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국가 전체를 개조할 기회'로 삼기 위하여

이형선 2016. 11. 14. 11:18



지난주(11)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240명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이 발표되었더군요.

보수진영이나 진보진영의 언론도 정치인도 아니고,

최순실의 딸특혜 입학 문제로 남달리 진통을 겪고 있는

대학교 교수들의 시국선언문인지라 보다 진정성이나

학자적 양심이 있겠다 싶어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시국선언문은 아래 세 가지 선언으로 집약되었더군요.

박근혜 대통령은 즉시 사퇴하라.’

국정 농단의 모든 관련자를 철저히 조사하여 엄벌하라.’

교육부는 대학 교육 정책을 전면 혁신하라.’

 


물론 저런 어젠다는 언론이나 정치권을 통해 사회적으로 이미 이슈화되어 있는 지경이니까 새삼스러울 건 없습니다. 해서 저는 그런 선언적 구호보다는 거기 담긴 이런 내용의 글이 더욱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집권 여당은 이런 비선 조직의 실체를 밝혀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지 못하고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들의 충복이 되어주었는가?

 야당은 왜 이런 위기의 순간에 정치적 손익을 먼저 계산하는가?

 청와대는 물론, 사법부, 입법부, 행정부 어디에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국민의 공복을 찾기 힘들다. 바로 그런 진정한 공복의 부재, 시스템의 미비, 부와 권력의

 끈끈한 유대가 최씨 일가의 농단이 가능했던 원인이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우리 국민이 이 위기를 몇몇 개인과 집단의 처벌에서 끝내지 않고

 국가 전체를 개조할 기회로 삼기를 간절히 바라며, 우리 또한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려 한다.-

 


그렇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합니다. 저도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국정을 농단한 비선 조직 일체에 대한 엄정한 수사와 그 죄상에 대한 응분의 처벌을 통해, 대한민국에 하나님의 공의사회정의가 살아있음을 또한 만천하에 입증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나아가 그래서 이 위기를 몇몇 개인과 집단의 처벌에서 끝내지 않고 국가 전체를 개조할 기회로 삼기를저 역시 간절히 바라는 마음입니다.

역대 대통령들 치하에서 항다반사처럼 자행된 그 모든 부정부패를 포함해서, 그런 비리나 불의나 탐욕의 가치관에 알게 모르게 연루되고 직접 간접으로 참여해 온 국민 우리 모두의 책임을 통감하고, ‘촛불처럼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를 태우는 회개를 통해 이 위기를 국가 전체를 개조할 기회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금은 정치적 내지 집단적 손익을 먼저 계산하고 그에 따라 선동적 구호나 포석을 일삼는 것보다는, 보다 이성적이고 대의적(大義的)이고 거국적(擧國的)인 시민의식이나 성숙한 양심이 필요한 때라고 사료됩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영국 정부를 이긴 것처럼, 저항이나 시국선언이나 시민의식 내지 사회정의의 구현은 평화적인 방법으로도 충분히 가능하니까요. 실인즉 조용히 그리고 도도하게 흐르는 강물의 힘을 이길 수 있는 권력도 없고 자연도 없습니다. 웅숭깊은 저 강물은 오늘의 각종 떡이나 재물이나 권력에 연연해서 거기 고여 썩은 물이 되지 아니하고, ‘바다의 세계에 열려 그 바다를 향해 늘 현재형으로 줄기차게 흐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저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아가 저 바다라는 비전의 세계를 성경적 언어로 풀자면 곧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직접 들어봅시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하나님) 그의 나라와

 그의 의(righteousness)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33)

 


