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라고 다 길이더냐.
생존 경쟁의 길이
비교 우위의 길이
사위팔방으로 뚫린,
그래서 평안도 영일도 없는
세속 도시의 삶.
그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우리는 또 탈출을 한다.
내내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미 경직된 도시의 평행선,
그래도 더 안전하다고 믿는
레일 위에서
우리는 열차를 타고
또 탈출을 한다.
풀어지지 않는 삶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은
그냥 임시보관함에 맡겨둔 채로.
삶이 세상살이의 염려일까.
염려가 세상살이의 삶일까.
설날의 설렘은 까치들의 몫.
나그네 누구도 고향을 말하지 않는다.
나그네 누구도 안식을 말하지 못한다.
안내방송을 듣고
차창 밖 간이역은 알지만,
정작 가야만 할
구원의 행선지를 우리는 모른다.
때론 동화처럼
어린아이를 기다리시던
고향의 모정도,
때론 동요처럼
어린아이를 부르시던
고향의 모음도,
다만 묘비(墓碑)로 남아 있는 고향.
사람은 가도 기억은 남는 것.
기억이 추억이 되면
보이지 않기에 더 보고 싶은 것.
그러나 묘비가 맞이하는 고향은
그래서 더 허무한 것.
구름은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바람도 여전히 잡히지 않는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열차를 타고 또 귀향을 꿈꾸는가.
벽처럼 막힌 종착역에서
더 이상의 퇴로가 없다는
한 톤의 절망을 확인하기 위함인가.
사람의 절망이 하나님의 시작이듯이
그래서 영원한 고향에 눈뜨기 위함인가.
욕심이 욕심을 낳고
육체가 육체를 낳고,
먹고 마시고 배설하며 사는
이 생로병사의 도시에서,
거짓으로 인도하는,
콜타르로 포장된
미로(迷路)의 지층을 뚫고,
한 순(筍)이나마
참 생명이 발아되기까지,
우리의 귀성열차는
레일 위에서
더 이상 달리지 못한다.
여기는 종착역.
여기는 세상의 종착역.
하늘나라에 열려야만 하는
우리 모두의 묘비의 자리,
이름하여 ‘골고다(*해골)’.
이제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자.
‘사닥다리’가 보이는가.
하늘과 땅의 간극을
하나로 잇고 있는
구원의 십자가가 보이는가.
영원한 고향으로 가는
사닥다리가 보이는가.
사닥다리 위에서
우리는 열차를 타고
비로소 참 귀향을 한다.
더 이상 나그네가 아니다.
순례자들.
우리는 이제 고향을 말한다.
같은, 한 고향 출신이다.
순례자들.
우리는 이제 안식을 말한다.
같은, 한 아버지의 품 안이다.
-아바 아버지, 저 왔어요.
사닥다리 타고 잘 왔어요.
-아바 아버지, 우리 왔어요.
사닥다리 타고 잘 왔어요.
(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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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곱이 브엘세바에서 떠나 하란으로 행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는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그 곳의 한 돌을 가져다가 베개로 삼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또 본즉
여호와께서 그 위에 서서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구약성경, 창세기28:10-15*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사닥다리’ 곧 그리스도)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하신지라.-
*신약성경, 요한복음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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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자기 자신이나 또는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
스스로 고치기 어려운 결함이 있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고쳐주실 때까지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결함이 어떤 종류이든 간에
그 모든 것에 늘 인내할 수 있도록 노력하여야 합니다.
당신 자신에게도 결함이 많이 있고, 그로 인하여
다른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또 인내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당신 자신도 당신이 원하는 대로 만들 수 없거든
하물며 어찌 다른 사람을 당신이 좋아하는 대로 만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이 완전하기를 요구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의 결점을 고치려 들지는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이나 결점은 엄하게 다루어지고 고쳐지기를 바라면서도
우리들 자신은 고치려하지 않고 남에게 간섭받기조차 싫어합니다.
(…)
모든 사람이 완전하다면, 우리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의 실수나 결점을 참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제 우리에게 서로 다른 사람들의
실수와 허물을 참고 이해하기를 배우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어느 누구도 허물이 없는 사람이란 없으며,
자기의 짐을 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란 없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아 캠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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