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오멜의 영성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유는'

이형선 2019. 1. 28.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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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는 사람의 빛나는 눈을 바라보면,

 어떤 때는 고조되어 있고 어떤 때는 침체되어

 있는 그것이 아닌, 항상 빛나는 행복한 사람을

 바라보면, 그들 모두가 한결같이 하나님과 함께 하는

 기도의 시간을 많이 가지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은 모든 기쁨의 원천이시다.

 우리가 그분과 만날 때 비로소 그분의 무한한

 기쁨이 우리의 삶에 임하는 것이다.

 

 당신도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은가?

 당신도 그렇게 될 수 있다! 기도하는데 시간을

 쏟아라. 다른 방법으로는 빛을 발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기도가

 왜 사람을 밝고 행복하게 만드는가? 그것은 기도가

 하나님을 실제적인 분으로, 살아계신 분으로 영접

 해주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유하는 것이다.

 

 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모든 것과

 내가 가졌던 모든 것을 포기할 것이다.

 세상과 세속적인 일을 위해서, 신문이나 문학작품

 등을 읽는데 당신의 모든 시간을 소비한다면 그것이

 비록 좋은 내용이라 할지라도 당신은 하나님을 향한

 생명력 있는 믿음을 간직할 수는 없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한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을 소유할 수는 없다. 기도하는 데

 시간을 쏟을 때 당신은 살아계신 실제적인

 하나님을 소유하게 될 것이며,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유하게 될 때에 당신은 빛을 발하는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르우벤 아처 토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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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시간을 갖지 않는 한

당신은 진정한 하나님을 소유할 수는 없다

강조했던 르우벤 아처 토레이(Reuben Archer Torrey).

미국 태생의 목사이자 신학자였던 저 분은,

19세기 유명한 평신도 설교자였던 D. L. 무디(Moody)

선생과 동역하며 구미대륙에 복음주의선교사역을

활발하게 펼쳤던 하나님의 종입니다. 72세였던

1928년에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셨지요.

 

 

저 분은 우리 한국교회의 빛으로 사신 분이자

한국사회에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을 적극 소개

및 주창했던 벽안(碧眼)의 성자대천덕(*한국명)

신부님(*성공회)의 조부이기도 합니다.

강원도 태백의 산속에 자리한 수도공동체

예수원(Jesus Abbey)’을 설립해서 몸소 기도와

노동을 통한 영성운동에 전념하며 청빈과 절제의

삶을 살았던 토레이 3인 대천덕 신부님은 2002,

84세를 일기로 역시 하늘나라로 이사를 가셨습니다.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이자 정치가인 헨리 조지가 역설했던 토지공개념은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에 나오는 요지 그대로, “사회가 눈부시도록 진보함에도 극심한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경제 불황이 닥치는 이유는 토지의 사유로 인해 지대가 지주에게 불로소득으로 귀속되기 때문이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지대를 징수하여 최우선적인 세원(稅源)으로 삼아야 한다는 학설입니다. 그러니까 근로소득세 등 다른 일반 세금을 없애는 대신, 부동산투기의 제일 대상인 토지에서 발생하는 지대를 모두 세금으로 걷는 토지단일세를 도입해야한다는 주장입니다.

 

 

 

부동산투기 및 빈부양극화를 막을 수 있는 해법이기에 당대 미국사회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지만 그러나 자본주의 학자나 기업인 등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 고의적으로 배척 및 묵살당한 학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천덕 신부님은 생전 시 그런 헨리 조지의 토지공개념성경적 토지개념과도 일치한다고 굳게 믿고 꾸준히 역설 및 주창했던 분이었습니다. 저도 지난날 예수원을 방문했을 때, 그런 요지의 신부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적이 있습니다.

