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편지

가장 고상한 '보화'가 감추어진 곳은

이형선 2012. 10. 15. 10:31

 

   조선조 태종 때 병조판서를 지냈던 선비 윤회(尹淮).

   그가 가난했던 젊은 시절에 한양에서 나그네의 몸으로 낙향하던 어느 날.

   날은 저물었으나 마땅히 묵을 곳이 없던 그는 하는 수 없이 낯선 부잣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고 가기를 청합니다. 주인은 초라한 행색인 윤회의 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냉정하게 돌아섭니다. 하는 수 없어진 윤회는 그냥 그 집 뜰 아래서 하룻밤 묵고 가고자 주저앉습니다.

 

 

   그때 부자의 어린 아들이 마당에서 큰 진주를 구슬처럼 가지고 놀다가 그것을 손에서 떨어뜨리자 곁에 있던 거위가 냉큼 삼켜버립니다. 뜰 아래에 주저앉아있던 윤회는 ‘낮은 자리’에 있었기에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모르는 가족이나 하인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진주를 찾지만 진주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다가 나그네인 윤회와 눈이 마주치자 범인이라도 잡았다는 듯이 곧 집안으로 들어가 주인에게 보고합니다.

   금세 쫓아 나온 주인은 다짜고짜 윤회를 도적으로 간주하고 온몸을 뒤집니다. 그래도 보석이 나오지 않자 부자는 하인을 시켜 윤회를 결박합니다. 내일 아침에 관아에 넘기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물론 윤회는 ‘진주’가 감추어진 곳을 압니다. 그러나 심한 곤욕을 당하면서도 윤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삶으로, 인격으로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그는 다만 한 가지만 간청합니다.

   “저 거위의 발을 묶어 내 곁에 놓아주십시오.”

   주인은 의아해했지만 대수롭지 않은 청이기에 그 부탁은 들어줍니다.

 

 

   이튿날.

   거위의 배설물에서 마침내 진주는 발견됩니다. 황당해진 주인은 크게 사죄하며 어제 침묵했던 이유를 묻습니다. 그때 윤회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제 말씀 드렸다면, 진주를 찾기 위해 거위는 배가 갈려 죽었을 것 아닙니까.

    가엾은 거위를 죽이느니 제가 잠시 곤욕을 당하는 것이 낫지요.”

 

 

   초라한 행색의 나그네에게 인색하고, ‘진주’라는 재물을 찾는 데는 발빠른 저 부자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기적인 계산과 실속에 발빠른 현대인의 초상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저 윤회의 대답이 어디 한 마리의 가축인 ‘거위’만을 위한 말이겠습니까. 우회적으로 주인을 크게 꾸짖는 말 아니겠습니까. 당시 윤회의 ‘작은 이웃’은 역시 조물주(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생명인 ‘가엾은 거위’였습니다. 윤회는 남의 집 뜰에 몸은 눕히고 밤을 지새우는 행인이자 나그네 신세였지만 그렇게 어려운 신세나 비천한 자리에서도 그가 행할 수 있는 선(善) 혹은 자비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자는 가진 것이 많이 있는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하룻밤 묵고 가고자 하는 ‘작은 이웃’의 간청을 냉정하게 거절했습니다. 그런 주인의 성품으로 볼 때, ‘내 아들을 위해 내 진주’를 찾기 위해서라면 거위 한 마리쯤 당장 배를 갈라 죽이는 것은 일도 아니겠지요. 그런 부자의 삶의 행태를 크게 꾸짖는 지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고함이나 주먹이나 칼보다 더 강한 것은 지혜입니다. ‘말씀’입니다.

