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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묵은 제 성경 한쪽 공간에는 제가
육필로 써둔 ‘나의 기도문’이 있습니다.
그 내용인즉 이렇습니다.
-주님.
제가 받은 달란트가
단 ‘한 달란트’라 할지라도,
허락하신 제 모습 이대로에
감사하며,
“주의 일을 염려하고
주를 기쁘시게 하고
주의 일에 힘쓰는“,
진실한 종이 되게 하소서.-
저는 하나님이 제게 주신 사명을 깨달은 이후,
주님께 그렇게 기도하며 제 몫의 문서 내지 문필
선교 사역을 해왔습니다.
월간선교소책자 ‘무화과나무’를 만들어 병원, 교도소,
군부대 등에 보내는 사역을 만 14년 동안 하다가,
이후 이 ‘영성 편지’ 사역을 해온 것입니다.
금년으로 제 나이도 만 70세가 됩니다.
아울러 이 ‘영성 편지’를 통해 제가 인터넷 공간에
남겨두고 싶었던 글들도 나름대로는 다 썼다 싶은
마음을 주님이 주셔서,
여기서 그만 종간하기로 했습니다.
‘마라톤 코스’ 같은 사역의 여정을 돌아보자면,
남달리 학문이 많은 학자도 아니고, 목사도 아니고,
건강하지도 못한 보행 장애의 몸이었기에 전 애초부터
화려한 메달은 원하지도 기대하지도 않았습니다.
늘 꼴찌여도 좋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제 몫의
여정을 완주만 할 수 있어도 좋겠다 싶었습니다.
기묘한 영적 체험을 통해 소명을 재확인한 후,
저로썬 달리 선택할 여지도 없었습니다.
그럴 것이 ‘주의 종의 길’이란 뒷발질해봐야 되레
자기만 더 고달픈 ‘천명(天命)의 길’이니까요.
따라서 지금까지 영육의 삶에 별고나 변고
없이 ‘내 모습 이대로’의 소명이자 사역의 여정을
무사히 완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의 은혜와
긍휼, 이 자체에 저는 충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남은 생애 역시 내 뜻보다 늘 더 오묘했던
주님의 뜻과 은혜와 섭리에 더욱 온전히 맡기고,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빌립보서1:21)는 사도 바울의 그런 신앙 인격과
하늘의 자유 및 여유를 더욱 배우고 다지면서,
더욱 조용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해서 그동안 이 블로그를 찾아주신 모든
분들에게 머리 숙여 작별인사를 드립니다.
‘블로그 관리’를 보니 오늘자로 ‘전체 방문자’가
‘17,721명’인데, 이 글들이 인터넷에서 인기 있는
대중적인 글도 아니고, 시작할 때 단 몇 사람에게
알렸을 뿐 더 이상 들레지도 않았고 다른 SNS나
매체를 사용하지도 않았던 저였기에, 주어진
이만큼의 분수에 역시 감사하게 됩니다.
앞으로도 누군가의 신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글들이 될 수 있기를 삼가 기원하는 마음입니다.
아무쪼록 우리 모두가 세상의 거친 풍파나 인생의
모든 우여곡절을 넉넉히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하나님의 비밀'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 은혜와 평안과 사랑 안에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곧 심오한 ‘새 하늘과 새 땅’의 나라에 대한 확고한
비전을 가지고 그 어떤 역경에서도 늘 ‘산 소망’의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하면서, 이만 인사 줄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형선 드림: (Ω)
▣
(*저는 성경의 ‘말씀’은 ‘차 한 잔의 사상’이나
‘문화 한 잔의 사상'이 아니고, ‘윤리 도덕 한 잔의 사상’도
아니고, ‘피 한 잔의 사상’이라는 '영성의 비밀'에
열려지면서부터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늘 현재적으로 계시되는 '생명 사상'이자 '존재다운 존재를
위한 사상' 그 자체라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비밀’을
확신하면서부터 ‘그리스도의 사람’이 될 수 있었다는 것.