 

 

한국경제가 진보내지 번영하면서 부자들의 여유자금이 토지나 특정지역 아파트 등에 투기자금으로 사용되고 그래서 되레 부익부빈익빈(富益富貧益貧)’이라는 악순환이 심화되고, 그런 구조악에 의해 상대적으로 가난한 자들이 줄지어 빈곤으로 내몰리는 오늘의 한국사회현상은 이미 이슈이자 난제가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공의와 양심의 보루가 되어야 할 한국교회마저도 부자인 일부 대형교회를 위시해서 투기성 불로소득을 하나님의 축복인양 설파하면서 투기의 모범을 보였던 작금의 세태를 확인할수록, 대천덕 신부님의 말씀이 정작 선지자적 메시지였다는 것을 거듭 절감하게 됩니다.

 

 

그럴 것이 이른바 주류로 성공한기독교 목회자나 사회지도자 신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노년에 저들 삶의 열매일 수 있는 기득권 세습이나 토지나 주택 등 부동산투기 같은 재물, 정치권력의 카르텔이나 거래, 각종 비리나 부패사슬에 연루되었던 그것들이 마침내 사회문제로 폭로되거나 그것들로 인해 구속을 당하면서, 저들이 평생에 걸쳐 쌓아온 공든 탑바벨탑처럼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리는 불행을 요즈음 자주 목격하게 되는 세태이니까요.

 

 

자신의 이름은 물론이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그런 뉴스를 접할 때마다 과연 항상 빛나는 기쁨과 행복의 원천은 돈이나 재물이나 토지 같은 투기성 부동산의 소유도 아니고, 대단한 권력의 소유도 아니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유하는그 자체라는 것을 재삼 절감하게 됩니다. 사람을 진실로 살리고 영원히 살리는 '참 복'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설파하신 '산상 8복'(마태복음5;)이자 '자족의 비결'을 아는 복 그 자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절감 및 확인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과연 이웃 내지 가난한 자들의 빈곤을 되레 심화시키는 부자의 재물은 그 열매 역시 자신에게도 이웃에게도 결코 선한 것이 아닙니다. 투기성 불로소득은 더더구나 사회적 악입니다. 그래서 부자 자신도 이웃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합니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리라.-(마태복음6:24)

 

 

세상 작금의 자본주의나 거기 영향을 받은 한국교회는 산업화내지 가난 극복이라는 시대적 명제 아래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가르쳤고, ‘부자되는 그것이 하나님의 축복이자 번영이자 복음이라고 선포했습니다. 또한 그래야만 인기를 얻을 수 있었고, 대중을 모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선 저렇듯 예나 지금이나 분명하게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God)과 재물(Money)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고 말입니다.

 

 

재물곧 헬라어 마모나스(mammonas)’, , 재물을 의미합니다. 저 언어가 고유명사가 되면 재물의 신맘몬(Mammon)’이 됩니다. 따라서 불로소득을 얻기 위한 토지나 아파트 등의 부동산 투기 역시 하나님과 겸하여 섬길 수 없는 재물에의 탐심이 됩니다.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아니고 맘몬의 역사라는 것. 하나님을 경히 여기고되레 맘몬을 중히 여기며섬긴 행태이자 행각이라는 것입니다.

 

 

양들이나 자녀들에게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갈라디아서4:19)도 노력도 하지 않은, 그렇게 성숙한 그리스도의 제자 인격으로 인도하지 못한 한국교회가 하나님과 재물, 두 주인을 겸하여 섬기고얻은 번영신학의 그 재물이나 그 투기성 불로소득의 재물을 가지고 과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이자 말씀 그대로 가난한 이웃들을 네 몸처럼 사랑하며 살리며 섬길 수 있었던가요?

 

 

되레 개교회 중심의 대형건물을 지어 하향평준화된 다수의 기복적 내지 무속적 그리스도인들을 양산하며, 남달리 복 받은 고급승용차를 타고 때론 교주처럼 때론 부자처럼 행세하는 삶의 모범을 보이며 다투어 외식(外飾)과 허세부리는 신앙풍토를 조성했던 것은 아닐까요? 그 결과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이자 열매가 곧 작금의 기독교 지도자이자 부자라는 몇몇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소유를 목회자 자신이나 자기가족들의 소유이자 왕국인양 제멋대로 주인의 소유를 낭비”(*누가복음16:1)하다가 적폐의 대상으로 치부되고, 그에 대한 사회적 비난과 비하가 목하 한국교회 전체를 싸잡아 무너뜨려버린 형국이 된 것은 아닐까요?

