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나라가
온통 혼란과 공황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확인되지 않은 별의별 소문이나 루머들이
항간에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말조심하며,
무책임한 말을 삼가는 것이 되레
나라를 위한 지혜이자 미덕일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박정희 유신정권’ 시절이 아닌,
‘신군부’ 시절의 ‘실세’로써 당시
‘최태민과 박근혜와의 관계’를 조사했다는
허화평 전 의원이 최근 모 종편 TV에 출연해서 그
관계에 관해 언급했다는 기사를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물론 허 전 의원도 정치적 색깔이 강한 사람이니까
그의 언급에 감정이나 정파성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사실(fact)에 가깝겠다 싶었기 때문입니다.
허 전 의원은 최순실의 아버지인 최태민이 ‘영애 박근혜’에게 접근해서 급속도로 친밀한 관계가 된 계기는 이른바 ‘현몽 편지’ 때문인 것은 사실이라고 증언했더군요.
그 ‘현몽’의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육영수 여사’가 ‘최태민’의 꿈에 나타나 “어머니는 죽은 게 아니라 너의 시대를 열어주기 위해 길을 비켜주었다. 네가 왜 모르느냐. 너를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로 키우기 위해 자리만 옮겼을 뿐이다. 어머니 목소리가 듣고 싶을 때 최태민을 통하면 항상 들을 수 있을 것이다”라면서, “이런 뜻을 딸에게 전해달라”고 말했다는 것.
그런 내용의 편지를 받아본 ‘영애 박근혜’가 최태민을 청와대로 불렀고, 최태민과 3시간이 넘는 대화 끝에 두 사람은 서로 각별한 관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허 전 의원은 최 씨와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에 대해 "박 대통령이 최태민의 사기성 있는 주술에 포로가 된 것"이고 "박 대통령도 (한국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고자 하는) 권력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넘어간 것"이라고 나름대로의 소견을 밝혔더군요.
물론 저 ‘현몽’의 진위 여부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사자인 최태민도 이미 죽었으니까요. 그러나 최태민의 사기성 치부 과정이나 여자들과의 복잡한 성적 관계는 ‘1979년, 중앙정보부 보고서’인 ‘최태민 비리 자료’가 공표되면서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그런 사람의 말을 믿을 수도 없거니와, 아들이나 형들이 부정부패에 연루되어 감옥에 갔던 전직 대통령들의 비리보다 우리를 국제적으로 더 부끄럽게 하는 오늘의 사태를 정작 예견한 ‘어머니 육영수 여사’라면 현몽을 통해서라도 되레 ‘최태민을 조심해라. 차라리 대통령이 되려는 욕심을 버려라’라고 신신당부했을 터이니까요. 그럴 것이 외신들조차도 ‘최태민은 한국의 라스푸틴’(워싱턴포스트), 그의 딸 ‘최순실은 무속인‘(뉴욕타임즈)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니까요.
‘라스푸틴’은 ‘신기한 능력’을 받은 러시아의 ‘수도자’이자 ‘성자’로까지 불리던 사람으로, 당시 불치병인 러시아 황태자의 혈우병을 치료해줌으로써 황후의 전폭적 신임을 얻게 된 이후 교만해지면서 타락의 길을 걷습니다. 러시아 왕실을 배후에서 좌지우지하며 각종 비리와 여색을 일삼는 등 나라를 온통 어지럽히는 국정농단을 자행하다가 끝내 암살당하고만 인물입니다.
최태민도 이단이나 사이비 교주들이 대개 그렇듯이 나름대로 신령한 어떤 은사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불교와 천주교와 개신교, 천도교, 무속종교 등을 혼합하여 만든 ‘영세교(永世敎)’의 교주입니다. 역시 이단이자 사이비종교인, 조희성 교주의 ‘영생교(永生敎)와는 또 다른 종교입니다. ’영세교‘는 최태민이 스스로 ’대전일보‘에 냈던 작은 박스광고 문안 그대로, ‘불교의 깨달음’과 ‘기독교의 성령’, ‘천도교의 인내천(人乃天)’ 교리 등을 혼합시켜 만든 종교(?)입니다.
