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호박'이 지금 슬퍼하는 것은

이형선 2016. 10. 10. 09:50



마음이 익어야 

가을이 되고,

영혼이 익어야

참 사랑이 되는가.

호박도

아름답게 보인다는,

하나님이

지으셨기에

아름답게 보인다는,

가을 산등성이에선

햇살도

일부러 미끄러져

한참을

뒹굴다 간다.

머물고 싶은

미련이

하 질긴 때문이려니.

잡아두고 싶은

추억이

하 많은 때문이려니.

그래서

풍경은

오늘의 그림이 되고,

내일의 그리움이 되는 것.

 


호박이라고

그림 없고

그리움 없으랴만,

구수한 된장국 되면

족할 수 있는 내가,

한 접시

섬김의 나물 되면

족할 수 있는 내가,

지금 슬퍼하는 것은

못생겼다는

내 모습 때문이 아니다.

잘생겼다는

누군가를

시샘하기 때문도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야산 등성이에서

넝쿨째 한사코 헤매는 것은

흥부네 박이 부러워서가 아니다.

저 높은 정상에

오르고 싶어서도 아니다.

 


다만

그 옛날,

그 아늑한 날,

내가 개구쟁이처럼 타오르던

그 고향 그 여염집

그 초가 그 와가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구색이 담장이라지만

이웃의 키보다 되레 낮았던

그 흙담 그 돌담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그 담마저

보란 듯 타고 넘어

이웃과 넝쿨지면,

그나마 막힌

서로의 담마저

정담(情談)이 되고,

내가 그 담마저

보란 듯 타고 넘어

주렁주렁 열매 맺으면,

제비들이 쉬었다 가며

헤프게 지저귀던 곳.

이웃들이 내 얼굴처럼

함박 웃으며

호박떡

헤프게 나눠먹던 곳.

그 마음

그 마음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초가을에도

앞서,

덧없는 낙엽이 보이고

허무한 겨울이 보이는

이 야산 등성이에서

내가 지금 슬퍼하는 것은,

각종 제초제

가득한 이 땅에서,

이기적인

지극히 이기적인

농독(農毒)

농약(農藥)이란

이름으로

보약처럼 팔리고,

자기 몫의

십자가는 없는  

복독(福毒)이 

복음(福音)이란

이름으로

상품처럼 팔리는

오늘 이 땅에서,

내 고향

내 소시 적

저 순박한 마음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의 본향

우리의 천국

저 행복한 사랑자리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감이 익었다고

가을이더냐.

마음이 익어야

가을이지.

대박이 터졌다고

행복이더냐.

영혼이 터져야

행복이지.

배가 부를수록

욕심은 더 커지고

단절의 담은 높아지고

그래서

불화도 더 잦던 것을.

머리가 커질수록

야심은 더 커지고

아성의 담은 높아지고

그래서

쌈질도 더 잦던 것을



아서라.

아서라.

마음이 익어야

가을이 되고,

영혼이 익어야

참 사랑이 되는 것.

그래서

참 생명이 되는 것.

재물의 길도

어렵다지만,

마음의 길은

더 어려운 것.

성공의 길도

어렵다지만,

생명의 길은

더 어려운 것.

마음 잃으면

짐승 아니더냐.

생명 잃으면

시체 아니더냐.

제발 먼저,

가난해도

자족할 수 있는

참 마음이 되게 하라.

제발 먼저,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는

참 생명이 되게 하라.

그래야만

부유해질 때

이웃과

나눌 줄도 아는 것을!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누가복음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