 

 

(主人)의 종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청지기라고 해도 주인의 소유를 소유한 청지기주인을 소유청지기의 신앙인격이나 삶의 열매는 전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인 전자가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울”(누가복음16:8) 수도 있습니다. 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자기왕국을 위한 대형교회도 이룩할 수 있고, 스스로 혹은 교주가 되어 이단적 종교왕국도 이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으로서의 부자이든, ‘부자교회이든,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명심해야 할 하나님의 경영학 내지 경제학이 또한 거기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겨주신 재능이나 재물을 허비, 낭비(wasting)’하는 자는 결국 청지기 직에서 해임된다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정의이자 종말론적 섭리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유인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유하지 못하고, “예배보다 선악과라는 혹은 염불보다 잿밥이라는 속언처럼 하나님의 소유그 행세 그 재물 그 축복 그 만사형통에 우선의 관심과 욕심이 있어 그것을 내 것으로 차지하기 위한 이기적 내지 기복적 종교나 신앙의 결국은, 되레 하나님 앞에서 저 아담처럼 저 불의한 청지기처럼 해고당해 실낙원의 지경으로 쫓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늘 명심할 수 있어야할 것입니다.

 

 

 

물론 세상 현실을 사는 우리는 돈이나 재물의 살아있는위력을 잘 압니다. 이방인이나 자연인은 차치하고, 저를 포함해서 신앙인이라는 우리조차도 살아계신 하나님보다는 살아계신 돈, 맘몬의 위력을 더 가깝게 실감 및 절감하며 살아갑니다. 세상에서 돈만 주면 못 살 것도, 못할 일도 없다 싶으니까요. 심지어 사람까지도 사고파는, 비인간화의 세상이자 시장 아니던가요.

 

 

세상의 세태가 그러면 그럴수록 절대 필요한 진리이자 복음은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격적 실재와 현존을 확실하게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이나 그 소유에 처음되었더라도 '나중에' 세상 자기 영광과 행세에 취해 신실했던 그 처음마음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죄다 살아있는 돈먼저섬기거나 겸하여섬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 토레이 1의 말씀처럼 이 세상에서 가장 복된 소유인 살아계신 하나님을 소유한예수 그리스도께선 나아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6:31-33)

 

 

과연 살아계신 하나님을 안다는 것, 진실로 믿는다는 것은 그분을 살아계신 나의 하늘 아버지로 소유하는 그것입니다. 한세상 살다가 죽은 세상의 아버지가 아닙니다. 영원힌 생명이자 생존 자체이신 하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가 그 자녀의 의식주(衣食住)나 세상의 필요를 한사코 모르는 척 하시겠습니까? 그런 아버지는 인격적 아버지가 결코 아닙니다. 이론적, 추상적, 허구적, 교리적 인물일 뿐이지요. “귀로만 듣던아버지일 뿐이지요.

 

 

예수 그리스도께선 현세적으로 공중의 새에게 먹이를 먹이시고, ‘들의 백합화에게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더 고운 옷을”(마태복음6:29) 입히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아버지'의 역사와 섭리를 친히 증언하셨습니다. 영적(靈的) 통찰입니다. 따라서 그렇게 살아계신 하늘 아버지의 비밀을 믿고 그 아버지를 소유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끝이 헛되고 헛된허사가(虛事歌)로 일관되었던 솔로몬 왕의 모든 영광이나 부나 행세를 선망하지도 않았고, 그것에 목을 걸지도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굴의 기도를 다시 들어봅시다.

 

 

-내가 두 가지 일을 주께 구하였사오니,

 내가 죽기 전에 내게 거절하지 마시옵소서.