그런 의미에서, 지난해 ‘새로운 사람의 성탄을 위하여‘
(2018, 12, 24)라는 제하의 글 중에서 간략하게 언급했던
제 신앙고백이자 간증을 그대로 여기 재록하는 것으로
제 종간인사의 ‘만찬’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제 나이도 내년이면 이른바 ‘은퇴 연령’이라는 70세가 됩니다. 따라서 누군가의 신앙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미리 남겨놓고 싶은 제 몫의 신앙 고백이자 간증이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 먼저 제 ‘약한 것’을 털어놓자면, 저는 광주서중 일학년 때 부모님을 일시에 여의고 그 몇 년 후 처량한 보행 장애인의 몸까지 되었습니다. 해서 남달리 ‘운명’이라는 화두이자 숙제를 끙끙 앓으며 20대 청년시절을 살아야했습니다.
Why? Why me? ‘전생(前生)’에 내가 남달리 죄를 많은 지은 때문일까? 과연 신(神)은 존재하는 것일까? 하나님은 진실로 살아계시는 것일까?
생전 시 어머니는 “너도 외삼촌처럼 꼭 법관이 되어라”라고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셨지만, 제 목하의 현실은 폐허 같은 밑바닥이자 벼랑이었습니다. 그래서 되레 좌절감이 더 컸던 저는 차라리 미련 없이 자살하고 싶은 비관적 고뇌를 앓으며 ‘문학청년’이라는 허울 아래 허무주의자 혹은 ‘개똥철학자’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부모의 죄와 내 죄’라는, 곧 인과응보(因果應報)사상이라는 숙제에서 비롯된 고뇌의 삶이었지만 아울러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또한 사도 바울 같은 인간의 정체성 그 자체이자 한계에 대한 나름대로의 ‘깨달음’으로 인도하는 고뇌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 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wretched)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로마서7:21~24)
저 ‘곤고한 사람’ 곧 헬라어 ‘탈라이포로스 안드로포스’는 ‘비참한, 불쌍한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저는 영적 ‘거룩한 고뇌’를 앓던 저 사도 바울과는 달리 ‘발등에 떨어진 불운’이라는 저급한 차원의 운명 때문에 앓은 고뇌였지만, 분명한 것은 거기서 ‘내가 깨달은 한 법’은 저 사도 바울이 ‘깨달은 한 법’과 같은 맥락의 의미일 수도 있었다는 그것입니다.
‘곤고한, 비참한, 가엾은’ 인간 ‘나를 구원할 수 있는 자’ 곧 참 ‘메시아’는 나처럼 남녀의 관계에 의해 태어난 ‘생물학적 인간’으로는 불가능하고, 인간들이 만든 ‘주관적 신(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절감 및 통감했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물론 불경에서 읽었던 석가도 나보다 훌륭한 분이었고, 공자나 맹자나 노자나 장자도 나보다 훌륭한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다 내가 존경할 수 있는 성현군자(聖賢君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역시 저런 분들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존경’과 운명의 늪에 빠진 내 운명에서의 ‘구원’의 문제는 다릅니다. 피차의 정체성이 ‘생물학적 존재’인 ‘큰 도토리’가 ‘작은 도토리’를 구원하지 못하듯이 죄성(罪性)이 죄성을 구원하지 못하고, 죄인(罪人)이 죄인을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 및 통감하게 되더라는 것입니다.
‘참 구원’은 과연 ‘떡’이나 ‘육신’의 문제가 아닙니다. 윤리 도덕 차원의 문제도 아닙니다. 인간의 이른바 ‘간사한 마음’ 차원의 문제만도 아닙니다. 마음 이상의 세계인 곧 내 한계를 절감하고 “오호라”라는 탄식을 절로 토로할 수밖에 없는 영적(靈的) 세계의 문제이자 ‘자살’을 포함한 모든 죽음이 생명의 문제인 것처럼, ‘생명’ 그 자체의 문제더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적 교리 내지 지식 내지 도(道)는 있지만 ‘생명’이 없는 곧 ‘새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를 진실로 구원할 수는 없다는 것을 절감한 저는 그래서 훗날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 탄생했다”는 ‘성령 잉태’ 거기에 되레 주목한 이후, 문학 서적을 위시한 다른 책들은 죄다 버리고 오직 신학과 성경에만 파묻혀 수년간 들이 파기 시작했습니다.