   ‘부자’를 꾸짖는 그 지혜의 의미를 듣지 못했다면, 모르긴 몰라도 그 후 그 부자의 재물이나 부귀영화도 오래가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재물보다 생명이 긴 것은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재물보다 생명이 긴 것은 선(善)이고 자비(慈悲)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저 사건을 환치시켜 봅시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25:45-46)

 

 

   따라서 보다 젊고 건강할 때, 도울 수 있는 능력이나 실력이 있을 때, 재물이 있을 때, 높은 자리에 있을 때, ‘주님께 하듯이’ 진실하게 섬기는 마음으로 ‘작은 자’를 돕고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실인즉 자신의 ‘‘영원한 생명(永生)’과 ‘영원한 축복’을 준비하고 있는 참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영안(靈眼)이 열리면 곧 하나님의 나라에 열리면 그것이 보입니다. 저 윤회가 진주가 감추어진 곳을 보고 아는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의 굶주린 자, 헐벗은 자, 병든 자, 옥에 갇힌 자, 장애인, 나그네 등 사회적 약자 곧 ‘작은 자’는 결코 세상의 작은 자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들이 되레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신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대접’할 수 있는 복이 있는 대리적(代理的)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생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으신 십자가의 죽음이 곧 대속적(代贖的) 죽음이 되고, 그것을 믿는 죄인인 우리 인생에게 그 선 그 희생이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구원의 대리적 기회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시 곤욕을 당한다고 해서, 자기를 부인한다고 해서, 봉사 내지 헌신한다고 해서, 손해 본다고 해서, 자기를 잃어버리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보다 긴 안목에 열리면, ‘작은 자’를 배려하는 삶이 오히려 더 큰 축복과 행복을 얻는 길입니다. 작은 이웃인 ‘거위’를 지켜주고 살려줄 수 있었던 선비 윤회의 인품을 보신 하늘의 하나님이 그를 축복하시어 ‘조선’이라는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살리는 병조판서로 세워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나아가 저 부자의 ‘진주’라는 가치도 그렇습니다. 저 부자가 진정으로 아들을 사랑하고 아들의 장래를 위했다면 저런 ‘진주’를 가지고 놀도록 허락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저 부자나 부자의 아들이 가지고 노는 ‘눈에 보이는 진주’가 참 진주는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마태복음13:44)

 

 

   사람은 누구나 소중한 ‘소유’을 사기 위해서 보다 덜 소중한 ‘소유’를 아낌없이 팔아버립니다. 그래서 당대의 해박한 지식인이었던 사도 바울은 ‘천국’이라는 소유를 위해 자신의 과거적인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버려버렸습니다. ‘천국’은 세상 재물이나 권력이나 명예보다 더 소중한 존재 자체이자 ‘절대 소유’입니다. 천국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인 정도의 사람이라면 평생을 종교생활했다 쳐도, 성공한 지도자로 행세하며 살았다 쳐도 그런 사람은 ‘천국’의 진정한 비밀이나 가치를 확실하게 이해하지도 맛보지도 소유하지도 못한 사람입니다.

 

 

   참 보화인 ‘천국’은 늘 ‘밭에 감추어져 있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심령의 세계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씀하는 저 ‘밭’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감추어진 보화 곧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 말씀 안에 감추어진 보화를 말씀합니다.

 

   그 ‘하나님의 비밀’에 열려진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체험을 증언합니다.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골로새서 2:2-3)

 

 

   그런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寶貨)’가 ‘나의 것이 되고, 너의 것이 되고, 우리의 것’이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돈이나 보화는 한 사람의 ‘부자’가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그만큼 다른 사람들은 가질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난의 불편이나 고통을 앓아야만 하는 양극화 현상이 야기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화’는 겸손하게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누구나 공평하게 다 가질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이 땅 위에 서로 복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 나라와 그 의와 그 사랑의 성취가 어서 속히 이루어질 수 있기를!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빌립보서3:7-)

 

 

                                                                                         *한 그리스도인의 영성 편지(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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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우상이 다른 길로 감으로 인해

 모든 대중이 움직일지라도,

 당신은 당신의 신념을 담대하게 지키라.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결정을 내리게 하는 요인은

 시대의 어떤 영웅이 생각하고 행한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고 행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나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시냐 하는데 있는 것이다.-

 

 

                                                     *오스카 한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