‘중앙정보부의 보고서’에 의하면, 최태민은 그 후 ‘영세교’라는 이름을 숨기고, ‘대한구국선교단’이나 ‘한마음봉사단’이라는 전국조직을 형성하여 명예총재 내지 총재였던 ‘영애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 세력을 키워나갔더군요. 그리고 그런 조직 활동을 위해 사회적신분이 필요했던 그는 ‘75년 4월’에 사이비 교파인 ‘예장종합총회장’으로부터 ‘목사 안수’를 받습니다만, 그는 물론 정통 계열의 기독교 ‘목사’도 아니고, 그리스도인도 아닙니다. ‘인내천(人乃天)’ 곧 ‘깨달음을 얻은 사람이 신이다’는, ‘내가 곧 신이다’는, ‘영세교 교주’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런 무속적 혼합종교의 정체성에 있어서, 그 후임자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저 최순실인 것 같습니다.
각설하고,
저는 ‘최순실 게이트’의 사건 추이를 지켜보면서, 그녀와 한통속이 되어 ‘대한민국을 가지고 놀았던’ 무리들의 행태에 관한 뉴스를 지켜보면서, 왠지 20세기 루마니아 태생의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ene Ionesco)가 쓴 〈코뿔소〉라는 작품이 절로 떠올랐습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의 유럽사회에는 나치즘이라는 특정 국가의 권력이나 전쟁이라는 무자비한 폭력에 의해 파괴되어버린 인간성이나, 공황 상태에 깊이 빠진 인간의 심리를 풍자하는 이른바 ‘부조리(不條理) 연극’이라는 문학 장르가 있었습니다.
그 대표적 작품이 곧 〈코뿔소〉인데, 평화롭던 마을에 어느 날 ‘코뿔소’가 한 마리 나타나 날뛰기 시작합니다. 물론 저 ‘코뿔소’는 당대의 나치즘이나 전체주의를 의미하는 작가의 은유이자 풍자입니다만, 오늘 우리가 앓고 있는 ‘최순실 게이트’의 경우에선 최순실과 그녀와 한통속이 되어 배후에서 날뛴 무리들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무속인의 귀기(鬼氣)나 무당기나 최면에 사로잡힌 하수인들처럼, 권력이나 그 배경을 팔아 사리사욕을 채우는 하수인들처럼, 비선에서 국정농단을 일삼으며 암암리에 설쳐댄 ‘코뿔소’들 말입니다.
여하간 ‘코뿔소’가 제 세상을 만난 듯 날뛰자 이상한 것은 마을에서 ‘짐승’이 설쳐대는 그런 세태가 비정상이자 부조리이자 비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마을사람들은 그런 위세를 되레 부러워하며 그것에 동화되어 스스로 ‘코뿔소’들이 되어간다는 것입니다. 날이 갈수록 가면을 쓰고 코뿔소로 변신하는 무리들이 늘어나고 그래서 결국엔 ‘마을’이라는 그 사회 전체가 ‘개판’ 아니 ‘코뿔소판’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인간성을 상실하고, 코뿔소들이 설쳐대는 동물들의 사회가 되고만 것입니다.
주인공 베렝제는 그런 코뿔소들과 끝까지 싸우겠다고 총을 들지만 그런 개인의 양심이자 정의 선언은 시대의 나치즘이나 거기 동화되어가는 군중심리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차라리 초라하도록 무력할 뿐입니다.
한편,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인 저로써, 저는 이렇게 자문해보았습니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를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강조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정녕 무엇일까? 나아가 다원주의나 혼합주의 등 영적 혼돈과 혼란을 야기하는, 인간 중심의 ‘포스트모더니즘’이 ‘코뿔소’처럼 날뛰는 오늘 우리 세대를 향해 ‘역사의 참 주인이신 하나님’이 강조하시고자 하는 말씀은 무엇일까?
그 말씀은 한마디로, 저 ‘영세교 교주’ 최태민과 그 딸 최순실의 ‘열매’에 의해 증명된, 인간의 영혼을 미혹으로 인도하는 무속종교 내지 사이비종교 내지 이단종교 등의 ‘거짓선지자들’을 조심하라는 준엄한 경고 아닐까요?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wolves)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마태복음7:15~16)
물론 ‘거짓선지자들’은 이른바 ‘정통’이라는 한국교회 안에도 많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이름을 팔아서’ 아니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세상 재물이나 색욕 등을 탐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거짓선지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따라서 “거짓선지자들을 삼가라”는 저 말씀이자 “거짓지도자들을 삼가라”는 저 말씀은 우리 모두가 가슴을 찢고 회개하며 겸손하게 받아야 할, 하나님의 준엄한 시대적 경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실상인즉 우리 모두는 생리적으로 돈이나 권력이나 색욕 앞에 약합니다. 소비성 광고 앞에서도 금세 세뇌되거나 최면에 걸릴 정도로 약합니다. 또한 ‘간음한 여인’을 향해 돌 던지는 마녀사냥 식 군중심리 앞에서도 역시 약합니다. 그래서 늘 쉽게 거기 동화됩니다. 한통속의 ‘코뿔소’가 됩니다.