인간들이 만든 ‘주관적 신’이 아닌 ‘객관적 신’이자 ‘살아계신 신‘ 곧 ’살아계신 하나님‘을 찾기 위해 성경을 들이 파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은 그만큼 운명적이도록, 생사(生死)가 좌우되도록, 극심한 갈증을 느꼈다는 반증이자 그렇게 인도하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이자 긍휼이자 섭리였다는 반증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목사가 되고자 해서도 아니고, 이른바 ‘돈이 되는’ 공부도 아니었지만, 너무 목이 말라서 ‘생수’가 터질 때까지 성경을 들이 팠습니다. ‘말씀’을 팔수록 그 자체에서 조금씩 기묘한 ‘빛’이 보이고, ‘생명’이 보이고, ‘생수’가 나오니까 계속 들이 파게 되더라고요.
‘광야의 반석’ 같은 ‘내 운명’이 조금씩 터지면서 ‘생수’가 나오니까, ‘재 가운데 앉은 욥’ 같은 ‘내 운명’의 눈과 귀가 조금씩 열리면서 ‘창조주 하나님’이자 ‘살아계신 하나님’과 만나게 되는 기묘한 희열을 느끼며 맛보게 되니까 절로 심취해서 계속 들이 파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몇 년을 보낸 후, 저는 문서선교에의 소명을 느낀 바 있어 1987년 봄에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길로, 당시 극동방송 이사님으로 있었던 서울대 출신의 기업인이자 저를 목사로 키우고자 하셨던 감사한 모 은인(恩人)의 권유 및 인도를 받아 삼각산 기도원으로 갔습니다. 당시 저는 삼각산이 서울 어디에 있는 어떤 산인지조차도 몰랐습니다. 당시도 그랬지만 이후에도 하나님이 다른 분들을 통해 이렇게 저렇게 앞서 인도하시더라고요.
여하간 그 삼각산 기도원에서 삼 개월 정도 있었는데, 저는 그때 난생 처음 희한한 ‘성령 체험’을 했습니다. 노년의 이 나이에 허세부리고 싶지도 않고, 과장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누가 믿거나 말거나 체험한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무릎 꿇고 기도하던 중 제 몸이 수차례 풍선처럼(?) 가볍게 바닥에서 떴다 가라앉았다 하는 신비 체험을 했습니다.
그 며칠 후, 저는 직접 환상을 본 적이 없는데 제가 기도할 때 제가 “꽃동산에서 기도하고 있는 아름다운 환상을 보았다”는 ‘고척동 목사님’이 자진해서 그런 말을 건네며 나를 위해 기도해주기도 했고, 저는 보행 장애인 제 몸을 고쳐주시면 목사가 되겠다고 기도했는데 그런 제 몸은 고쳐주시지 않고 당시 그 기도원에 있던 환자들 아픈 곳에 제 진동하는 오른손을 얹으니까 병이 낫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치유 능력은 그 후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래서 그런 희한한 신비 체험들을 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일까 싶어 당시엔 그것이 난해한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만, 그 자체가 성경에서 증언하고 있는 신령한 세계를 그렇게 ‘맛보기’를 통해 직접 체험해보도록 한 하나님의 배려였던 것 같습니다.
해서 저에게 결정적으로 남은 것은, 성경에 기록된 초자연적 모든 이적 내지 신비 사건들은 사실임을 절로 확신할 수 있었다는 것, 그리고 그렇게 역사 및 섭리하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다는 것,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후 빈털터리로 문서 내지 문필 선교사역을 해 온 제 신앙의 최대 자산이자 든든한 배경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르되,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요한복음11: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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