 

 곧 헛된 것과 거짓말을 내게서 멀리 하옵시며,

 나를 가난하게도 마옵시고 부하게도 마옵시고,

 오직 필요한 양식으로 나를 먹이시옵소서.

 

 혹 내가 배가 불러서 하나님을 모른다,

 여호와가 누구냐? 할까 하오며, 내가 가난하여

 도둑질하고 내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함이니이다.-(잠언30:7-9)

 

 

하나님의 이름그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필요한 양식으로 자족하는 신앙의 경지이자 인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이웃과 사회에 상대적 빈곤이나 이기적 술수나 사행심을 심화시키는 부동산 투기 같은 사욕이나 탐욕을 멀리해야 할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정당하게 자기 땅에서 심은 대로 거두는 노동의 가치와 정의를 강조하고, 평등과 공존을 지향하는 토지공개념은 성경에 명확히 계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법이니까요.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니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레위기25:23)

 

 

출애굽 후, 마침내 하나님이 허락하신 가나안 땅을 들어간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비를 뽑아 각 지파별로 그리고 각 집안별로 평등하게 토지아후자기업(inheritance)’으로 할당받아 소유하게 됩니다. 사회정의 및 공존의 터전이 되는 기업(企業)’이 주어진 것.

그러나 사람이 살다보면 때론 우환질고도 천재지변도 당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원치 않게 빈곤의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저 기업이웃에게팔거나, 살 수도 있었습니다.(*레위기25:14) 그러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그런 거래는 매매도 아니고, 투기는 더더구나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당분간 토지를 전당포에 맡기는 그런 식의 거래였을 뿐입니다.

 

 

따라서 가정경제가 회복되면 언제든지 응분의 돈을 갚아주고 되찾을 수 있었고, 도저히 되찾을 수 없도록 가난한 사람들의 토지는 50년 만에 한차례씩 임하는 거족적인 대명절인 희년(禧年)’에 무조건 되돌려주도록 율법으로 명시되어 있습니다. 희년곧 히브리어 요벨수양의 뿔이라는 의미입니다. 수양의 뿔로 된 나팔을 불어 가난 때문에 팔려서 종살이하던 사람은 물론이고 토지에게도 거족적인 자유를 공포하는”(레위기25:10)는 대축일인 것입니다.

 

 

참고로, 최근 집권여당 대표가 토지공개념에 대한 언급을 약간 하면서 토지공개념이 다시금 언론에 회자되기도 하던데, 그것은 진보정권에서만 강조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주의 이념에서 유래된 것은 더더구나 아닙니다.

보수정권인 박정희 정권 때부터 거론되어 왔고, 부동산 투기 열풍이 불었던 1989년 곧 노태우 정권 때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 택지소유상한제라는 토지공개념 3이 제도화되었으니까요. 그러나 후자 2법은 헌법 불합치로 폐기되었더군요.

 

 

각설하고, 성경에 명기된 그대로 세상 재물, ‘토지, ‘공중의 새, ‘들의 백합화, ‘나그네 인생인 우리의 삶이나 목숨 자체도 다 창조주 하나님의 것입니다. 오늘밤에라도 하나님이 부르시면 빈손으로 가야하는 인생이라는 것. 사욕이나 탐욕이나 헛된 일이나 거짓된 일에 사로잡혀 단 한번뿐인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 될 절대이유도 다 거기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하나님도 추상적인 신화의 하나님허구의 하나님도 아닌, 인격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 살아계신 그리스도를 확실하게 소유했던 사도 바울은 오늘도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재물이나 권력이나 자기 명예 등의 소유에 사로잡혀 절로 그 허무한 배설물의 늪에 깊이 빠지기 쉬운 인생 우리 모두를 향해 희년의 나팔을 불 듯, 세상의 모든 풍파를 이기는 참 기쁨과 평안과 자족(自足)의 감사와 행복으로 인도하고, 아울러 살아도 살고 죽어도 사는영원한 자유와 생명으로 인도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이렇게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rubbish)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립보서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