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오멜의 영성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은 사람들

이형선 2019. 1. 7.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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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이 마지막으로 대답하였다.

 

앞으로 나는 순종하는 것만이 최선이며,

 유일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랑하고,

 그의 면전에 있는 것처럼 걷고, 언제나 그의

 섭리를 지키며, 모든 피조물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항상 선으로 악을 정복하고,

 작은 일로써 큰일을 성취하고, 약하게 보이는

 것으로써 세상의 강한 것을 물리치고,

 소박한 유순(柔順)으로 세속적인 지혜를 무너뜨리고,

 또한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견디는 일이 최고의

 승리로 가는 용기이며, 신앙을 가진 자에게는

 죽음이 생명으로 통하는 문임을 배웠습니다.

 나는 이제 영원히 축복받은 나의 구속자로 인식한

 성자(聖子)의 모범을 통하여 이것을 배웠습니다.”

 

 이에 대하여 천사도 역시 마지막으로 대답하였다.

 

이것을 배운 그대는 이제 최고의 지혜를 터득하였다.

 더 이상 높은 것을 바라지 마라. 그대가 비록 모든 별들의

 이름을 다 알고, 모든 천사들과 온갖 영원한 비밀과 온갖

 자연의 현상, 다시 말해서 하늘과 공중과 땅과 바다에 있는

 하나님의 역사(役事)를 알고, 이 세상의 모든 부와 모든

 지배권 즉 대제국을 수중에 넣는다 하더라도 소용없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대의 지혜에 부합하는 행위를 더하며,

 신앙을 더하며, 미덕과 인내와 절제를 더하며, 그 위에 자비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일의 영혼이 되는 사랑을 더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이 낙원(에덴)에서 떠나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속에 낙원을,

 훨씬 더 행복한 낙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존 밀턴의 실락원에서(12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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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지하다시피, 17세기 영국의 대문호인

존 밀턴의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14세기 시인 단테의 대서사시인 신곡(神曲)’

비견되는 불후의 명작이자 문학의 고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천사들의 영적 세계를

성경에 근거해서 인격적으로 묘사한 실낙원12

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인즉 대략 이렇습니다.

 


천국에서 살고 있는 피조물이자 영적 존재인 천사들 중 가장 높은 위치에 있던 사탄(satan)’은 하나님이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를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앉힌다는 소식을 듣고 분노합니다. 스스로 교만해져서 자기가 하나님처럼 행세하고 있었다는 반증이겠지요.

해서 사탄은 그 이름의 의미처럼 대적자가 됩니다. 자기를 추종하는 타락한 천사들’(유다서1:6)이자 악한 천사들을 이끌고 되레 하나님께 대적 및 반역하는 영적 전쟁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시기 전부터 선재(先在)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미카엘과 가브리엘 등 선한 천사들에게 패배당하고, 사탄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대로 천국에서 쫓겨나 지옥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지옥 불바다 속에서 아홉 날을 보낸 후 깨어난 사탄은 이를 갈며 하나님에 대한 복수를 획책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을 대적해 더 이상 맞설 수도 없고, 그래서 택한 묘책이 곧 하나님이 창조하신 새로운 세계인 지구촌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대로창조된 아담과 하와를 유혹 및 타락시켜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외려 자기의 사람이자 자기의 종이 되도록 만들자는 그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 지옥을 탈출해서 하늘과 땅 사이의 혼돈과 공허를 이기고 마침내 에덴에 당도한 사탄은,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세기2:17)고 금하셨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도록 끈질기게 미혹 및 유혹합니다. “네가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그래서 성경의 기록처럼, 하와와 아담은 마침내 사탄의 말씀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맙니다. ‘선악과를 따먹어버린 것. 과연 악령도 사람도 스스로 교만해지면 제 분수를 잃어버립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탄은 승리를 자축하며 득의만만해하지만, 그것에 분노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졸지에 교활한 의 형상으로 추락하고 맙니다. 그래서 또한 아담과 하와 역시 낙원에서 쫓겨나고 맙니다. 본래적인 하나님의 영성과 형상을 잃고, 타락한 비본래적 형상인 죄인이 되고만 것. 죄악과 고난과 죽음으로 점철되는 실낙원(失樂園)의 운명이 되고만 것입니다.