바다의 세계에 가면 모든 것이 얼마나 풍성하고, 그 세계 또한 얼마나 크고 넓습니까. 바다에 사는 크고 작은 모든 고기는 금고도 창고도 없지만 굶어죽은 고기는 없습니다. 그렇듯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하나님이 세상살이에 필요한 의식주는 물론이고, 필요할 경우 재물도 정치권력도 더하여 주신다는 것입니다. 일개 목동이었던 다윗 왕에게 그런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날만 새면 곳곳에서 계속 터져 나오는 최순실 비리로 인해 한국사회 전체가 혼란의 늪에 빠져서 역시 주술에 걸린 것처럼 혼미를 앓고 있는 지금, 이 어지러운 시국의 해법을 서둘러 모색해야 할 정치 지도자들부터가 보다 이성적이자 거국적인 차원의 비전과 양심을 가질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사심 없는 대의적인 양심과 인격이 절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국가적으로 불행한 사건을 되레 차기대권이라는 정권 장악을 위한 포석이나 손익 계산의 기회로 역이용하며, ‘포퓰리즘이라는 대중적 인기영합주의에 편승해서 선동적인 막말이나 무익한 말들을 쏟아내는 모범(?)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서로 정적(政敵)들의 실패나 약점을 구시대처럼 맹렬하게 비판해야만 국민들에게 자기 정체성이나 선명성이 뚜렷하게 각인되는 것은 아니고, 지명도나 지지도가 높아지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지금은 군부독재시대도 아니고, 백성들이 무지무식한 시대도 아니니까요. 우리 국민들의 교육수준은 이미 세계적인 우위 아닙니까.

앞으로 다른 어느 정치지도자나 정당이 집권하면, 그땐 한국사회에 부정부패나 비리 같은 건 전혀 없는 지상낙원이 이루어질까요? 천만의 말씀이지요? 보수정당이 집권해도 저 모양이고, 진보정당이 집권했을 때도 부정부패나 비리가 만연해서 대통령의 아들이나 형이나 측근들이 굴비처럼 줄줄이 엮여서감옥에 갔었잖아요.

 


따라서 자기나 자기들만 의로운 지도자들인 것처럼 착각이나 오만에 빠져서, ‘독선의 말이나 무익한 말을 함부로 내뱉으면 되레 국민들의 역풍(逆風)을 맞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것이 민주공화국이라는 체제의 정치권력이란 최선이 없어서 차선을 선택한 경우이지, 그 자체가 절대의(絶對義)’ 내지 절대선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제 국민들도 다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절대의(絶對義)’ 내지 절대선이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역사의 심판두려운 줄 알고 겸손할 줄 알아야한다는 의미와도 통할 것입니다.  

따라서 정치 공황(?)’에 빠져 들끓는 군중심리에 편승하여 선동을 일삼는 것보다는 보다 유익한 말내지 () 있는 말로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안정시키는 차기지도자가 미래적으로 국민들에게 되레 평가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렇게 되길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국력도 무력하고 위정자들도 사심과 무능에 빠졌기에

망국의 한을 초래했던 구한말의 병폐를 통감하고, ‘시대의 촛불처럼 주창했던

도산(島山) 안창호 선생의 민족 개조론을 다시 들어봅시다.

 


-모든 것을 다 개조하여야 하겠소. 우리 교육과 종교도 개조해야 하겠소.

 우리 농업도 상업도 토목도 개조하여야 하겠소. ··· 심지어 강과 산까지 다 개조해야 하겠소.-

 


구정권에서는 저 말씀을 아전인수식으로 오용 내지 활용해서 자연의 세계인 ‘4대강까지 개조하던데 저 강과 산, 먼저 무능이나 사심이나 탐심이나 부정부패나 비리 등 근원이자 뿌리인 심령의 강과 산까지 개조해야 한다는 은유의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의 정국 혼란에서 보듯이 심령의 강과 산이 더럽고 거짓된 정권은 결국엔 사퇴나 탄핵까지도 자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도산 선생의 이런 말씀도 들어봅시다.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라. 꿈속에서라도 성실을 잃었거든 뼈저리게 뉘우쳐라.

 죽더라도 거짓이 있어서는 안 된다. 모든 일은 참되고 실속이 있도록 애써 실행하라.-

 


아울러 경제 공황의 늪에 빠진 미국을 구하고, 2차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미국 32대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취임연설 때 했던 명언도 다시 들어봅시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오직 두려움 그 자체일 뿐입니다.

