
조용히
네 몫의 길을 갈뿐.
고개 숙이는 삶을
다 배우지만
배운다고 다
고개 숙이는 것은 아니다.
고개 숙이는 삶을
다 작심하지만
작심한다고 다
고개 숙이는 것도 아니다.
오호라,
바람만 일면
세상을 향해
제멋대로 나부끼던
네 고개여.
너도 네 고개를
어찌할 순 없었다.
선택의 여지조차 없는
네 옹색한 입지에서
여름 내내
그 땡볕 그 불세례를
온몸에 받으면서
너는 거듭나기 시작했다.
낟알이 여물면서
너는 그만큼씩
고개 숙일 수 있었다.
속 알의 크기
속 알의 무게가
너를 그만큼씩
고개 숙이게 해주었다.
쾌재라,
고백이 있는 삶.
존재가 낳은 삶.
너의 너 된 것은
과연 ‘하나님의 은혜’였다.
가을 들녘엔
이제 소슬바람이 부는데,
고개 숙인 벼 앞에서,
해마다 보여주는
신의 자연계시 앞에서,
인생 우리는 왜,
우리의 추수 때는
분별하지 못하는 것일까.
고백이 있는 열매,
존재가 낳은 인덕(仁德)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일까.
여전히
고개 숙이지 못한 채
내로라 행세하며
탐욕 싸움을 일삼는
인생들의 가을.
여전히
목이 굳은 채
교만을 먹고 마시며
패권과 패역을 일삼는
세상의 가을.
속이 빈
그래서
되레 목이 굳은
우리의 가을은
그래서
더욱 슬픈 역설이려니.
그래서
더욱 어지러운 세상이려니.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선지자 모세, 신명기8:)
*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사도 바울, 고린도전서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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