 


사탄이자 은 저 인류의 조상은 물론이고 그 후손인 인간 우리 모두를 자기의 종으로 만들려고 오늘도 집요하게 미혹 및 유혹하고 있습니다. ‘영적 전쟁을 계속 자행하고 있다는 것. 사탄이 오늘도 여전하게 세상에서 인생 우리를 미혹하는 대장 마귀이고, 그를 따르는 부하들인 악한 영들이 곧 귀신들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경에 나타난 영적 세계의 문학적 내지 인격적 표현이자 악령(惡靈)들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 상단의 발췌문은, 아담이 그들의 가정이자 에덴동산이라는 세계가 낙원으로 낙원 되도록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되레 불순종하고, 사탄의 하수인이 되어 금기의 선악과를 따먹은 후 그 낙원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된 마지막 자리에서 토로하는 회한의 고백인 것입니다. 치명적 실수 내지 실패를 통해 뒤늦게나마 뼈저리도록 깨닫고 배운 신앙고백인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베드로전서5:8~9)

  


그렇습니다. 정작 인생 우리의 실존적 숙제이자 이슈는 바로 거기 있습니다. 정치적 이념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나 재물에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 악령(惡靈)인 저 대적 마귀곧 사탄이 오늘도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는 거기 있다는 것입니다.

실인즉 오늘을 사는 우리 역시 하나님과 이웃을 겸손하게 섬기기보다는 늘 남들 윗자리에 앉아서 되레 하나님처럼 주인처럼 지배자처럼 군림하고 행세하려는 교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탄의 성품이자 타락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영적 민감성과 분별력을 가지고 근신하고, 깨어있어야 할 절대이유가 과연 거기 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현재적 낙원그리스도 안에 있는 천국이자 심령의 천국에서 쫓겨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존 밀턴이 저 천사의 마지막 대답을 통해 마지막 결어로 마음속에 낙원을, 훨씬 더 행복한 낙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미래적 소망을 기원 및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의 의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 우리가 탕자(蕩子)’처럼 타락해서 과거적 에덴은 잃었더라도 미래적 소망은 있다는 것입니다.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에게구원의 은혜를 주시고 나아가 마음속에 더 행복한 낙원을 주시는하나님의 은혜는 오늘도 사탄의 미혹 그 이상으로 역사 및 섭리되고 있으니까요.

 


-이 세상의 모든 부와 모든 지배권 즉 대제국을

 수중에 넣는다 하더라도 소용없다. 필요한 것은

 오로지 그대의 지혜에 부합하는 행위를 더하며,

 신앙을 더하며, 미덕과 인내와 절제를 더하며,

 그 위에 자비의 이름으로 불리는 다른 모든 일의

 영혼이 되는 사랑을 더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이 낙원(에덴)에서 떠나기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의 마음속에 낙원을,

 훨씬 더 행복한 낙원을 가지게 될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히브리어 에덴(eden)’은 보통명사로 기쁨, 행복과 즐거움(福樂)’을 의미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살던 동산이 곧 그것의 고유명사가 된 에덴(Eden)’입니다. 따라서 에덴동산(창세기2:8)’기쁨의 동산이자 행복과 즐거움의 동산입니다. 한마디로 낙원(paradise)’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 우리는 눈에 보이는낙원을 우리 조상들의 타락과 죄악으로 인해 잃어버렸다고 성경은 말씀 및 증언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진정한 기쁨이나 행복이나 낙원에 대한 이해 및 추구를 실낙원(失樂園)’, 거기서 시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경 핵심의 이해를 위해서 아울러 인간 존재의 부조리한 정체성 이해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근원적 의미를 가집니다. '허구'니 '신화'니 운운하는 그런 이성적 접근이나 비판보다 훨씬 차원 높은 인간 이해를 위한 상징성이자 계시성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저 존 밀턴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그대의 마음속에 낙원을, 훨씬 더 행복한 낙원을 가지게 될 것이라는 언급은 곧 낙원의 회복이 되는데, 그런 복낙원(復樂園)’은 과연 세상 우리의 삶에 어떻게 역사적 및 현실적으로 구현되었는가? 그 대략을 성경 안에서 좀 찾아봅시다.