  (The only thing we have to fear is fear itself.)-

 


루즈벨트가 저 유익한 말로 국민들을 진정시키고 안심시켰듯이, 오늘 우리 대한민국에서도 하나님의 지혜가 있는 그런 차기지도자가 어서 나타나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건 오직 공황(恐慌) 그 자체일 뿐입니다라고 일갈하며, 어지러운 시국을 멋지게 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한편,

4세기 곧 초기기독교 교부이자 대주교인

성 요한 크리소스톰(John Chrysostom).

그는 신학자이자 황금의 입이라고 불릴 만큼 말을 잘하는, 뛰어난 설교자였습니다. 그의 설교는 가히 암반을 뚫고 터져 나오는 샘물과 같다는 평판을 받고 있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설교 중에 청중이 무대의 배우에게 보내는 그런 식의 대중적 열광을 아주 싫어했는데, 청중에게 이렇게 설교한 적도 있습니다.

 


이 박수와 환호가 제게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제가 여러분에게 원하는 것은 딱 한 가지입니다. ··· 그것은

 여러분이 제 설교를 조용히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극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사회적 명망이 높은 크리소스톰이었지만 그러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기는 그 역시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럴 것이 150년 전에 죽은 오리게네스의 사상을 논제로 당시 에피파니우스와 서로 대립하며 변론을 벌이던 그 역시 의분을 참지 못해 무익한 말을 내뱉었고 그것이 결국엔 자기에 대한 심판의 말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물론 변론 중 격한 분노를 주체하지 못해 먼저 독설을 내뱉은 학자는 상대방인 에피파니우스입니다.

당신이 주교로써 죽지 못하길 바라오!”

크리소스톰도 질세라 응수합니다.

당신이 살아생전에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길 바라오!”

 


저 두 사제가 논쟁 중 내뱉은 저 무익한 말혹은 저주의 말은 그대로 자신들에게 주고받기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크리소스톰은 그 후 면직 당해 유배지에서 죽었고, 에피파니우스는 고향인 키프로스로 가던 도중에 객사했습니다.

 


-(예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던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태복음12:36~37)

 


그렇습니다.

말에는 힘이 있고 영향력이 있습니다. ‘선한 말에는 선한 힘이 있고 선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악한 말에는 악한 힘이 있고 악한 영향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목해 볼 것은, ‘선한 말이나 악한 말은 그것을 구별하기가 차라리 쉽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 무슨 무익한 말(every careless word)’은 차라리 모호하고 애매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무의식적이나 부지불식간에 예사롭게 내뱉을 수 있는 말들입니다. 문제는 그런 말도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맞아 개구리가 죽어버리는 것처럼, 우리가 무심코 던진 무익한 말지극히 작은 자누군가가 치명상을 입고 죽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선 그래서 인간 자기의 악한 행위악한 말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런 무익한 말조차 심판 날에,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고 분명하게 선포하신 것입니다. ’들을 귀있는 자들에게 하늘의 비밀을 미리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물론 그 심판 날은 내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금세에도 있습니다. 현재적 내지 역사적 심판도 있다는 것입니다.

 


과연 말(言語)에는 힘이 있습니다. 우리의 말이 자기 및 타인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를 화목케 할 수도 있고 불화케 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종이자 영적 지도자들인 주교나 목사들은 물론이고 정치지도자들을 위시한 사회 각계 지도자들일수록 특히 말조심해야 할, 악한 말은 물론이고 평화를 파괴하는 선동적인 말이나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성희롱 등 무익한 말조차 조심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정적(政敵)은 물론이고 몹쓸 죄인인 원수조차도 사사로운 내 감정이나 마음이 아닌 그리스도의 큰마음 안에서’, 회개하기를 종용하고 그래서 개조거듭남으로 인도할 수 있는 선한 말, 바른 말, 겸손한 말, 살리는 복음(福音)의 말을 해야 할 필연적 이유가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것이 자기와 이웃인 상대방, 나아가 그 사회 그 국가가 함께 복 받을 수 있는 하늘의 비밀이자 성경의 비밀이자 언어의 비밀이기 때문입니다. 각계 지도자내지 선생노블레스일수록 자기 행실은 물론이고 자기 말에 대한 책임오블리주도 그만큼 크고, 심판도 그만큼 크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 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사람이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야고보서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