‘종교’는 칼 마르크스나 유물론자들의 비판처럼 정말 ‘민중의 아편’일 뿐일까요? 아닙니다! 참 종교는, 참 기독교는, ‘세상의 소금’이자 ‘세상의 빛’입니다. ‘생수의 강’입니다. 자기를 희생하며 섬기는 ‘십자가’이자 시대 양심의 보루입니다. 또한 그렇게 ‘열매’를 통해 ‘구별’ 내지 ‘성별(聖別)’ 되어야만 합니다. 또한 ‘그들의 열매’를 보고 그것을 분별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어야만 합니다. 그것이 신학적으로 ‘거룩하다(⁕하기아조)’의 의미입니다.
따라서 ‘정통’이나 ‘사이비’나 ‘이단’을 막론하고, 사람을 이기적인 탐욕이나 정욕 같은 사리사욕, ‘영적 분별력’을 마비시키는 주술이나 미혹이나 최면으로 인도하는 종교는 다 ‘아편’입니다. 그런 ‘종교지도자’ 곧 ‘무속인’이나 ‘거짓 선지자들’일수록 그 ‘열매’는 신(神)이나 신령(神靈)의 이름을 팔아서 자기의 재물이나 여자들을 탐하고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마련입니다.
정녕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저 말씀 그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압니다.” 따라서 ‘열매’가 나타날 때까지 조심스럽게 인내하며 지켜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타난 ‘열매’를 보고 확실하게 ‘구별, 분별’하는 것은 더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결단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 ‘이리’나 ‘코뿔소’를 보고 더 이상 ‘양’이나 ‘사슴’이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 주술이나 그릇된 교리나 사사로운 인연이나 혈연에 사로잡혀 ‘거짓선지자들’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증언하는 영(靈)의 세계에는, ‘하나님의 영’ 곧 성령(聖靈)의 세계도 있지만 미혹의 영이나 거짓 영 같은 악령(惡靈)의 세계도 분명히 있습니다. 신비주의에 빠져 산(山)기도 많이 해서 ‘신통한 능력을 받았다’는 사람일수록 악령에 사로잡힌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열매’는 필연적으로 성경 말씀에서 빗나갑니다. 그래서 그 결국의 ‘열매’는 공동체의 불행과 재앙과 혼란으로 끝납니다.
‘진리의 성령’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으로 인도합니다.(⁕요한복음16:13~14) ‘성령’과 ‘그리스도의 말씀’은 공존합니다. 그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진리의 말씀’에서 빗나간 ‘성령’은 성령이 아닙니다. ‘악령’입니다. ‘악령’ 곧 ‘귀신’에게 사로잡힌 사람일수록 영적 교만에 빠져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신이다’ 운운하며, ‘자기’가 ‘자기 말씀’으로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세기3:5) 미혹의 길을 주창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살아계신 창조주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사람은 도통하고 신통해봤자 한계를 살다가는 허무한 인생일 뿐입니다.
제가 보기엔 저 ‘거짓선지자’ 최태민에게도 나름대로 분명히 어떤 ‘영적 능력’은 있었습니다. 그래서 70년대에 ‘현몽’ 운운하며 고 육영수 여사의 이름으로 ‘영애 박근혜’에게 접근했고, 당신은 ‘한국 대통령, 나아가 아시아의 지도자’가 될 것이라고 나름대로 예언을 했겠지요. 과연 그의 ‘현몽’ 내지 예언대로 ‘영애 박근혜’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최태민이나 최순실에 대한 신뢰는, 무당이나 점쟁이에 대한 영험함을 익히 체험한 정치인들이나 일반인들의 음성적인 추종관계 그것처럼 도저히 분리 내지 분별할 수 없도록 얽혀져버린 것이겠지요.