 


하나님은 사탄의 미혹에 빠져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과 하와의 후손인 지구촌 인생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그 구속사(救贖史)’의 구현을 위해 먼저 아브람(아브라함)’믿음의 조상으로 택하여 부르십니다. 그리고 저들의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민족으로 선택하십니다.

인격적 하나님이자 질서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교장선생님이 의중이나 전달사항을 각반 선생님 그리고 반장들을 통해서 전교생에게 알리듯이 그렇게 땅 끝까지전 인류에게 알리고자 먼저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이자 왕국을 실현하고자, ‘모세를 택해서 죽은 자들처럼 종살이하던 신세였던 저들을 애굽에서 초자연적 능력으로 구원해내십니다. ‘()애굽의 성사가 그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선지자 모세를 통해 호렙산에서 친히 십계명이라는 율법을 주십니다. 아담에게 금기의 선악과라는 일계명을 주신 것처럼 그렇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저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라는 에덴동산같은 터전까지 주십니다. 그러나 저들은 과연 그 조상에 그 아들이었습니다. 타락한 아담의 정체성과 전철을 그대로 닮아 악령인 사탄이 미혹하는 대로 이방종교를 즐겨 좇으며,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어기고 불순종과 타락과 죄악을 일삼는 탕자들이자 불효자식들이 된 것입니다.

 


따라서 선악과 계명, ‘십계명, 인간 구원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율법은 선한 것이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의 성정이 타락해서 구원이자 낙원 회복에는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 역시 아담 내외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됩니다. 역시 실낙원한 것입니다.

분단되었던 북 이스라엘과 남 유다 왕국이 아시리아와 바벨론 제국에 의해 각각 멸망당한 후 바벨론포로기신구약중간기(新舊約中間期)’를 거쳐,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예언(*누가복음19:44) 그대로 로마제국 타이터스(디도) 장군에 의해 최종적으로 멸망당한(*A.D.70) 이후, 나라를 잃고 세계 도처로 흩어져 디아스포라(離散民)’ 신세로 살면서 독일 나치스 치하에서 학살당하는 등 비극적으로 살아온 유태인들의 역사 그 자체가 실낙원을 의미 및 증언합니다.

 


여기서 구약시대로 돌이켜, 그렇게 바벨론 포로신세가 되어 끌려가는 바로 그 참담한 비극의 시기에 그래도 선하신 아버지 하나님은 저들의 구원을 위해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해 새로운 기회이자 소망을 주십니다. ‘낙원(에덴)’의 회복을 위한 곧 복낙원을 위한 새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예레미야31:31~33)

 


남편이 되었다 곧 히브리어 베이르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주인과의 언약을 제 멋대로 깨뜨리면그 집에서든 그 동산에서든 그 회사에서든 쫓겨나는 수밖에요. 차라리 그것이 정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신 하나님은 몰인정한 세상 주인과는 또한 다릅니다. 실인즉 하나님이 아담이나 이스라엘 민족을 쫒아내신 것이 아닙니다. 인간 우리들의 더러운 죄악 그 자체가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를 단절시켜버리기 때문에 제물에 두려워 제물에 숨고 제물에 도피하는 것입니다. ‘도둑이 제 발 저려 도망 다니며 방황을 일삼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이스라엘 민족이자 우리들에게 주신 새 언약나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는그것이었습니다. “그 날 후에우리가 조상 때부터 잃어버린 그 낙원(에덴)’을 우리의 마음에 주시겠다는 구원에의 언약입니다. 장차 메시아를 통해 우리의 심령에 낙원을 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단절되어버린, 그리고 그 후손인 이스라엘 민족 역시 그들이 그들의 남편이 된 내 언약을 깨뜨림으로써단절되어버린 하나님과의 관계,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생명의 관계이자 아버지와 아들같은 혹은 신랑과 신부같은 영적 합일(合一) 및 소통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심령의 낙원을 주시겠다는, 은혜의 언약이자 소망의 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심령의 낙원이 마침내 육신을 입고 세상에 오신 메시아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제일성으로 선포하신 심령의 천국(天國)’, 바로 그것입니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마태복음4:17)

