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11월의 산에서

이형선 2016. 11. 21. 10:04



11월의 산이

탈모증을 앓으면

겨울이 오는가.

겨울이 오면

11월의 산도

탈모증을 앓는가.

머리가 휑하다.

비움의 공간이려니.

내려놓음의 시간이려니.

 


어제였던가.

그제였던가.

무성했던 봄날의

그 꿈 그 비전.

뜨거웠던 여름날의

그 숲 그 공존.

무르익던 가을날의

그 풍경 그 채색.

 


이제는

보이는 것들

다 내주고,

보이지 않는

존재로

돌아가는 산.

명년의 부활을

기약하며

생명이 있는

거기,

뿌리로

돌아가는 산.

겉세계는

빙산의

일각이었어라.

속세계가

더 큰 산.

 


누구에게

배웠을까.

한 세상은

열두 달.

12월이

오기 전에

비워야

산다는 것을.

누가

가르쳐줬을까.

한 생애는

사 계절.

겨울이

오기 전에

잘 죽어야

잘 산다는 것을.

 


지금

바람에

흔들리는 건

산의 수염이 아니다.

한 세상

산에

함께 살았어도

여전히

산을 모르는,

억새의

허연 수염일 뿐.

 


지금

무서리에

떨고 있는 건

산의 풍경도 아니다.

한 세상

산에

함께 살았어도

여전히

산의 마음도

산의 비밀도

모르는,

억새 같은

인생

내 풍경일 뿐.

 

 

  

   *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