총선이나 대선 등 선거철만 되면 한다하는 소위 ‘정치지도자’란 사람들부터가 신통하고 영험하다는 점쟁이를 찾아가 운세를 묻거나, 그의 말을 듣고 당선을 위해 조상 묘소를 ‘명당’으로 이장하는 등의 사례나 모범(?)은 우리 정치 풍토에서 항다반사 아니었습니까? 그와 같은 경우이지요.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 둘 것은, 용하다는 무당이나 점쟁이들도 자기 굿은 할 줄 모르고, 자기 죽을 날은 모른다는 그것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악령’ 곧 ‘마귀’는 하수인인 무당이나 점쟁이들은 물론이고
‘영애 박근혜’나 ‘대선주자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렇게 미혹 및 유혹하고 있습니다.
-마귀(devil)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세상 임금이나 대통령이 되게 해준다는데, 저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하지 않을 사람이 누구 있을까요? ‘속물근성’이 다분한 저도 저런 자리에 서면 거기 엎드려 경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나 ‘거짓선지자들’에 의해 보이고 얻어진 ‘천하만국과 그 영광’의 결국은 자기에게도 천하만국에게도 불행합니다. 그 결국의 ‘열매’는 재앙과 혼란이 된다는 것. ‘근시적 영광’은 예언할 줄 알면서 ‘원시적 재앙’을 예언할 모르는 ‘신령한 자’는 죄다 ‘점쟁이’이거나 ‘거짓선지자’일 뿐입니다. 그것을 익히 아시고 ‘분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말씀’ 곧 ‘계시된 진리’로 마귀의 ‘화려한 유혹’을 단호하게 물리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4:10)
우리 대한민국의 박근혜 대통령도 ‘사이비 교주’인 최태민이나 최순실과 그 ‘말씀’이 아닌, 역사적으로도 ‘ 참 진리’임이 입증된 예수 그리스도와 그 말씀을 본받고, ‘그리스도의 마음’ 곧 ‘온유하고 겸손한 마음’이자 ‘비움과 낮아짐의 마음’을 본받으며 살았더라면 개인적으로도 국가적으로도 훨씬 더 행복했을 텐데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 깊어집니다.
악령에 잡힐수록 영적 교만 같은 독선(獨善)에 빠지고 그래서 불통(不通)의 인격이 됩니다. 성령에 충만해질수록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인격이 됩니다. 심지어 ‘원수’조차도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 ‘소통(疏通)의 인격’이자 ‘큰마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하는 사람만이 ’충신‘이 아닙니다. ’사랑‘도 아닙니다. 때론 “아니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레 ’참 충신‘이자 ’사랑‘일 수 있습니다. 가장 불행한 사람은 “아니오”라고 조용히 말해주는 충신이나 친구가 없는 사람입니다. 참고로, 저의 ‘친구’이기도 한 예수 그리스도는 제가 말이나 행실을 잘못하면 기도나 묵상을 할 때 늘 조용히 “아니다”라고 말씀해주시는 분입니다.
따라서 ‘최순실 게이트’라는 이 사건을 통해서도, 대한민국 국민 우리 모두의 책임일 수도 있는 이 ‘국가적인 수치’를 통해서도, ‘살아계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분명히 있으실 것입니다. 그 말씀이 무엇인가를, 보다 겸허한 ‘들을 귀’로 들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래서 최태민이나 최순실 같은 부류의 무속적 ‘코뿔소’들이나, 권력이나 재물을 탐욕적으로 추종하는 속물적 ‘코뿔소’들이나, 남의 실족이나 불행을 빌미삼아 보복적 내지 이해 타산적 내지 정략적 비방이나 매도나 무책임한 루머를 일삼는 군중심리적 ‘코뿔소’들 등 각종 ‘코뿔소’들이 더 이상 날뛰며 설쳐대지 않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사회이자 보다 성숙하고 선진화된 사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합니다.
그럴 것이 너와 나, 여당과 야당,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가죽이 두꺼운 ‘코뿔소’는 무신경한 동물입니다. 시력도 약합니다. ‘근시의 세계’만 볼 수 있을 뿐 ‘원시의 세계’는 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단한 그 뿔’로 남들을 일방적 내지 이기적으로 들이받을 줄만 알았지, 이웃들의 입장을 배려할 줄은 전혀 모릅니다. 물론 그래서 당장엔 내로라 설쳐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의 결국은 비참하도록 허무합니다. 자기 ‘뿔’을 앞세우고 위세당당 천길 벼랑을 향해 돌진하다가 결국엔 제풀에 낭떠러지에서 떨어져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속물근성’에서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는, 저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회개해야 할 ‘숙명적 이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나(⁕예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마태복음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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