 


그렇게 예레미야를 위시한 구약시대 여러 선지자들을 통한 예언이 마침내 성취된 것입니다. ‘인류의 조상첫째아담의 죄악이자 그 후손인 내 죄악으로 인해 잃어버린 낙원이 둘째아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회복된 것.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영원한 금세적 천국이자 내세적 천국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의(righteousness)와 평안(peace)과 기쁨(joy)”(로마서14:17)의 나라이자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혜와 감사와 자유동산이자 나라가 현재적으로 새롭게 시작된 것입니다. ‘복낙원입니다

 


물론 세상은 오늘도 에덴동산혹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혹은 대궐 같은 집같은 부동산이나 물리적인 특정 장소나 환경이나 여건에서 낙원을 찾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화려한 명예나 정욕 같은 세상 소유나 그 번영을 통해 낙원이라는 아성을 이루고자 합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거기서 천국을 찾으려고 한다는 것. 심지어 유물론이나 공산주의라는 이념에서 유토피아를 찾으려고도 합니다.

그러나 저 모든 인류의 실험은 타락한 인간의 정체성 때문에 그 결국이 죄다 허무한 실패와 불행으로 끝났습니다. 되레 그것들이 스스로 배부른 바벨탑의 경우처럼 거기서 죄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반역의 역사로 끝났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에는 적극적 사고를 보이지 않고, “눈에 보이는세상의 성공이나 번영을 위해 적극적 사고를 강조하며 설파하는 목자가 거짓 목자인 이유도 바로 거기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주신 구원에의 마지막 은혜이자 기회이자 카드는 하나뿐입니다. ‘심령의 천국하나뿐이라는 것. 먼저 우리의 심령곧 우리의 속사람이 바르고 선하게 변해야만 우리의 겉사람도 바르고 선하게 변할 수 있고, 나아가 우리의 사회도 세상도 천국처럼 바르고 선하게 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심령의 낙원이자 천국에서 우리의 고집이나 교만이나 불순종이나 죄악이나 탐욕 등으로 인해 제물에 쫓겨나게 되면 이제 더 이상 갈 곳이 없습니다. 그럴 것이 남은 것은 사탄의 종으로 끝나는, 허무한 불행과 죽음으로 끝나는, 종말론적 심판뿐이기 때문입니다. 물릴 수도 없는 우리네 생명도 심령도 단 하나요, 인생여정도 단 한번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인생관 및 가치관의 중심과 방향을 진실로 바꾸는 회개라는 자유의지의 극적 전환을 통해, ‘천국의 조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나서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현재적 낙원인 천국을 성숙하게, 풍성하게, 잘 간직하며 지켜야할 절대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을 위시한 역대 그리스도의 참 제자들은 하나같이 그렇게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은 사람들이자 그 현재적 낙원이자 영원한 천국의 가치를 세상에서 선포 및 증언하며, 순교자 내지 순교자적 삶으로 구현 및 확장했던 분들이었으니까요. 낙원 내지 천국의 비밀이자 복음을 위해 목숨을 걸었던 분들, 그 '최고의 지혜'이자 비전을 위해 일생을 헌신했던 분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연, 진실로, ‘잃어버린 낙원을 되찾은 사람들일까요? 여느 동물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살다가 끝나는 허무한 인생이 되어선 안 될 텐데, 저 자신부터 그게 정말 걱정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天國)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누가복음17: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